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7월 2002-07-02   303

“당신들의 축제”에 대한 거부와 심판

6·13 지방선거의 결과에 대해 언론은 민주당 참패, 한나라당 압승으로 요약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언론은 자민련의 몰락과 민주노동당의 약진을 덧붙인다. 물론 충청지역 언론은 자민련이 충청도를 대표하는 정당에서 충청도의 ‘일부’만을 대변하는 정당이 되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지만.

언뜻 보면 언론의 이러한 선거결과 평가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듯싶다. 선거의 결과는 승자와 패자를 구별해 주었고, 중앙정치집단의 승패 문제를 살펴본다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기성정치권 모두의 패배

그러나 전국 동시선거 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이라는 점 때문에 이러한 현상적 분석을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이 이기고 민주당이 패배한 측면보다 기성 정치권 모두가 거부되고 심판받았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부패한 파당적 중앙정치세력의 지방정치 독점에 대한 유권자의 투표 불참을 통한 거부 의사가 표출되었다. 과반수가 넘는 국민들이 투표 거부를 선택하여 희망이 없는 정치에 대한 심판을 행한 것이며, 그동안 지방정치를 독점해 온 중앙정치세력 모두에게 패배를 안겨준 셈이다.

압승해서 너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는 한나라당이 얻은 지지는, 절반이 안 되는 국민의 절반의 지지만을 얻은 것에 불과하다. 겨우 총유권자 25%로부터 지지를 얻어, 평상시의 정당지지율을 확장시키지 못한 셈이다. 28.6%의 지지율을 얻어 총유권자의 14%만의 지지를 얻은 민주당과 6%를 얻어 총유권자 3%만의 지지를 얻은 자민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유권자들은 민주당과 자민련에 스스로의 존재의미를 찾아가지 못한다면 당신들의 미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지방선거가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은 이번 지방선거를 주도한 정치집단에 대한 냉혹하고도 명백한 국민의 심판임을 보여준다.

시민사회운동의 통일적 대응 미흡

물론 이러한 폭발적인 투표 거부를 넘어서, 참된 대안과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유권자 운동을 이끌어내야 할 책무를 지닌 시민사회운동도 반성해야 할 점은 적지 않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은 후보를 입후보시켜 직접 참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 검증, 시민정치교육, 투표참여운동 등 다양하고 활발한 유권자 운동을 진행하였다. 특히 단체가 앞장서고 유권자가 뒤쫓아오도록 하는 방식을 넘어서, 유권자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유권자운동이 다양하게 추진되어 적지 않은 성과를 얻었다. 네거티브 캠페인을 넘어서 좋은 후보를 유권자 스스로가 직접 찾고 만드는 유권자운동은 앞으로 더욱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운동의 유권자운동은 지방자치의 원칙에 맞추어 지역별 부문별 대응과 사안별 연대를 원칙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지역·부문별 실정에 맞는 대응, 분산적이며 자율적인 운동을 통해 지방자치와 운동의 발전의 원칙에 부합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현실을 반영한 대응에는 취약한 측면도 있었다. 부정적이면서도 강력한 지배력을 갖는 중앙정치집단의 지방선거에 대한 영향력을 억제하고, 참여민주주의 공간을 확장하기 위한 전국적이고 통일적인 대응에서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부패하고 파당적인 중앙정치집단의 부당한 지방선거와 지방자치에 대한 개입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이에 대한 비판과 감시, 극복을 위한 통일적 연대는 추진되지 못하였다. 부문과 지역별로 자율적이며 탄력적인 실천이, 중앙정치집단의 부당한 개입에 맞서 싸울 원칙과 시민사회운동의 연대 조직을 만드는 일과 대립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성취해내지 못했다. 이는 다양한 후보전술을 구사한 쪽에서도 강력한 대체 집단으로까지 스스로를 부각시키지 못한 점에서 유사한 반성이 필요하다.

지역주의·보수화 경계해야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지역할거형 정치가 몰락하고 있으며 결국 진보와 보수, 대결구도의 재편성이 눈앞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호남지역주의의 퇴색과 충청지역주의의 몰락을 통해서 상대가 있어야 성립되는 지역할거형 대립구도는 자연 소멸이 다가오고 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일부 영남권에서 민주당에 근접하는 민주노동당의 선전과 더불어 녹색평화당, 사회당 및 녹색후보 등 시민후보들의 활약이 그 근거가 되고 있다.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치지형의 재편성은 정치발전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희망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투표 성향이 지역주의를 넘어섰다고 평가하기는 조금 이른 감이 있다.

이번 선거의 흐름은 김대중정권의 부패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영남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는 좀더 명분이 있는 지역주의적 동원이 가능했으며 호남과 충청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이에 따라 지역주의 정치의 종말이 아니라 왜곡이 나타나면서 투표 참여자의 보수화가 강화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정치세력과 시민후보들의 성적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대에 부합되었던 것은 아니다. 지방정치를 독점하는 정치집단이 얼굴만 바꿔 출현하는 것에 맞서 의미 있는 성과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약진했다는 민주노동당은 여론조사에서 앞서왔던 울산시장 선거에서 막판의 지역주의적 역선전에 패배했다. 민주노동당의 정당지지율이 상승한 것은 1인2표제의 제도개혁 효과로 평가된다. 서울시장과 울산시장 선거결과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정당지지율과 후보지지율 상당한 차이는 엄밀한 의미의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시민후보들도 선전했지만 기득권을 가진 토호세력과 기성정치인을 압도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여전히 우리에게 지역주의적 정치 행태에 대한 감시와 극복을 위한 노력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과제이며, 왜곡된 지역주의가 보수화로 귀결되는 현실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 혁신을 위한 새로운 출발

낮은 투표 참여를 통한 지방정치를 독점해 온 기성 중앙정치집단에 대한 심판, 왜곡된 지역주의의 보수화로의 귀결, 시민사회단체의 유권자운동의 새로운 발전의 지체는 새로이 출범하는 3기 민선자치가 참된 주민자치와 지역발전을 가져올 계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준다.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통한 생활 정치의 희망 만들기가 이루어졌기보다는 기성체제에 대한 부정과 기피만이 넘쳤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지난 민선2기 광역단체장 16명 중 5명이 구속되었으며, 기초단체장 232명 중 46명이 사법처리 됨으로써 지방자치가 부패한 토호와 건달의 은신처가 되었다는 오명을 벗을 충분한 근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지방정치를 독점해 온 기득권 집단에 대한 거부의사는 분명했으나 인물이 다소 변경된 채 유사집단이 다시 지방정부를 장악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71조 원에 달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투명하게 편성하고 제대로 사용하는지를 감시할 제도적 장치도 만들지 못했으며, 지역이 지역의 특성에 맞는 발전 전략을 세우고 스스로의 힘으로 지역을 발전시킬 권한과 책임을 획득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사랑과 우애의 공동체를 위한 풀뿌리 민주주의로 지방자치를 가꿔나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중단될 수 없다. 정치개혁의 꿈도 버릴 수 없다. 지방자치를 혁신할 새로운 세력을 등장시키지는 못했을지라도, 선거과정에서 벌인 유권자운동의 결과로 획득된 지방자치의 투명화와 주민참여의 활성화, 지방분권을 위한 후보자와 정당들의 수많은 약속이 우리들의 새로운 희망만들기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확인된 기득권 정치집단에 대한 국민들의 뚜렷한 거부의사가 다가올 대선에서 정치개혁의 꿈을 실현해나갈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김제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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