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2월 2012-12-12   1277

[경제] 경제관료들을 어찌할 것인가

경제관료들을 어찌할 것인가

론스타와 경제민주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벌써 6년도 더 된 얘기다. 2006년 7월 4일, MBC 피디수첩은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한미 FTA>편을 방영했다. 당시 이 프로그램의 기획에 깊숙이 관여했던 나는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투자자-국가 제소(ISD)라는 제도 자체가 매우 생소했을 때, 피디는 나에게 당시의 논란거리였던 론스타 사건에도 ISD가 적용될 수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물론 가능하다, 한국 정부가 패소할 것”이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이 부분만 방영됐다ㅠㅠ). 하지만 이 둘을 연결해서 주 테마로 삼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가히 피디수첩다운 선정성(?)이었고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정부는 악의적 왜곡이라며 연이어 피디수첩을 비난했고 피디수첩은 7월 18일 <한미 FTA의 진실과 거짓>을 대답으로 내놓았다. 화면에 뜬 정부 자료에 또 하나의 큰 쟁점이었던 “4대 선결 요건”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보였고, 결국 대통령은 “4대 선결 요건”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론스타는 ISD를 제기했다

이 프로그램은 오랜 세월을 지나 또 한 번 사실의 힘을 입증했다. 물론 론스타는 6년 5개월이나 지나서 발효된 한미 FTA를 이용할 수 없었고 2006년에 개정된 한-벨기에 투자협정에 기댔다. 하지만 당시 피디수첩이 밝힌대로 론스타가 한미 FTA 체결을 위해 적극적인 로비를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한미 FTA는 정부가 판결에 불복하여 벌금을 내지 않는 경우 즉각 한국 상품에 그 금액만큼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수단도 갖추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수조 원이 걸린 중재가 시작됐고 한국 정부의 정책은 세 명의 법률가의 단심 결정에 운명을 맡기게 되었다. 
  중재가 본격적으로 진행돼야 주요 논점이 일부 드러나겠지만(불행히도 ISD는 비밀주의로 유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론스타에게 빨리 외환은행을 넘기기 위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예컨대 한국에서 은행을 인수하려면 산업자본이어서는 안된다)를 제대로 하지 않은 당시 금융당국(주로 당시 재정경제부)의 실수 또는 고의가 우리에게 유리한 논거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똑같은 관료들이 외자유치를 위해 약속했던 온갖 감언이설은 온통 론스타에게 유리한 논거로 제시될 것이다. 선례에 비춰볼 때 이 사건 역시 ‘최소기준대우’, 즉 국제관습법에 비추어 정부의 정책이 온당한 것이었는가의 위반 여부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그동안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에 걸쳐 오고 간 논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한국에서 ISD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한국 정부가 국제 기준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 론스타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던 강변, 자신의 실수 또는 고의를 감추기 위해 론스타가 금융자본이라는 정반대 사실을 늑장 발표한 일, ISD를 둘러싼 그 수많은 논박 등등…….
  이미 유통법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야당 쪽에서 발표한 굵직한 복지정책들도 앞으로 투자자국가제소권의 망령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건강보험 보장성을 90%로 강화하는 정책이 AIA의 보험상품을 해약시켜 미국 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면 그 역시 투자자국가제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때마다 과거에 책임이 있는 관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이미 숨을 거두기 시작한 미국식 제도를 아직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굳게 믿고 있는 관료들, 단기 성과를 위해 불법이나 편법을 무릅쓰는 만용이 넘쳐나는 관료들, 재벌과 조중동, 나아가서 검찰과 동맹을 이루고 있는 관료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참여정부 때처럼 오히려 이들에게 포획되지는 않을까? 정권교체를 넘어 시대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비책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재벌-경제관료-박근혜 지배동맹은 본격적 움직임을 시작했다

통상정책만이 아니다. 박근혜 후보마저도 숟가락을 얹은 경제민주화의 거센 바람 앞에 숨죽이고 있던 관료들이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박근혜 후보가 순환출자제도 금지나 기업집단법 등 자신의 선본에서 거론하던 정책들을 철회하고 경제위기론과 재벌의 투자라는,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 싶은 ‘각설이 타령’을 하자마자 일어난 일들이다.
  11월 22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제시되고 있는 소유구조 개선 방안들은 일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며 순환출자해소, (금융)계열분리명령제, 지주회사 규제 강화, 출자총액제한제 등을 모두 반대했다. 26일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한국경제가 저성장에 접어들었는데 “경제민주화라는 마이너한 문제에 신경쓰고 있다”며 위기론과 경제민주화론을 대립시켰다. 권혁세 금융감독위원장은 조금 더 노골적으로 대기업의 투자나 성장동력을 훼손해선 안된다며 박 후보의 주장을 반복했다. 
  가히 재벌-경제관료-박근혜 후보의 지배동맹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불 보듯 뻔하게 조중동은 앞으로 대선의 쟁점을 이쪽으로 몰고 갈 것이다. 과연 문재인 후보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총선 때처럼 우물쭈물 비껴가려 할 것인가, 아니면 정면으로 맞설 것인가?


시대 교체가 시대정신이다

문 후보의 말대로 이제 시대 교체를 할 때가 되었다. 수출과 낙수효과의 시대는 지났고 내수와 차오름효과bottom-up effect가 우리 경제를 살리는 시대가 되었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강화되고 서민들의 소득이 늘어야 하며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오르고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가 들불처럼 타올라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처가 경제민주화이며 그 보완이 보편적 복지다. 새 시대의 이러한 정책 기조를 포기한다면 참여정부의 과오는 되풀이될 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대선 전장의 마지막 승부처이다. 투기에서 복지로 변화한 국민 정서를 믿고 지배동맹에 맞서야 한다. 구시대의 지배동맹 대 새 시대의 시민동맹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야말로, 안 후보의 사퇴에 보답하여 진정으로 정치개혁을 실현하는 길일 것이다.

정태인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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