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6월 2013-06-04   977

[경제] 경제민주화를 다시 생각한다

경제민주화를 다시 생각한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참여사회 2013년 6월호 (통권 199호)

5월 20일,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 <민주당, 경제민주화 더 잘 할 수 없는가?>에서 나온 청년 편의점주 오명석 씨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1979년생, 그러니까 이제 만 서른네 살이다. 그의 아버지는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알바를 전전하던 오 씨는 아버지의 은퇴 자금으로 편의점을 냈다. 대기업들은 아버지를 해고하면서 던져준 퇴직금마저 아까워 본인 또는 그의 자식을 통해 회수하려 했던 것일까? 아들은 5년 계약으로 편의점을 시작해서 처음 2년은 그런대로 장사를 했지만 본사가 바로 옆자리에 또 다른 편의점을 내는 바람에 4년째 되는 해 폐점을 신청했다. 그는 위약금 2,500만 원에 철거비 300만 원까지 낸 후에야 장사를 접을 수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자살하고 말았다. 

 

 

편의점 프랜차이징, 약자에겐 불공정을 넘어 사기다

 

편의점은 경영학에서 말하는 프랜차이징에 속한다. 보통 가맹본부(프랜차이저)는 기본 시스템(재고 관리, 창고, 회계 정보, 포스 시스템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랜드를 제공하고 가맹점주(프랜차이지)는 점포에 대한 투자와 자신의 노동으로 매출을 올린다. 

경제학을 공부하지만 기업 이론에 대해서는 내가 거의 문외한에 가깝기 때문일까? 현재의 기업 이론으로 한국의 프랜차이징 실태를 설명하기는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최신 기업이론은 대리인(편의점주)의 투자와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편의점 주인이 현재 수익 비율(예컨대 어떤 증언에 따르면 수익의 65%)에 따라 얻는 이익이 100만 원이라면 이보다 더 많이 투자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24시간 영업을 해야 하는 처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여지도 없어 보인다. 

현재의 계약대로라면 프랜차이징이라기 보다 노예라고 보는 게 낫다. 가맹본부는 오로지 점포를 내는 데 필요한 비용을 뽑아내고 사업 실패의 부담을 떠넘기기 위해 가맹점 모집을 했을 뿐이다. 편의점주들의 투자는 잠긴 비용이 되어 노예로 묶여 있게 만든다. 이런 계약은 약자가 일방적으로 발목이 잡힌 경우이므로 불공정을 넘어서 계약 자체가 사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곧 사회경제적 효율화

 

이런 사례는 지난 대선 때 국민적 합의가 된 ‘경제민주화’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가장 추상적으로 말한다면 경제민주주의의 궁극적 목표는,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이해 당사자가 1인 1표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주식회사에서는 1주 1표가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이고, 한국의 재벌은 순환출자를 통해 1주 50표 정도를 행사한다. 사실상 재벌 일가가 기업집단 전체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지난 재벌 논쟁을 투박하게 재정리한다면 김상조 교수 그룹은 1주 50표를 1주 1표로 만들자는 것이다(김기원 교수의 “개혁과제”). 한편 장하준 교수 등은 이런 관점을 신자유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면서 1주 50표를 그대로 두거나 황금주 등으로 더 강화해 주고 대신 세금을 거둬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 경제민주화라고 주장했다. 

어느 쪽도 진정한 경제민주화와는 거리가 있고, 또 위의 청년 편의점주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만일 편의점주들이 스스로 기본 시스템 투자를 할 수 있다면, 또는 기존 시스템을 사들일 수 있다면 스스로 협동조합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협동조합은 1인 1표로 의사를 결정한다. 현재의 가맹본부인 대기업이 사라지면 이 새로운 협동조합 네트워크는 더 효율적일 것이다. 각 편의점에 필요한 투자가 이뤄지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집단은 재벌 체제가 1인 1표로 훌륭하게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민주주의는 나라 전체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정태인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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