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4월 2003-03-25   2372

“결핵환자의 대부” 사랑의 보금자리 이정재 이사장의 두 얼굴 (1)

주민폭행 차명계좌 관리 “사랑의 리퀘스트” 기부금 의혹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 산61번지에는 결핵인 집단촌이 있다. 1960년대 시립서대문병원이 개원하면서부터 자연스레 발생한 곳이다. 이곳엔 베데스타교회와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보금자리가 있다. 최근 마을주민들은 베데스타교회와 사랑의 보금자리를 운영하는 이정재 이사장에 대해 폭행, 차명계좌, 기부금 의혹 등을 제기하고 나섰다. 편집자주

서울 은평구 구산동 산 61번지. 시유지이자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는 이곳은 1960년 시립서대문병원이 문을 연 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결핵인 집단거주지역이다. 서대문병원과 은평천사원 사이에 게딱지처럼 엎드린 판잣집들은 서대문병원에서 치료를 끝낸 뒤 오갈 데 없던 환자들이 하나 둘 들어와 움막을 세우고 개집을 고쳐 만든 삶의 터전이다.

▲구산동 산 61번지, 결핵인 집단촌 전경

그 때만 해도 결핵은 가족도 돌아앉는다는 1종 전염병이었다. 일반 동네에서는 주민 중 결핵환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즉각 격리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결핵환자에 대한 세상의 차가운 눈초리를 피해 이곳으로 들어온 이들도 있다. 70년대 들어 결핵환자들이 움막을 개조해 판자로 벽을 세우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고 비닐막 대신 쪽문을 달게 되자 이 마을에 빈곤계층이 하나둘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그 중엔 결핵이 아닌 다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있고, 결핵에 덧붙여 한두 가지 다른 질환을 더 앓고 있는 환자도 있었다. 물론 건강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 마을엔 현재 189세대 26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세상의 냉대 속에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존재하던 이 마을은 연말이 되면 구휼의 대상으로 자주 언론에 소개됐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이 마을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돌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 건 지난해 1월 벌어진 웅담주사사건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신약, 웅담주사사건

김상길(71세) 산동네 자치회장은 2002년 1월 16일 새벽 난데없는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마을 주민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옆집에 사는 한완기 씨가 숨진 것 같으니 와달라는 전갈이었다. 김 회장은 서둘러 한씨의 집으로 향했다. 얼어붙은 산동네 언덕은 그날따라 더 오르기 벅찼다. 방문을 여니, 이미 한씨의 몸은 싸늘히 식어 있었다.

전날, 산동네 아래 베데스타교회에서 웅담주사를 놓아줄 테니 교회로 모이라는 연락이 왔다. 한씨를 비롯한 10여 명의 산동네 주민들은 교회로 몰려갔다. 숨이 턱에 차 계단을 오르내리기조차 힘든 이들은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 그런 제안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이들은 80대 노인으로부터 “40년 전 강원도에서 직접 잡은 곰에서 떼어내 보관해온 웅담에서 0.01g을 덜어내 50cc의 증류수에 넣고 주사약을 만들었다”는 설명을 듣고 차례대로 주사를 맞았다. 노인은 “주사를 맞은 뒤 밥을 먹으면 안 된다. 독성이 가라앉는 과정에서 현기증이나 열이 나타날 수 있는데 참으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그 날 밤 주사를 맞은 주민들은 모두 복통과 구토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탈진했으나 그 말만 믿고 억지로 참은 것이다.

1월 17일자 신문에는 구산동의 한 교회에서 11명의 결핵환자가 증류수에 웅담가루를 섞은 주사액 50cc를 팔뚝에 맞은 뒤 그 중 1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10명은 입원 중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부검의는 한완기 씨의 사망진단서에 패혈증이라 썼다.

▲서대문병원 안에 위치한 베데스타교회

이준영 서대문병원장은 “만성적으로 결핵을 앓아온 병약한 사람들이 엉터리 주사를 맞았으니 쇼크나 패혈증이 일어날 수 있다”며 “현대의학이 발달한 요즘에도 신약개발이라는 말에 솔깃했다니 납득할 수 없다”고 혀를 찼다. 산동네에서 오랫동안 자원봉사를 해온 김영상 신촌 세브란스병원 전임의는 “가난하고 병든 그분들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신약의 실험대상이 됐다는 것이 매우 속상하다”며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건강식품이나 약에 쉽게 현혹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산동네에 사는 이만수 씨는 “웅담주사사건 이후 베데스타교회에서 키토산을 타가라고 했지만 내키지 않아 받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웅담주사사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잊혀지고 말았지만 산동네에는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미궁에 빠진 결핵환자 자활촌 건립

