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7월 2001-07-01   1113

10년 후 역사의 책임 묻겠다

미래세대 33인이 선정한 ‘새만금 생명 30적’

‘뭐 이런 불사신 같은 놈이 다 있나.’ 사업 추진의 논리는 이미 거덜난 지 오래고, 최소 6조원이 들어갈 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은커녕 환경영향을 뒷수습할 대책도 없다. 갯벌에 깃들어 사는 무수한 크고작은 생명들의 존립은 말할 것도 없고, 쌀을 생산하겠다는 가장 기본적인 명분조차 설득력을 잃었다. 사업시행기관인 농업기반공사나 주무부처인 농림부는 스스로 사업을 책임질 역량이 없다. 국민의 83% 이상이 반대하는 사업 강행을 결정할 힘이 이들에게 있을 리 만무하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아직도 포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토지건설업자들을 위해 새만금간척사업 강행하나?

문제는 정치다. 그 근시안과 오만과 탐욕이다. 5월 25일 강행발표 이후 만난 정치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이렇다. "전라북도 주민들이 절절히 원하는 한,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이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 차마 사업의 타당성을 소신 있게 내세울 수 없는 정치인들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내년의 선거를 좌우할 표의 계산일 뿐이다.

실상 그들이 말하는 전라북도 주민들이란 유종근 도지사를 필두로, 개발사업의 일차 수혜자가 될 토건업자들과 이들을 밥줄로 먹고사는 지역언론, 수조 원의 사업비를 둘러싸고 이차삼차 수혜자가 될 한 무리의 사람들뿐이다. 새만금 수질대책이라는 게 전라북도 거의 전지역을 각종 규제조치로 꽁꽁 옭아맨다는 것인데 이런 실상을 알고도 사업에 찬성할 전북 주민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니 이 사업에 목을 맨 사람들은, 조금만 버티면 농지대신 복합산업단지가 들어설 것이라는 기만과 새만금 사업이 얼른 추진되지 못하는 것은 전북도민을 만만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선동으로 썩은 동아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업이 멀쩡하게 추진될 수 있는 것은 사업을 추진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게 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새만금 사업이 예정대로 추진되고 그 10년 후에 결국 완전히 망가진 새만금 간척지를 시화호처럼 포기하고 수십, 수백조 원의 혈세를 들여 방조제를 허물고 바닷물을 들여보내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그 순간에도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다는 것처럼 참담한 일이 있을까. 그리하여 미래를 염려한 어린 벗들이 생각해낸 것이 타임캡슐이다.

차라리 ‘쌀소비 늘리기 운동’을 하라!

강행 발표 이틀 후, 날씨 화창하던 일요일 환경연합 마당에 전국 각지의 환경동아리를 대표한 33명의 고등학생들이 모여 10년 후 어른이 되어 책임을 묻겠다며 새만금 30적의 이름을 적어 타임캡슐에 봉안했다. 이 숙연한 자리를 지켜보던 언론사 기자들이 증인이 되어 자신의 명함을 함께 묻었으며 그 위에는 시화호에서 죽은 조개껍질이 무덤처럼 쌓였다. 이 30적의 언행을 『시민의 신문』 박근형 기자가 한 면 가득히 기록해두었다.

한갑수 농림부장관에 의하면 ‘농림부는 그 농지에 산업단지를 들여놓을 생각이 전혀 없’단다.(KBS-1 TV, 5월 13일 보도) 산업단지라는 유혹이 없었다면 전북 주민들이 새만금 사업에 지금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을까? 유종근 전북지사는 ‘일부라도 산업단지로 전용해야 한다’는 뜻을 굽힌 적이 없다.(『오마이뉴스』 3월 27일치) 역사는 누구의 편일까?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한 장관이 책임을 질까? 혹은 산업단지를 들여오지 못하면 유 지사가 전북도민에게 책임을 질까?

이한동 국무총리는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9% 정도에 불과하다…주곡생산을 위해서는 다른 것 따질 이유 없이 새만금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총대를 멨다.(수원 농촌진흥청, 3월8일) 그러나 정작 새만금 간척의 명분인 쌀 생산은 자급률이 100%를 오르내린다. 정작 농민들은 쌀 소비를 늘리는 운동을 하든지 생산을 줄이든지 해야지 도저히 채산이 맞지 않아 농사 못 짓겠다고 말한다. 전국적인 농민단체들, 심지어 전북 농민회조차 이 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농사짓게 하겠다는 사업을 농민이 반대하는 데 대체 이 사업은 누굴 위한 것일까?

