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1월 1999-11-01   589

11월 경제위기설 진단 응급처방만으론 경제위기 졸업못해

이미 98년부터 심심찮게 거론되던 대우그룹의 재정상태가 99년 들어 점차 악화되면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우리경제에 또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금년 들어 대우에 대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전문가집단에서 심도깊게 다루어지기 이전에 이미 대우그룹은 98년 생존을 위한 자금마련을 위해 채권과 CP발행에 전념했으며 우리나라의 금융기관, 특히 투신사들은 높아지는 신용위험을 인지하면서도 각종 펀드출현에 따라 고수익에 대한 환상과 대마불사의 교훈을 토대로 대우채권 보유비중을 늘려나갔다.

한편 대우가 저금리로 기업환경이 호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금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불행히도 금융권 보유의 대우채권관련 위험증가에 대한 신속한 사전정책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대우사태는 대우채권의 최대 보유자인 투신사의 막대한 손실을 통해 현재의 투신사태로 확산되면서 대우에 대한 근본처방이 제시되기도 전에 금융권의 불안심리차단이라는 급박한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즉, 7월의 대우사태 이후 기업부실이 직접적으로 은행권에 타격을 주는 과거의 위기전개과정과는 달리 직접금융시장의 충격을 통해 다시 은행권의 건전성이 위협받는 전례없는 금융충격의 전달과정이 빠르게 현실화되었다.

사실 11월 경제위기설의 요체는 투신사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이 투들의 환매요구를 늦추기 위한 감독당국의 환매조건제시에 따라 대부분 대체투자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11월 11일의 환매에 들어감으로써 투신사들의 유동성 위기(Liquidity Crisis)와 투신사들의 채권투매에 따른 금리급등, 그리고 전반적인 금융권의 패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기초하고 있다. 만약 환매사태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투신사들은 자체보유 자산매각으로는 환매요구에 응할 수 없게 되며 정크본드만을 보유하게되어 생존불가능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그동안 거론되었던 금융위기의 가능성은 대우그룹 유가증권의 가격폭락에 따른 자금회수가 투신사의 유동성 위기를 통해 금융권 전반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유동성 위기의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한은의 통안채 매입이나 20조에 달하는 채권안정기금의 조성 등으로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구비되었으며 최근 채권안정기금의 적극적 매입으로 금리도 안정세를 보여 일견 시장안정대책이 효과를 보이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금리안정만 지속될 수 있다면 환매요구도 진정이 되고 투신사의 문제도 근본적인 처방 없이 정상화될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해볼 수 있겠다. 그러나 정부의 거듭된 안정책은 아직도 시장불안심리의 근본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시장참여자들을 위험한 착각으로 내몰고 있다.

채권안정기금이 이미 시장기능을 상실한 채권시장의 수급불균형을 단기적으로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이러한 조치와 병행하여 대우 투신관련 근본처방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세계적으로 저금리기조가 끝나가는 가운데 채권매입에 따른 투자손실에 대한 부담은 결국 고스란히 은행권의 손실과 공적자금 부담의 증가로 귀착되게 된다. 준 공적자금지원의 성격인 채권안정기금이 시장불안심리의 일시적 안정에는 도움이 될 것이나 환매속도를 늦추는 것 외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11월 경제위기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대우실사의 결과 손실부담규모가 예상보다 크게 나타날 경우 언제든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시가평가의 전면실시가 어려운 이상 일괄처리방식으로 투자손실분담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러한 처리는 공적자금의 지원가능성을 내포하므로 은행부문에서 처리되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11월 경제위기의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국민의 세금부담을 줄이는 대우 투신에 대한 처리방향은

첫째, 대우처리에 관한 책임있는 전담기구설치를 통해 워크아웃이 자산매각 청산절차를 최대한 앞당기고 지연에 따르는 경제적 비용(Cost of Delay)을 줄이는 것이다. 국유화를 통한 자산매각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둘째, 대우관련 유가증권가격의 하락은 국유화와 같은 공표효과를 통해 저지시킬 수 있으며 그만큼 국민들의 세금부담은 줄어들게 된다. 투신사의 불량자산은 은행신탁으로 이관하는 즉시 예보나 성업공사채권으로 교환해주며 이를 담보로 증권발행을 통해 투입된 자금회수가 가능하다. 또한 추후 대우관련사의 매각이나 정상화를 통해 부실처리과정에서 이루어졌던 공적자금투입은 상당부분 회수가 가능하다.

