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4월 2002-04-10   638

“김동성” 이후 맥도널드 안 먹는다

“김동성” 이후 맥도널드 안 먹는다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갑자기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살펴보는 사람, 장난스럽게 따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래봐야 소용없다”며 혀를 차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정정당당 코리아’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애국가를 부르던 젊은이들은 다음 카페 ‘HEY FUCKING USA(반미운동본부)’ 회원들이었다.

지난 2월 24일 개설된 이곳에는 벌써 7000여 명의 회원이 모여 미국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모으고 비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슬슬 가벼워지기 시작하던 지난 3월 9일. 온라인으로만 만나던 이 모임 회원 40여 명이 처음으로 모여 미국 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손에는 각자 만들어온 유인물과 태극기, 피켓이 들려있다. 회원들이 가지고 온 유인물은 20대의 개성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였다. 일반적인 집회처럼 똑같은 유인물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각자가 컴퓨터로 작업하거나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자료 중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을 가지고 나와 시민들에게 나눠준다.

“제발 우리 기사 20대들의 냄비라고 쓰지 마세요. 저러다 말 것이라고 쓰지 마세요. 요즘 만득이 얘기 안 하는 이유가 뭐예요. 재미없기 때문 아닌가요. 우린 재미없어질 때까지, 불매운동이 필요 없어질 때까지 할 거예요.”

HEY FUCKING USA의 부회장 김보미 씨(20세)는 불매운동을 겨울 올림픽 쇼트트랙에 출전한 김동성 선수에 대한 편파 판정 사건으로 화난 20대들이 분을 참지 못해 일시적으로 벌이는 행동으로 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금까지 미국을 정의로운 나라라고 생각해 왔어요. 미국은 정의가 살아있기 때문에 잘사는 것이고 우리는 정의가 없어서 이렇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김동성 사건을 보고 알았어요. 눈을 뜬 거예요. 미국은 정의를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거리에 나온 이유

명동에 모인 회원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교복을 입고 태극기를 든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이들은 생각만큼 움직인다. 분명하고 솔직했다. 감정적으로 동요하기 시작한 게 왜 문제냐고, 냄비 근성이니 뭐니 헐뜯으려 드는 세상을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른들과 달라요. 인터넷을 통해 (미국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고 자극을 받아요. 인터넷에서 본 기사들이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어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미국을 비판하는 일만 할 수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비판보단 실천이 값진 게 아닌가요.”

“그런 나라 상품을 왜 사야 하나요. 불매운동을 시작하고 미국 제품을 조사하며 깜짝 놀랐어요. 차라리 국산품을 찾는 게 더 빠르더라구요. 미국 제품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소비력 있다는 반증이지 않을까요. 같은 돈으로 미국 제품 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온라인 모임이면서 오프라인 활동에 나선 이유를 회원들은 실천의 중요성으로 설명했다. 이들은 미국에 대한 항의의 방식으로 미국 제품을 사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특정 상표에 대한 불매운동보다는 미국 제품들에 대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우리나라 제품을 사용하자고 권유하는 캠페인성 운동을 펼치고 있다.

백민규 회장(20세)은 “아직은 미국 제품회사에서 공식적으로 항의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거리에서 운동을 할 때 가끔 우리나라 상인들이 자기 제품은 영어이름이지만 미국제품이 아니니 시민들이 오해하게 하지 말아달라며 항의할 때가 있습니다”라고 말해 순수 우리나라 상표들이 오히려 불매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들이 유인물을 통해 알리고 있는 불매대상 상품 목록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맥도널드를 비롯해 스타벅스, 코카콜라, 말보로, 버드와이저, 나이키, 암웨이, 존슨앤존슨, 엘리자베스 아덴, 이스트팩, 시티뱅크, HBO(미국영화채널), 퓨리나(애견제품) 등 1차 조사에서만 100개가 넘는다.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있는 미국 제품이 얼마나 많은지를 발견한 것 자체가 작은 수확일 수 있겠다.

애국가는 불안하다

“약소국이라고 무시하는 데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시작했어요. 상처를 받을 대로 받았어요. 우리더러 꼴값하지 말라고 막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대한민국을 대한미국이라고 비웃으면서도 스타벅스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요.”

미국에 대한 비판을 불매운동으로 이어가면서 태극기를 꺼내든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명동에서 울려퍼지던 애국가를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한 미국인은 “불매운동은 소용없는 짓”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대학에서 한국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제이슨 씨(33세)는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은 과연 정의가 있는가. 그 회사들도 노동자를 착취하는 회사들”이라며 불매운동이 단순히 반미행위로 선택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맥도널드 가지 말기’운동은 근간 『패스트푸드의 제국』 등에서 고발하고 있듯이 미국 기업들의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항의여야지 단순한 반미의 시각으로 행동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이다.

HEY FUCKING USA의 ‘우리 한국 사랑하자’ 게시판도 불매운동에 대한 논쟁으로 뜨겁다.

“외국 기업이라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우리의 기업입니다. 외국에서 우리 상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인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우리의 근대화를 막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힘을 키웁시다.”

“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국익은 돈이십니까? 주체성을 가진 국민이 없다면 국익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때리면 또 맞을까봐 끽소리 못 내는 정치인들처럼 굴지 말고 최소한 아프다고 소리 지를 수 있는 그런 국민이 됐으면 해요. 찾으려 하지 않는 권리는 아무도 주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느끼네요.”

“왜 우리가 이토록 불매운동을 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제가 예를 들어주죠. 노근리 사건, 매향리 사건, 미군부대 독극물 사건, 윤금이 사건 등과 김동성 선수 일, 하이닉스 협상, 차세대 전투기 사업 의혹 등.”

HEY FUCKING USA는 개설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활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매주 대화방에서 회원들이 만나 온라인 토론을 벌이고 서울이 중심이 되는 활동뿐만 아니라 부산, 울산, 인천, 마산, 강원도, 충청남도, 안양, 충청북도 등의 운영자를 따로 뽑아 각 지역 실정에 맞는 운동을 하고자 한다. 미국에 대한 정보도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 자료를 모으고 있다. 미군문제 백서를 비롯해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서 일어났던 많은 사례들을 수집하고 우리나라 제품들의 경우도 원료를 어느 나라에서 공급받는지 등을 조사중이다.

미군에게 살해당한 유흥업소 종업원 윤금이 사건이 2002년에 일어났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감정은 사람을 움직이는 첫걸음이지 않은가. 화가 풀리면 곧 멈추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새로운 눈뜸에서 시야를 넓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질로까지 반성적 사유와 실천이 이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생긴다. 불매운동 시작한 지 1주일 후 HEY FUCKING USA 회원들은 차세대 전투기 F-15 구입 반대 오프라인 서명운동에도 동참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김동성 사건은 시작일 뿐이라는 그들의 말은 이렇게 실현되고 있었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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