월간참여사회 2003년 05월 2003-05-01   2519

“OO양 비디오” 그 순간, 인권은 없다

“B양 비디오” 파문 3년, 가수 백지영을 만나다


가수 백지영을 만났다. 봄비가 내리던 어느 토요일 오후 기획사로 찾아갔을 때, 그녀는 TV 가요프로그램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신인가수의 열창이 끝나고서야 얼굴을 돌렸다. “노래 참 잘하죠”라는 칭찬에는 부러움이 묻어 있었다. 백지영 씨는 인기절정이던 2000년 11월 ‘B양 비디오’ 파문으로 사실상 가수활동을 중단했다. 이 사건은 상대남자였던 김모 씨가 4명의 일당과 공모해 포르노사이트를 개설하고 문제의 비디오를 이용해 돈을 벌려고 치밀하게 계획한 범죄임이 밝혀졌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백씨는 가수 활동을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준비는 잘 되어가는가.

“음악활동은 그동안 꾸준히 해왔다. 아직까지는 노래보다 나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이 많다. 토크쇼 섭외가 주로 들어온다. ‘심경고백’ 듣고 싶다는 것인데, 지난 일 다시 들추기 싫어 응하지 않았다. 나는 가수 백지영으로 보이고 싶다. ‘비디오 파문의 주인공’이란 꼬리표를 완전히 떼지는 못하겠지만, 가능한 줄이고 싶다.”

시사다큐『그것이 알고싶다-연예인 비디오파문의 진실』이 방송되고 반향이 없는가. 시청자 게시판을 보니 격려 글이 많았다.

“잘 모르겠다. 방송될 때 못 보고 나중에 인터넷으로 봤다. 이 프로가 사건경위를 정확히 알려줌으로써 몇 가지 오해를 풀어주어 반가웠다. 당시 여자연예인의 성상납 아니냐, 백지영이 몸 팔아 앨범 냈다는 등의 오해가 있었다.”

최근 한 여자연예인의 사진파문이 있었다. 누가 해킹해서 인터넷으로 유포한 것인데 해킹은 문제삼지 않고 해킹 당한 사람을 비난한다.

“배신감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청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거부감이 더 컸을 수도 있고. 춤을 추고 라틴음악을 한다고 나를 섹시스타라고 했듯이 그 연예인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포장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이미지를 만들어준 사람들이 질타를 가한다. 연예인이 감수해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지나친 사생활 침해나 해킹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 일반인들이 문제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 경우도 해킹에 대한 질타가 먼저 아닐까.”

당시 비디오사건은 인터넷이 만든 것이기도 했다. 인터넷의 성문화 왜곡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지 않은가(웃음). 익명성이 보장되니까 이런 일들이 자꾸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든다. 얼굴 마주하고 있을 때와 익명이 보장된 인터넷 공간에서 같은 사람이 너무 다른 모습일 때가 많다. 지금 문제가 되는 비디오 파문은 ○○양 사건이 아니다. 나는 ‘백지영 사건’ 맞다. 내가 나왔으니까. 이번 경우는 자기가 아니라고 하지 않나. 편의상 ‘누구 비디오’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당사자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비디오 파문이 일어난 지 3년 되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없나?

“작업하는 팀과 회사도 바뀌었다. 하지만 외면보다는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같다. 조금 다른 ‘열심’을 부려본다. 예전에는 마냥 들떠서 이것저것 다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깊이가 생긴 느낌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본격적 활동을 준비하면서, 이런 게 고민된다. 또 춤추면서 노래하면 사람들이 ‘쟤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할 것 같고, 발라드로 바꾸자니 나는 춤추면서 즐겁게 음악하고 싶은데 꼭 이래야 할까 고민스럽다. 내 색깔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일 텐데 무리해서 바꿀 필요가 있을까.”

비디오 사건을 계기로 여성문제에 관심이 생기지 않았는가.

“솔직히 그 사건 전까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외면하고 싶어도 눈에 띄었다. 인터넷을 몇 번 뒤져보니 다 연관되어 있었다. 밖에서 보면 조금 과격하게 비치기도 하지만, 그렇게 강한 표현이 아니면 뜻을 전하기 어렵기도 할 것 같다. 내 생각은 그냥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편안한 참여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을 위해 말이다. 좀더 부드러운 모습으로 내가 활동해보면 어떨까하는 상상도 해봤다.(웃음)”

스포츠연예신문의 과장추측보도나 사생활 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피해 당사자였는데.

“당시 내 기사가 40일 연속해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40일 동안 정확한 사건경위나 피해자 인권문제는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때 ‘기자’라면 끔찍했다. 지금은 괜찮다. 그래도 읽는 이의 눈을 멀게 할 정도의 왜곡은 안 된다는 생각은 변함 없다. 문제가 있기는 해도 연예인인 나에게 이들 신문은 여전히 중요하다. 얼마 전에는 전 매니저와의 소송을 다룬 기사에서 고소장을 실었는데, 거기 써 있는 내 주소와 핸드폰 번호가 그대로 찍혀 나왔다. 황당했지만, 핸드폰 바꾸고 그냥 넘어갔다. 이런 것으로 문제 제기하면 끝도 없다. 연예인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 다른 연예인도 그럴 것이다. 몇몇이 문제제기 해봐야 피해만 본다.”

연예인들이 뭉쳐서 함께 문제제기하면 어떨까. 한번 해볼만하지 않나.

“(웃으면서)그렇겠지만 어디 쉽겠나. 내부에서 노력하는 기자들도 많지 않을까. 나아질 것이다. 독자 역할도 중요하다. 흥미진진하고 관심이 쏠려도 이게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면 거부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수요가 줄어드는 면도 있을 것이다.”

비디오파문 사건을 보면 치밀하게 준비된 범죄에 희생된 것 같다.

“당시에는 나도 두문불출해서 사건경위를 최근에야 알았다. 그렇게 조직적인 범죄였는지 몰랐다. 담당 변호사는 사건 당시 신문·방송과 인터뷰할 때마다 범죄 경위를 명확히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방송출연 금지사유가 ‘연예인으로서의 품위손상’ 아닌가.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지탄이 억울하지 않은가.

“품위 손상에 대해서는 일단 인정하지만, 내 사건으로 연예인 전체가 얼마나 이미지 손상을 입었는지 실제로 확인해 보고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연예인 전체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만일 백지영 씨가 남자연예인이라면 어땠을까.

“남자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대 여성이 자기에게 상처가 더 클 일을 왜 벌이겠는가.”

사이버범죄반대운동에 적극 나서겠다는 뉴스를 읽었다.

“이것도 확대 보도된 것이다. 방송을 못하니까 팬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또 인터넷이다(웃음). 이 공간에서 팬들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내게 공부, 이성친구, 성 문제 등 생활 속의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때론 나의 답장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풀어지기도 해 지금은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상담공간을 운영한다. 여기에 애정이 많다. 내 사건 담당 변호사에게도 동참을 권유하려고 한다. 작지만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곁을 지켜준 팬들과 격려를 보내준 분들이 고맙다. 가수로서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겠다는 의례적인 말말고 특별한 공연을 하고 싶다. ‘세상의 좋은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서….”

최현주(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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