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7월 2001-07-01   438

100년 후를 생각하는 사람들

시민단체 · 전문가 · 정부 삼두마차가 이끄는 독일의 환경정책

독일 환경단체는 시민들과 어떻게 호흡하고 있는가? 환경현안과 관련된 정책대안제시뿐 아니라, 끊임없이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독일 환경단체를 직접 방문했다. 편집자 주

‘환경독일’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지금 독일 사회를 관통하는 이슈는 ‘지속가능한 개발’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중심 이슈 또한 ‘지속가능한 개발’(1992년 리우환경회의 합의사항)이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많은 시민단체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이러한 독일시민단체를 방문했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것은 그 단체들의 살림살이였다. 우선, 환경분야의 세 단체를 통해 독일 시민단체의 재정과 회원활동을 들여다보자.

새로운 운동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GERMA WATCH(북반구와 남반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독일감시). 이 단체는 리우회의를 준비하면서 창립되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독일과 유럽연합의 정치 경제분야) 구조를 변화시킨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현재는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는 관세철폐운동, 기후·교통·재정 분야의 대안 연구 등을 하고 있다. 이 단체가 일상적으로 감시하는 대상은 정부와 기업이고, 활동방식은 대화를 통한 로비이다. 회원규모는 500여 명이며 대부분이 전문가와 언론인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전문학술지나 언론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열성 회원의 자발적 활동 돋보여

이 단체의 수입구조를 보면, 회원들의 회비가 약 15%, 재단후원금이 약 10%, 그리고 나머지 75%는 재단이나 연방정부 및 주 정부와의 프로젝트를 통한 지원금이다. 감시대상이 정부와 기업이라면서, 정부 지원을 받는다? 안내자는 당혹스러워하는 우리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계속한다. 그러고도 활동의 독립성이 보장되느냐는 질문에 “당연하지 않냐”는 반응이다. 독일은 NGO활동에 대한 국가 지원이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미 독일 사회 내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 단체가 회원을 적극적으로 늘려나가려는 의지가 있는지 궁금했다. 스테판 로스톡(Stefan Rostock) 씨는 “현재로서는 그럴 계획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들은 소수의 행동하는 지식인들로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는 주창(advocacy)그룹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듯 하다.

이런 소수 회원의 전문가 단체와 달리, 환경단체 BUND(독일연방 환경 및 자연보호협회)는 22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대중적 시민단체이다. 이 단체는 에너지정책, 농업, 교통, 기후, 쓰레기, 국제환경보호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엄청난 회원수에 부러움부터 생겼다. 그 정도 규모라면 회원관련 업무가 상당할 텐데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회원은 회비 납부의 의무가 있다. 성인, 학생, 가족으로 구분되어 각각 1년에 90DM(독일마르크), 30DM, 120DM를 내고 계간 소식지를 받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회비는 다달이 걷는 것이 일반적인데, 연회비를 고수하는 이유가 있을까? “독일인은 성격상 정기적인 월별 지출에 더 큰 부담을 느낀다. 한번 내고 잊을 만하다가 다시 1년 만에 내도록 하는 연회비 제도가 더 낫다”고 담당자는 말한다. 회비 역시 회원들의 생활 습관과 특성에 어울리게 관리해야 한다는 기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후원회원이고 일부 회원만이 자원활동이나 지역모임에서의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열성 참여회원은 대략 전체 회원의 5%로 보고 있다고 한다. 지역모임은 전적으로 자원활동가만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은근히 자랑한다. 우리 일행의 안내자 역시 자원활동가였다.

이 단체는 정책대안 제시를 주로 하면서도 한편으론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25세 미만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BUND JUGENT는 얼마 전 ‘자연에 대한 일기장 쓰기’라는 캠페인을 벌여 100개 학교참여라는 목표의 두 배나 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 유전자 조작 반대운동의 하나로 유전자조작제품 안 사기 캠페인을 펼쳐 대상이 된 과자를 가게에서 사라지게 만들기도 했다.

더 나아가 시민참여형 운동으로 생태운동, 생협운동을 모색하고 있지만 지금으로선 직접 조직 운영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대신 교육과 홍보에 힘쓰고 있다. 다양한 홍보물 중 돋보이는 2개의 작품이 있었다. BUND-우표 스티커와 밀봉카드. BUND의 주장이 담긴 조그만 우표가 붙은 우편물이 온 세상으로 날아갈 상상을 하니, 괜히 흥분이 된다. 밀봉카드는 굳게 봉해진 2장의 봉투이다. 하나에는 ‘Do what?’ 다른 하나에는 ‘Don’t what?’이라고만 씌어있을 뿐 어떠한 설명도 없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열어보았더니 갖가지 실천 방법이 한 장의 엽서에 구체적이면서 상세하게 게다가 재미있게 담겨져 있다.

BUND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재정이다. 원칙적으로 외부 지원은 받지 않으며, 회원의 회비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미 제도화되어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데 굳이 정부지원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BUND의 자원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 정부의 환경정책은 BUND가 추구하는 이념과는 다르다. 사안에 따라서 협조는 하지만, 함께 일하지는 않는다. 정부의 환경정책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대안을 주장하려면 독립성이 중요하다. 재정도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마땅하다.”

‘100년 후’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이번에는 ‘시민참여의 미래’라는 거창한 이름의 위원회를 방문했다. 이 단체는 놀랍게도 독일 연방의회에 속해 있다. 시민사회의 사회 정치적 역할을 재규정하고 그에 맞는 사회 문화적 인프라와 제도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리 치밀하게 준비하고 계획대로 운영하는 독일답게, 사회의 중장기적 의제를 국가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연방의회 산하에 ‘ENQUETE KOMMISSION(독일연방의회 조사연구위원회)’을 두었다. 현재는 에너지·민주화·유전공학·세계화와 국제경제·시민참여의 5가지 미래의제에 대한 각각의 위원회가 있다. 각 위원회는 연방의원, 정당 추천 전문가와 NGO활동가로 구성되며 의결권은 없고 자문만 가능하다.

‘시민참여의 미래’가 위원회로 선정된 직접적 계기는 녹색당-사민당 연정 직후 개혁적이었던 이중국적 허용정책이 시민들의 반발로 좌절된 충격 때문이었다. 국가-정당-시민사회로 굳어진 역할을 넘나드는 역동적인 열린 시스템으로의 전환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한 위원은 “궁극적으로 유럽식 사민주의가 전통적으로 취해온 ‘상설적 국가기구화를 통한 해결’도 아니고 ‘시장주의적 자유방임’도 아닌, 역동적인 시민참여로 유지되는 혼합 프로젝트의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주도로 시민참여가 활성화되면, 결론적으로 국가권력에 종속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리의 우려에 대해 이 위원회를 국가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간접지원(정책과 행정, 세금 등)을 통해 활성화하는 것이며 그 지원은 두 축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첫째는 시민사회와 시민단체에 대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법적 지원과 교육 기회 제공. 둘째는 사회 정치적인 인프라 구축이다.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보다는 현행 국가제도를 보완하는 흐름이 현실일 듯싶다.

‘시민참여의 미래’ 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시민참여가 얼마나 활성화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또한 일부의 우려처럼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비용 절감을 위해 시민사회로 떠넘긴다는 의혹도 있다. 하지만 ‘10년 혹은 100년 후 당신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국가적 의제를 놓고 미래를 발전적으로 이끌어갈 동력으로 시민사회를 지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지 않은가.

최현주 참여연대 시민사업국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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