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1002

1등 콤플렉스가 경실련사태 불렀다

유종성 전 경실련 사무총장인터뷰

지난 1월 대필사건으로 불거진 경실련사태. 그 중심에 있던 유종성 사무총장은 지난 7월 30일 기자회견을 갖고 사임했다. 경실련 창립멤버이며, 지난 97년 김현철 비디오테이프 사건 이후 유재현 총장의 잔여임기를 채우기 위해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지난 2년 3개월간 경실련을 ‘모범적 시민단체’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또, 경실련 내부갈등을 해소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으나 그 부분은 전혀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고 자조섞인 투로 말했다. <편집자 주>

시민운동 10년의 역사를 가진 경실련이 얼마전까지 겪은 일을 보면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경실련이 이런 문제점들을 갖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입니까?

“제가 경실련 사무총장으로 선출되던 때는 김현철 비디오테이프사건이 터져 경실련 스스로 쌓아올렸던 공신력이라든지 도덕성에 큰 상처를 받고, 재정적으로도 3억 정도의 부채를 갖고 있었습니다. 또 조직 내부에 여러 갈등이 상당히 있었고, 제 능력으로는…참,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러나 저로서는…최선을 다했고, 지금까지도 어떻게 하면 경실련을 모범적인 시민단체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습니다. 이 얘기는 달리 말하면 과거 경실련은 모범적 시민단체가 되기보다 영향력있는 시민단체가 되는데 더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동안 경실련운동은 다수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있는 시민운동이기보다 소수 엘리트들이 중심이 되어 정책대안을 내는, 전문가와 상근운동가 중심의 운동을 펼쳐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저희가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이나 금융실명제관련 집회를 500명 모여 하나, 30명 모여 하나, 기자회견 하나 언론에 나오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고, 실제 언론에 의해 우리의 영향력이 행사되기 때문에 30명 혹은 500명 모여 집회할 필요가 없다, 그런 생각을 가졌어요. 그러다 보니까 점점 더 전문가에 의한 정책생산과 언론홍보에 의존하게 되고, 일반회원들은 별로 필요가 없는 구도가 돼버렸죠. 그런 의식 속에서 문제점들이 누적됐고, 그것이 대필사건이라는 우연한 기회에 의해 폭발했다고 볼 수 있겠죠.”

취임후, 기존 경실련운동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새롭게 운동하려 했다면 그 구체적 내용은 뭡니까?

“테이프사건 이후 경실련 내부에서 모아졌던 논의들이 있었어요. 하나는 내부 의사소통과 의사결정구조를 민주화하자, 재정구조를 보다 더 투명하고 건전하게 하자, 일반시민 회원의 참여를 보다 활성화해야 한다. 그외에는 방만한 사업구조를 구조조정한다. … 지난 2년 3개월간 부분적으로 성과도 있었지만 다 만족스럽게는 못했다고 생각해요. 우선 저 자신 능력의 한계가 컸고, 여러 가지 상황들이 쉽지 않고, 그랬습니다.”

