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2월 2003-02-06   471

“뺄셈의 정치”하기보다 중도세력까지 포섭해야

노무현정권은 반대세력들을 설득하여 개혁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사회통합과 사회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비단 노무현정권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행 이후에 출범한 개혁정권들도 유사한 상황에 처했던 바 있다. YS정권과 DJ정권은 민주화운동세력이 주축이 되어 세워진 정권으로서 국민들로부터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강한 요구를 받았던 반면, 보수세력의 끈질긴 저항에 직면했다. 결국 두 정권의 개혁정책은 부분적으로 의미있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중도에서 좌초하였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노무현정권이 개혁에 성공하고 노무현 스스로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이 정권들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보수 권위주의세력과 결합한 YS-DJ ]

 

먼저 YS정권은 권위주의적 세력과 결탁하여 집권하였다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행 이후에 최초의 민간정권으로서 국민들의 의식 속에 민주화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대세임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권력내부의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못하였고, 경제관리의 실패로 인해 외환위기를 초래하였으며, 지역주의적 균열을 깊게 했다는 점에서 실패한 정권으로 볼 만하다. DJ정권은 경제위기 극복과 지역갈등 해소를 내세워 집권에 성공하였으며, 실제로 IMF체제의 조기 종식, 남북한간 냉전적 체제갈등의 완화, 폭넓은 사회복지제도의 구축 등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DJ정권 역시 권력 내부의 부정부패와 지역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였고,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성공한 정권으로 간주하기에 미흡하다.두 정권 모두 부정부패의 청산과 사회갈등의 해소에 실패하였고 민주체제의 요건인 체제수행력이 허약한 정권이었다. 또한 제왕적 대통령제와 같은 권위주의적 유제들을 혁파하지 못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발육지체를 초래하였다. 이 과제들은 그대로 노무현정권이 떠맡게 되었다.

노무현정권이 과거의 정권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실패한 개혁 목록이 아니라 실패의 원인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현재와 비교해 볼 때, 앞의 두 정권 출범 당시에 국민들의 개혁열망이 더 약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정권 내부에서 개혁이 퇴조하면서 국민들이 좌절하였던 것이다. 두 정권 모두 초기에는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정치체 내부의 권력기반은 노무현정권에 비해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두 정권에 대한 반대세력의 동원강도가 적어도 초기에는 노무현정권에 비해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정권은 왜 개혁에 성공하지 못했는가? 우선 두 정권 모두 민주개혁세력만으로 구성되지 못하고 보수적 권위주의세력과 결합함으로써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개혁을 추진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 개혁세력의 기반이 매우 협소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협소한 개혁세력이나 협애한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만으로 개혁실패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YS정권은 국민들의 열망에 기대어 군부개혁과 정치개혁 등을 매우 강력하게 실시했다. 그러나 그 내면은 자파 정치세력을 동원하여 지배블록 내부의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권력투쟁과 다르지 않았다. 정치체 내부의 반대세력을 제거하려다 보니 그 양상은 정당, 의회 등 정치체제 자체의 개혁이 아니었고 이를 우회하는 위임민주주의적 정치개혁이었다. 시민사회의 감성적 동원에 의존하였을 뿐 지속적이고 강력한 조직적 관계를 맺지 못했다. 그 결과 권력경쟁이 완료된 이후에는 외부의 견제없이 강력해진 정권과 그에 기반한 부정부패만이 남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개혁의 다른 축인 재벌과 언론은 그대로 방치되었다. 즉, 눈앞에 보이는 정치세력만을 표적으로 하여 개혁의 칼날을 들이밀었던 것이다.

 

DJ정권 역시 이른바 DJP연합을 통하여 다른 야당과의 권력경쟁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소수파정권이라는 한계 때문에 결코 정치개혁을 주도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외환위기라는 절대적인 호기를 재벌과 언론의 개혁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소수파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파의 정치세력이나 보수적 정치세력을 중용함으로써 개혁을 후퇴시키고 지역주의적 균열을 오히려 증폭시켰다.

노무현정권은 특정 제도권 정치세력보다는 대중의 정치적 지지에 힘입어 집권에 성공하였다. 이로 인해 낡은 정치체제로부터 자유롭게 개혁을 시도할 수 있는 여지는 크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을 지지한 대중들은 지역주의와 냉전적 사고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집단이다. 따라서 노무현정권이 낡은 정치체제를 청산할 수 있는 동력은 개혁적 대중들의 동원과 참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YS정권의 좌절에서 보듯이 무정형의 비조직적 대중은 동원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정치적 지지의 성향 역시 대단히 불안정하고 까다롭다. 따라서 이들이 우회와 진퇴를 거듭하는 개혁정치를 감내해 내리라고 기대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또한 대중동원이란 모든 개혁적 이슈에 대해서 특히 정치체제의 개혁에 대해서 항상 동조적이지는 않다. 그러한 대중들의 의식 속에 여전히 잔존하는 지역주의나 국가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혁세력으로 새권력 기반 만들어야 ]

시민사회가 그 대안이 아니라면 과거의 정권들처럼 정치사회에서 권력강화를 모색해볼 수 있다. 그러나 정당과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정치세력들은 과거처럼 정치보복이나 사정을 통하여 제거될 수 없다. 민주화이행이 지속되면서 그들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정당제도와 의회제도라는 보호막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제왕적 총재가 가지고 있었던 공천권을 행사하기도 쉽지 않다. 이미 노무현은 정치개혁의 과제로서 당권과 대권의 분리를 공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권력기반을 만들기 위해 현재의 정치세력을 과도하게 배제하는 전략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또다시 대통령당을 만들고자 노력한다면 일시적으로는 성공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낡은 정치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즉, 적어도 1년 이상 남아 있는 다음 총선까지는 낡은 정치세력들과 불편한 동거를 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현재의 보수세력들은 과거와 달리 노무현정권에 대해서는 집권 초기의 허니문을 허용할 것 같지 않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 개혁노선이 손상되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결국 노무현정권은 과거의 권위주의적 대통령과 총재가 가졌던 권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스스로 포기하였다. 따라서 YS정권이나 DJ정권에 비해 더 협소한 정치세력을 기반으로 개혁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두 정권처럼 편의적인 권력동원에 의존할 수도 없다. 결국 마지막 대안은 새로운 권력기반을 개혁지향적 국민과 개혁적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형성해내는 것이다. 개혁적 정치세력을 폭넓게 규합하되 배제적인 ‘뺄셈의 정치’보다는 정치제도의 개혁을 매개로 중도적인 세력들까지 포섭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개혁적 대중들이 정치적으로 조직화되면서 스스로를 대표하거나 다른 정치세력과 결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무현정권이 할 일은 다음 총선을 계기로 이러한 대안이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개혁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국민들로부터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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