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6월 2002-07-02   629

“NATO식 개혁”이 부른 국정파탄

행복한 말년을 보내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는 기대는 여전히 ‘헛된 꿈’에 불과한 것일까.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 역대 대통령의 비극적 종말과 불행한 말로가 현 대통령에게까지 이어지리라는 불행한 예감이 엄습한다. 아들들과 측근들까지 가세한 권력형 부패의 심화, 깊어만 가는 노동자 민중의 삶의 고통, 파탄난 농정, 가정의 파괴적 해체, 꿈을 잃어버린 청년들의 양산, 기승을 부리는 흉악 범죄…. ‘위기의 심화, 희망의 부재’를 말해주는, 김대중정부 통치 4년 반의 결과의 구체적인 목록들이다. 2002년 오늘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행복하다고 답할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극소수만이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일까? 식상할 정도로 많이 들어온 기득권 수구세력의 ‘포위된 개혁’ 탓일까? 그것은 부차적일 따름이다. 일차적인 책임은 바로 김대중 정부 스스로에게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자업자득이기 때문이다.

실패한 권력과 정치의 파행

“헌정사상 최초의,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도약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전망을 열었다.” 1997년 15대 대선 결과를 놓고 시민·사회단체들에서 나온 축하 성명의 내용이다. 이 정권교체 말고도 김대중정부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위기관리 능력, 준비된 대통령의 ‘개혁적’ 성격 등으로 인해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찬사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 절정이었다. 그러나 출범으로부터 4년 반의 시간이 흐른 지금 결과는 민주주의의 퇴행·희화화로 나타났으며, 국정운영의 총체적 실패, 실패한 권력의 길로 김대중정부는 치닫고 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무엇보다 그것은 낡고 썩은 정치의 온존 강화와 그로 인한 정치의 파행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가 모든 문제 해결의 핵심 고리인 우리 사회에서 출발은 정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의 정치는 ‘개혁의 무풍지대’로서의 정치였으며, ‘위기의 브레이크가 아닌 위기의 액셀러레이터’로서의 정치 그 자체였다. 한 정치학자의 말처럼 이른바 한국정치의 ‘빛과 그림자’이자 ‘천국과 지옥’을 상징하는 ‘3김 정치’의 폐습을 답습함으로써, 김대중정부는 정치의 파행을 자초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문제의 근원은 무엇보다 민주개혁 작동 시스템의 구축과 민주개혁을 추동해낼 정치력을 담보한 개혁 주체세력의 형성을 김대중정부 스스로 도외시한 데 있었다. 우선, 이러한 정치의 파행은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한 DJP 지역연합으로 상징되는, 개혁과 수구의 동거체제라는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민주개혁이 구질서의 ‘창조적 파괴’이자 혁신적 재편이라고 할 때, 그것은 본질적으로 혁신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과의 지난한 싸움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싸움은 태생적 한계로 인해, 즉 민주개혁의 주체와 대상이 혼란스럽게 얽히고설켜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수행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제몫 챙기기에 혈안이 된 ‘유신 본당’ JP와 자민련을 보면서도, 오랫동안 김대중정부는 정치공학적인 수의 정치에 대한 맹신과 공조체제 유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이것은 독재와의 무원칙한 정략적 대타협이라고 할 수 있는, 전두환·노태우의 사면·복권과 국가 원로 예우, 국고 지원을 통한 박정희 기념관 건립 추진, 이승만 흉상의 국회 건립 등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한편 청와대의 무능력, 행정부의 복지부동, 집권여당의 방향 상실 등은 민주개혁 작동 시스템 구축의 실패의 결과로, 사실 그것은 DJ의 통치 리더십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김대중정부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최고 통치자가 선출되지만 선출된 이후 대통령 한 사람에게 거의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위임되는 ‘위임 민주주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위임 민주주의 하에서 DJ의 리더십은 모든 것이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고 대통령에게서 끝나는 ‘나 홀로’ 통치이자 ‘원 맨 플레이’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하여 개혁에 대해서 말만 있고 행동은 없는 이른바 ‘NATO(No Action Talking Only)식 개혁’ 속에서 민주개혁의 실종 상황이 지속된 것이며, ‘준비된’ 대통령인 DJ의 화려한 영광 속에서 초라하게 질식해버린 정치의 몰골, 그 그늘 아래 가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은 바로 ‘지적·도덕적 지도력’을 확보하지 못한, 특유의 지적 우월성으로 자기 무장한 DJ 통치 리더십의 결과이기도 했던 것이다.

민주개혁이 그것을 주도할 주체 형성과 인적 청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나 DJ 개인의 ‘준비성’과 개인주의적 리더십에 철저히 의존한 김대중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대단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논공행상 차원의 나눠먹기식 인사, 호남 편중의 역차별 인사 논란, 반개혁적이고 비민주적인 인물들의 무차별 중용이야말로 DJ식 인사의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영입한 개혁적 인사들조차도 일회용 반창고 정도로만 치부해버린 것은 그 동전의 양면일 따름이었다.

희망을 노래하기 위하여

이러한 정치의 파행과 총체적 국정 파탄은 ‘적대적 상호의존’ 관계로 이루어진, 반쪽 불구화된 보수정치 틀의 자연스러운 결과이자, 궁극적으로는 생산적인 경쟁정치의 부재, 민주적인 책임정치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87년의 ‘민주적 돌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당은 지역주의적 정당체계와 1인 보스 중심의 사당화된 봉건적 정당구조를 주요 특징으로 해왔다. 이처럼 보스에게 충성하고 지역감정에 불을 지피는 것이 정치 생명을 연장하는 지름길인 기성 정치구조에서, 정책 경쟁을 통한 책임 정치가 아니라 무책임한 정쟁의 악순환적 반복만이 되풀이되어 온 것은 당연했다. 민주개혁 친화적인 사회적 기풍의 조성과 국민적 합의의 창출 실패는 그 자연스런 결과였다.

이른바 ‘노무현 돌풍’이 불어닥친 것은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염증이 극에 달한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였다. 출구를 찾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던 대중들이 여전히 ‘새로운 정당’에 주목하기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통해 또다시 기대와 희망을 되살려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희망이 또다시 물거품이 된 채 배반과 고통의 정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사의 외침을 들으려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랬을 때, ‘87년 이래 단절된 민주역사의 복원’이라는 미명 아래 추진된 노무현식 정계개편으로서 ‘신민주대연합’, ‘민주·개혁연합’은 위기의 극복, 희망의 창출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는 답이 될 수 없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했지만 그 기본 속성은 민주개혁을 추진할 새로운 정치 주체의 형성이 아니라, 정치공학적인 수 정치의 재판이자 ‘3김정치’ 부활 등 역사퇴행적인 과거로의 회귀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난 역사의 교훈은 정치 개혁 없이 사회경제적 개혁이란 요원하며, 정치 개혁의 핵심이 정당체계와 정당구조의 민주적 재편이라는 것을 여실히 입증해 준다. 경쟁의 정치, 책임의 정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민주개혁이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자유주의-진보주의간의 민주적인 정치경쟁 구도의 안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보정치가 제 자리를 찾을 때 비로소 불구화된 보수정치에 대한 정치적 견제와 압박, 긴장 속에서의 자기 정화를 통한 보수의 정상화, 적나라한 권력다툼의 정쟁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경쟁과 책임 정치의 실현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조현연 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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