재임기간 중에 이룬 경실련운동의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본격화시키지는 못했지만 시민참여 부분은 준비단계까지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임 전까지 만들려고 했던 사회개혁단이 그것인데요. 풀뿌리시민조직에 입각한 시민운동을 하자, 그런 취지의 운동이죠. 또 재정규모의 투명화 건전화는 이전 총장때보다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96년 한해에만 2억 1,400만 원의 적자가 났어요. 또, 96년도 전체수입 중 회비비율이 7∼8%였어요. 그 당시는 기업이나 개인 후원금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취임한 후에는 개인이나 기업에게 연간 1,000만 원 한도액을 정해 받는다는 원칙을 정해 지켰고, 회비비중을 24%로 끌어올렸어요. 재정을 100% 투명하게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내부 민주적 의사소통은 과거보다 많이 진전됐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경실련내 특별기구 사단법인체들의 운영을 거의 자율에 맡겼어요. 또 경실련을 대표해서 사무총장에게 부여되는 역할 예컨대 언론 인터뷰 등에도 요청오는 것의 1/3 정도, 1/5 수준밖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다 전문가에게 맡겼어요. 다만 경실련 내부갈등을 해소하고 좋은 관계를 도모하는데 있어서는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그 부분은 전혀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말씀에 따르면, 경실련 개혁을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셨는데 전문가그룹이나 상근진이 유 총장의 퇴진을 요구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는 세력관계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2년 전 제가 사무총장될 때 저를 반대했던 분들이 이번에도 그랬거든요. 그 분들이 2년 전에 세우려했던 분을 다시…, 이런 내부 구도가 있었던 것을 솔직히 말할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1등 콤플렉스가 많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경실련보다 참여연대의 ‘이름이 앞에 나오는 것’을, 많은 경실련 사람들로 하여금 견딜 수 없게 만든 거죠. 그런데 그 점이 사무총장의 지도력이 없다, 무능하다, 말하자면 리더십 부재, 약하다 이런 걸로 표현됐던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경실련이 영향력 있는 1등을 하는 것보다 얼마나 모범적 단체로 스스로를 형성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편법을 써서 1등 하면 뭐합니까? … 이런 상황이 축적되니까 초기 공로가 컸던 분들이 경실련을 이런 상태로 놔둬서는 안 되겠다, 자신들이 직접 경실련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봐요. 잘 못하는 것 같으니까. 그런 것도 부분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경실련 내부의 긴장관계는 어디서부터 파생됐다고 보십니까?

“경실련 내부의 조직적 긴장은 주로 전문가집단과 상근운동가집단 사이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떤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정책위원회와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한 상근활동가간의 갈등. 그 점에 있어 초대 사무총장 시절부터 생겼던 문제는 너무 경실련이 사무총장 중심으로 운영된다, 사무총장이 경실련 전체를 대표한다에서도 비롯됐고, 또 여기에 극단적으로는 ‘지적소유권’ 논리까지 나왔어요. 금융실명제나 재벌개혁 등 경실련의 정책대안을 프로파간다하는 것은, 그 정책대안을 연구하고 생산한 해당 전문가여야지 사무총장이나 상근자들이 대외적으로 발언하고 언론에 나와 토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거였죠. 그 점이 오래전부터 갈등요인으로 있었던 거예요. 또 한편으로는 재정이 지나치게 사무총장 중심으로 운영되니까 파워도 다 사무총장이 지게 된다, 뭐 이런 문제죠. 또 하나는 경실련 출신들의 정치적 진출과 관련된 겁니다. 서경석 초대 사무총장을 비롯한 일부 상근자들 중에서 정치참여하거나 경실련 출신 전문가들이 김영삼정부나 김대중정부에 입각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데서 오는 약간의 상호불신, 경실련운동의 성과를 정치적인 걸로 활용하려 한다고, 그런 문제가 생겼던 것같아요.”

서로간의 불신이나 오해를 불식시킬 만한 조직 내적 논의구조는 없었나요?

“있었죠. 다만 상임집행위원회에서 결정해도 결정된 사안을 인정하지 않는, 심지어 자신들이 참여해 만장일치로 합의한 걸 다음날 부정해버리는 문제가 생긴 거예요. 그분들의 마음엔 상집의 결정보다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는 내적 확신이 있었던 거죠. 그러나 저는 그분들이 진정으로 경실련을 사랑한다면, 오히려 조금 모자란 듯해도 결정된 전체 의사에 따라야 경실련이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체 상집이 모여 결정하고 논의한 것을 몇몇 분들이 부정해버리고 지장을 주면 그 조직은 더이상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지요. 만일 앞으로도 공동대표나 상집위원장 혹은 국실장들이 공적 논의구조를 통해 결정한 것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경실련을 계속 해나갈 것인가, 저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봐요. 자신의 소신과 주장도 중요하지만 전체 의사가 어떻게 결집되는가 그런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경실련은 정부의 비민주성을 비판하고 감시하면서 자체 운영을 민주적으로 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스스로 부정한다면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해요.”