하나 더. 6조 원 들여 10년 공사하고 또 10년 동안 소금기를 빼서 2만8000ha의 논을 만들겠다는 우공이산의 처절한 노력이 전혀 필요 없는, 간단한 대안이 있다. 각종 난개발에 밀려 매년 사라지는 농지가 2만ha 이상이다. 용도변경하려고 논에 건축쓰레기를 쏟아붓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을 것이다. 멀쩡하던 논바닥에 불쑥 고층아파트가 솟아오른 살풍경도 흔히들 보았을 것이다. 그런 짓의 절반만 막아도 3년이면 새만금 간척지 이상의 농지가 생긴다. 물론 몇 조원씩 돈 들일 일도 없다.

역사의 책임을 져야할 ‘새만금 30적’

농업진흥청 손정수 차장은 5월 25일 발표한 ‘순차적 개발안은…갯벌유실 등 환경문제를 최소화’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한다.(새만금공개토론회, 5월 10일) 그러나 순차개발안이란 일단 방조제를 다 막고 내부 개발만을 순차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이다. 환경연합의 이시재 정책위원장은 이를 일종의 ‘자살게임’이라 표현한다. 방조제를 막아두면 우리가 그토록 애지중지 하던 갯벌은 다 죽을 것이며 결국 죽은 갯벌을 붙잡고 개발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대통령을 수호천사로 둔 정치인, 김중권 민주당 대표의 말이 제일 솔직하다. ‘새만금사업 중단으로 전북지역 민심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있다. …재개하는 방향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민주당사, 4월 23일) 할 말이 없다. 식량안보니 쌀 자급이니 하는 구호는 행정실무자들이 명분 삼아 하는 얘기에 불과한 것이다.

전문가의 권위 없이 관료와 정치인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으랴. ‘새만금호의 수질문제는…개선이 가능하다는 신념과…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서울대 농대 박승우 교수, 새만금공개토론, 5월 11일)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대책까지 총동원해도 시화호와 유사한 오염을 막기 어렵다는 환경부의 과학적 모델링 결과는 전문가의 군인정신 앞에 설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항상 신념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99년 10월 ‘과학자는 정치, 행정, 언론의 필요에 따라 앵무새처럼 그들의 말을 따라하는 대변자가 아니라’는 신념으로 ‘담수 배출로 인한 인근 생물상의 쇼크는 필연적’이고 ‘방조제 축조가 야기하는 주변환경의 변화는 더욱 심각’하다며 ‘새만금 갯벌의 연안환경에 대한 생태적 중요성’을 강조하던({해양과 문화} 2호, "이곳만은 살리자") 한 전문가는 불과 두 해가 지나기 전에 ‘새만금은…시간이 경과되고 인공적인 기술이 가미되면 기하급수적으로 새로운 갯벌이 증가될 것’이라며 새만금 간척사업의 대변자로 변신한다.(군산대 해양학과 양재삼 교수, 새만금공개토론, 5월 7일)

명분도 경제성도 환경대책도 없는 사업, 우리나라에게 가장 소중한 생태계를 무참히 파괴하고 그곳에 대대로 살아오던 어민들의 삶을 뿌리 채 뽑아내는 사업, 국민의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데도 천문학적인 혈세를 들이는 사업, 결국 몇 년짜리 정권을 위해 후대 수 천년의 미래를 빼앗겠다는 사업이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묻게 되는 일이 오기 전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최선이다.

환경단체가 결정한 새만금 생명의 30적

<관 료>

한갑수(2001년 강행발표 당시 농림부장관)

유종근(전라북도 도지사)

문동신(2001년 강행발표 당시 농업기반공사 사장)

이한동(2001년 강행발표 당시 국무총리)

안병우(2001년 3월까지 국무조정실장)

나승포(2001년 강행발표 당시 국무조정실장)

손정수(2001년 강행발표 당시 농촌진흥청 차장)

허유만(농어촌연구원장)

<정치가>

강현욱(국회의원, 군산)

김중권(2001년 강행발표 당시 민주당 대표)

정세균(국회의원, 무주 진안 장수)

정동영 (국회의원, 전주 덕진)

김원기 (국회의원, 정읍)

김태식 (국회의원, 원주 임실)

이강래 (국회의원, 남원 순창)

이협(국회의원, 익산)

장성원 (국회의원, 김제)

장영달 (국회의원, 전주 완산)

정균환 (국회의원, 고창)

<전문가>

홍욱희(세민환경연구소 소장)

방승우(서울대 농대)

정해진(군산대 해양학과)

박정근(전북대 농업경제학과)

장재춘(연세대 환경공학과)

임재환(충남대 농업경제학과)

양재삼(군산대 해양학과)

윤춘경(건국대 농대)

김선희(국토연구원)

권순국(서울대 농대)

최홍림(서울대 농대)

서형원 환경운동연합 환경조사팀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