셋째, 투자자의 손실은 환매계획에 준하여 실현시키며 주주나 증권사들의 분담도 적정수준에서 처리 가능하다. 결국 현재 예상되는 위기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해결주체의 선정과 법적 근거가 구비되어 공적자금의 투입이 정당화될 수 있는 여건 하에서 합당한 손실분담원칙에 따른 신속한 처리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현실적으로 현재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대안에서는 손실분담의 원칙이 적용되기 어려운 점이나 투신권 부실에 대한 공적자금지원의 법적 토대가 미비한 점이 투신권 부실에 대한 신속한 처방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더 나아가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황의 악화를 방지하는 통상적 차원을 넘어서 시장규율을 확립하고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측면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97년 한국경제가 파산한 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받게 됐을 때

한국을 방문했던 미셀 캉드쉬 IMF 총재

한편 투신권의 문제로 비화된 11월 경제위기의 문제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금융권의 건전성이 엄청난 워크아웃부담으로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금융권의 위축은 결국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될 소지가 있다. 이미 회복의 계기가 마련된 상황에서 안정화를 위한 정책처방은 점차 취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으며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이러한 양상은 더욱 빠르게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즉, 구조조정지연의 결과는 단기적으로 보다 빠른 지표상의 회복을 가져다주지만 2000년 이후 상당한 부작용과 더불어 적절한 대응책의 구사마저 어려운 경제환경을 초래하기 쉽다.

구체적으로 2000년에 예상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그동안 벌여온 구조조정이 결실을 채 맺지 못한 채 거시여건의 악화로 경제에 엄청난 부담으로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 비해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단이 고갈된다는 점이다. 위기이후 소위 인플레정책으로 불리는 일련의 팽창정책이 일방적으로 구사되면서 우리경제가 빠른 회복을 보였고 앞으로도 이러한 회복세가 얼마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나 구조조정을 통한 기초여건의 향상이나 경제체질상의 효율성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조만간 인플레압력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또한 위기 직후 고금리체제에서 허물어져 가는 실물기반의 와해를 저지하기 위해 취해졌던 저금리정책은 구조조정을 위한 기초여건의 확보라는 당초의 목적에서 벗어나 재벌들의 제2금융권지배강화와 직접 금융시장의 주도라는 예상된 부작용만을 키워왔으며 이러한 결과는 결국 99년의 수익성개선과는 달리 경쟁력약화와 더욱 강력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라는 부담으로 남기 쉽다.

이제 우리경제는 위기 이후 가장 중요한 기로에 봉착해 있다. 단순히 11월에 예상되는 위기의 가능성을 회피하는 차원에서 단기적 대응에 급급한다면 우리는 보다 심각한 상황에 봉착할 수 있는 반면 현재의 회복세에 만족하는 대신 경쟁력향상을 위한 뼈아픈 고통을 감내해 낸다면 우리의 미래는 분명 단기적 호전을 뛰어넘는 것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우리가 그동안 벌여온 구조조정노력이 결실을 맺고 안정기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하려면 우리 스스로 의식구조를 바꿔나가면서 보다 투명한 경영환경을 일구어내야 한다.

지금까지의 폐쇄적인 결정과정이나 경영환경을 동양적인 미덕으로 보호하기에 앞서 경제정의원칙의 구현 차원에서 과연 어떠한 성과가 이루어졌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이다. 결론적으로 11월 경제위기설의 진상은 우리경제가 부실부분에 대한 근본적인 처리 없이 진정한 위기극복이 불가능하다는 점, 부실규모가 커서 공적자금의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정부개입의 법적 근거와 시장규율의 확립이라는 개입의 목적은 시장참여자 모두에게 반드시 강조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정부개입의 결과 대마불사라는 불변의 진리가 타파되었다는 확신이 들 때 우리는 그나마 위기의 값비싼 교훈을 받아들이게 되며 이를 토대로 21세기 한국경제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금융팀장 선임연구위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