그동안 여러 차례 사퇴를 종용받았는데도 사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연초에 우연한 대필사건으로 시작된 문제가 점차 에스컬레이터되면서 저에 대한 안티세력과 혼재되어 진행됐기 때문에 양상이 좀 복잡하죠. 그러나 아무튼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괴로워서 몇차례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일부의 물리적인, 밖에서 언론플레이하는 그런 사람들의 압력에 의해 사무총장직을 물러난다면 다음에 누가 사무총장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랬구요. 이번에는 어찌됐든 대외적으로는 제가 모든 책임자로 비치게 되고 인식되는데, 그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현실적으로 수습불능인데, 일단 제가 사퇴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표님들이나 상집위원장님에게 양해를 구했어요. 끝끝내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다수의 분들이 동의해줘서 그만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대표나 상집위원들은 제가 경실련을 개혁하려고 했던 방향을 계속 밀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사무총장직을 사퇴하셨습니다. 앞으로 경실련 운동이 어떻게 갈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향후 경실련운동에 대한 기대나 바람을 말씀해 주십시오.

“경실련이 내부적인 의견갈등이 극으로 치달아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게 됐지만, 앞으로는 경실련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다시 시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신뢰받는 시민단체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사실 오늘의 경실련 문제는 여러 시민단체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경실련사태에 견주어볼 때, 시민단체 차세대 리더십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인터뷰에 응한 것도 경실련말고 다른 단체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 우리의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고 싶어 그런 겁니다. 그리고 지금 경실련 개혁특위에서 개혁방향을 정하고 있는데, 이를 경실련 내부논의로만 국한하지 말고 다른 단체 내외의 의견을 구한다거나 자문을 구했으면 합니다. 열린 자세로 말이죠. 시민운동가의 차세대 리더십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 미국의 랄프네이더는 수십년간 소비자운동의 지도자로 살아나가잖아요. 저는 시민운동의 리더십은 기대하는 만큼 서로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러면 조금 하다 정치로 나가든지 그러겠죠. 2년 전에 내부역학관계상 저에 대해 너무 어리다는 등의 반대 내지는 불안하게 생각하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제가 사무총장이 된 것은 경실련으로서는 세대교체를 한 셈인데요. 문제는 사무국의 세대교체는 이뤄졌는데, 전문가집단 회원지도력에 있어서는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음으로해서 그런 면에서의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경실련의 초창기 주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후배들을 좀 못미더워한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후배들이 하는 것을 직접 지켜보는 자세 그런 것도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문가와 상근자간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상호존중과 협력이죠. 그게 안 되면 단체에 힘이 축적될 수 없어요. 그리고 전문가나 상근자간의 관계가 내부 권력을 배분하는 차원으로 가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나 상근자는 자신들의 능력과 활동을 가지고 보다 많은 회원들이 더 참여할 수 있도록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근자와 전문가가 시민단체에서 생긴 힘이나 명분을 누가 더 차지하느냐로 관계를 맺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실 경실련과 참여연대는 여러 부분에서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합형 시민운동단체부터 성장해온 배경 등. 그런 측면에서 참여연대에 충고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시민운동은 따로 전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실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모든 단체가 시민있는 시민단체가 돼야 하느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문성 없이 하는 그런 운동도 있는 거죠. 그리고 저는 경실련사태에서 어떤 해답이 주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관성적 문제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참여연대는 여러 점에서 경실련과 유사한 방식으로 커왔다고 생각되지만, 참여연대는 경실련이 빠졌던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참여연대가 앞으로도 계속 모범적인 시민단체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경실련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복귀할 생각은 있으십니까?

“상근으로 다시 복귀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한 사람의 회원으로서, 볼룬티어로서 봉사할 수 있어야죠.”

앞으로의 계획은?

“쉴 기회가 생겼으니까 박사학위는 모르겠지만 공부를 할 생각입니다. 현재는 런던대학 NGO학과에 입학하거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부나 NGO경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공정책 혹은 공공행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거든요. 1년짜리 석사과정인데, 둘중 하나를 선택하든지 둘다 하든지 해야죠.”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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