산동네에 사는 결핵환자들과 서대문병원 입원환자들을 돕기 위한 사업은 60년대부터 시작됐다. 78년부터 8년간 베데스타교회 목사로 재직한 한영성 국립의료원 담임목사에 따르면, 베데스타교회는 서대문병원이 문을 열 즈음인 60년대 영락교회가 결핵환자들을 돕기 위해 설립했다. 그는 또 80년 베데스타교회와 인연을 맺고 있던 목회자들이 ‘사회복지법인 결핵환자 자활촌 건립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모금활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회마다 다니며 홍보도 하고 기금마련 음악회도 열었다. 추진위원회는 적당한 자활촌 부지를 알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결핵환자들이 살려면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이라야 한다며 결정한 곳은 인천 영흥도.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1시간 20분 가량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으나 추진위는 화력발전소가 곧 완공되면 다리도 놓일 테고 교통도 좋아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임야대장에는 82년 9월 25일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내오리 산 283번지 4만5322㎡(1만3734평)를 현재 사랑의 보금자리 이사장인 이정재 씨가 구입한 것으로 돼 있다. 한 목사는 “자활촌 추진기금으로 땅을 계약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잔금을 치르러 갔던 이씨가 자기 명의로 해놓았다”고 증언했다.

영흥도 땅 구입 후 7∼8개월간 내오리에서 살았던 임승칠 선교사(현재 아이티 체류 중)는 “당시 추진위에서 활동했던 목회자는 많다. 음악회로 모은 돈으로 서울 근교를 비롯해 파주, 강화도까지 터를 물색하다 폐결핵 환자들을 꺼리는 주민들 때문에 영흥도까지 가게 됐다”며 “아직까지 자활촌이 들어섰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정재 사랑의 보금자리 이사장은 “당시 한경직 목사, 최창근 장로 등이 초교파적으로 결핵환자 자활촌을 건립하자고 나섰으나 실제로 그들에게 도움 받은 바 없고, 결국 내 돈으로 영흥도 땅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돕겠다고 했다가 발을 뺀 이유는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답할 바 아니다”라고 잘랐다.

82년 이후 21년이 흘렀지만 영흥면 내오리 산 283번지에는 결핵환자 자활촌이 설립되지 않았다. 산 전체가 오미자나무로 뒤덮여 있을 뿐이다. 산동네 유석규 씨(2002년 9월 11일 사망)는 지난해 기자와 같이 그곳에 갔을 때 “여기가 맞다!”며 “우리가 오미자나무를 심으러 여기까지 왔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산동네에서 많은 환자들이 여기에 와서 김도 매고, 농사도 짓고 살았으나 병원이 멀고 불편해 오래 있지 못하고 모두 산동네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곳에 한동안 자활촌추진위원회 명패가 걸려 있었으나, 사랑의 보금자리 법인이 설립된 2000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탁월한 언론플레이

서울 종로 국세청 뒤쪽, 유료주차장과 허름한 술집이 들어서 있는 인사동 263번지는 사랑의 보금자리의 주소지다. 그러나 사랑의 보금자리 후원용지엔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산 31번지가 찍혀 있다. 역촌동 산 31번지는 시유지인 서대문병원 안에 있는 베데스타교회의 주소지다. 도대체 베데스타교회와 사랑의 보금자리는 무슨 관계일까?

그 고리엔 이정재(64세)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보금자리 이사장이자 베데스타교회의 장로다. 부동산 관리회사 (주)영성 회장이기도 한 그는 69년 구산동 산동네에서 결핵환자 구제사업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국민포장(81년), 국민훈장동백장(97년), 대통령표창(99년)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언론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주로 ‘오갈 데 없는 결핵환자들을 돌보는 사랑의 대부’로 그려졌다. 특히, 2000년 전 재산 550억 원을 털어 결핵환자들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보금자리를 설립했다며 언론에 집중 조명됐다. 이를 계기로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은 이정재 이사장을 2001년 ‘동문을 빛낸 올해의 인물’ 사회부문에 선정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언론 보도는 칭찬 일색이다. ㄱ일보 2002년 8월 5일자는 이 이사장의 입을 빌어 “그는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고 남산 기슭 토굴에서 담요 몇 장으로 추운 겨울을 버티며 하루 두끼 꽁보리밥으로 때운 청년실업가였다. 고생 끝에 결핵에 걸린 그는 서대문병원에서 죽어 가는 결핵환자들을 보며 평생 결핵환자를 위해 살겠노라고 기도했고 69년 기적처럼 나았다”고 썼고, ㅈ일보 2002년 4월 3일자는 “공사판을 전전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공부해 3년 만에 서울대 농화학과에 합격한 인물”이고, “전 재산 550억 원을 쾌척한 그는 1970년 사재를 털어 마을 입구에 베데스타교회를 세웠으며, 종교와 삶과 희망을 그들에게 심었다”고 썼다. ㅅ일보 2001년 12월 28일자엔 이런 기사도 실렸다.

“건물 임대업 등으로 모은 수입 가운데 매달 2000만 원 가량을 환자 1인당 5만∼30만 원씩 나눠주고 닭과 개를 잡아 영양을 보충해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5만 명. 그래서 이곳 환자들 가운데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기사들은 대개 보잘 것 없는 결핵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정재 이사장의 선행을 소개하고 ‘사랑의 보금자리’ 후원계좌와 전화번호를 알리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베데스타교회에서 9년 간 회계를 보았던 김아무 씨는 이런 보도들은 대개 이정재 이사장의 언론플레이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신문에 실리면 후원금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정재 이사장은 기자들에게 ‘홍보’를 부탁하기도 한다. ㄱ일보엔 이정재 이사장과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며 거래해온 기자도 있다.”

임대주택과 사랑의 보금자리타운 건설

82년 서대문병원에 입원했던 송규옥(51세) 씨는 퇴원 후 갈 곳을 찾지 못해 산동네에 눌러 앉았다. 부인은 갑상선질환에 폐결핵을 앓고 있고, 송씨는 천식과 만성기관지염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방엔 산소통이 있다. 밤엔 그걸 끼고 자야 한다. 부부는 남들처럼 힘든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정부보조금과 민간 후원금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판잣집은 크기가 6평 남짓 되는데 500만 원 정도 값이 나간다. 무허가 건물이지만 그 동네에선 매매가 된다. 아예 산동네에 살면서 이쪽 부동산만 취급하는 업자가 있을 정도다. 산동네로 오는 사람들은 대개 움막 같은 집이라도 내 집 한 칸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사기도 하고, 개발을 염두에 두고 집을 사는 사람도 있다. 또 그렇게 산 집에 세를 놓기도 한다. 72년 정부가 인정한 무허가 주택 45채는 2000만∼3000만 원에 매매가가 형성돼 있고, 그 뒤로 생긴 무허가 건물 58채는 500만 원대다. 얼마 전부터 45채의 가격이 부쩍 올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5월 서울시 주택국에서는 구산동 주거환경개선 자문회의가 열렸다. 고건 서울시장이 지시한 결핵촌 주거환경개선에 대해 주민 대표, 전문가, 공무원들이 모여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근 구산연립 재건축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그 마을에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보금자리가 수용시설 건립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이 주거환경개선을 원하고 있어 사업방향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주민 대표는 “사랑의 보금자리가 추진하는 수용시설보다는 서울시 공공사업으로 마을의 주거환경을 개선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 대표는 두 달 전 175세대를 대상으로 직접 실시한 주민의견 조사서를 냈다. 결과는 자력개발 4, 서울시 158, 기타관공서 1, 사랑의 보금자리 2 등이었다.

이날 서울시는 3가지 방안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제1안 사랑의 보금자리 등의 수용시설 건립, 2안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한 임대주택의 건설 및 공급, 3안 공원 조성이 그것이다. 사랑의 보금자리가 서울시에 제출한 안대로라면 소요예산은 138억 원, 수용인원은 1000명(744세대). 전문적인 관리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특정시설 지원에 대한 주민 반발과 기존 주택 정비대책이 미흡하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제2안으로 결정될 경우에는 소요예산을 50억 원으로 줄일 수 있고 최소한의 개발로 개발제한구역 훼손 최소화, 현지 주민의 재정착 용이, 기존 커뮤니티 유지 등의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들어선 무허가건물 58채 주민들에게 입주자격을 줄 것이냐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고, 시비가 들어간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제3안은 소요예산 20억 원에 도시정비차원에서 가장 유리하지만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어서 곤란했다.

이날 토의에서는 제2안으로 윤곽이 잡혔다. 서울시는 자문회의 결과를 토대로 은평구에 환경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올해 말 도시개발공사는 구산동 산 61번지에 임대아파트를 짓는 공사를 착공한다. 그래서 요즘 산동네엔 ‘딱지’를 찾는 문의전화가 밀려들고 있다.

>>>”결핵환자의 대부” 사랑의 보금자리 이정재 이사장의 두 얼굴(2)

본지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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