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9월 2013-09-06   975

[경제] 구체제의 망령

구체제의 망령

 

 

전 세계적 기후온난화로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장맛비라기보다 스콜이라 불러 마땅한 국지성 호우로 여름을 보냈으며 사과 과수원의 북방한계선이 어느덧 강원도까지 치올라 왔다니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얘기다. 하지만 어느 덧 8월 하순, 새벽에는 제법 서늘한 바람이 한 줄기 스쳐가기도 한다.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취임한지도 6개월이 다 되어 간다. 아무리 간접화법을 구사한다 하더라도 드러날 것은 결국 드러나는 법인가,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기조 역시 뚜렷해졌다.     

 

박근혜 정부 6개월, 경제정책 기조는 ‘줄푸세’

나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박대통령은 전임 토건 대통령과 다르리라, 기대했다. 독재자의 딸답게 재벌을 휘어잡을 수 있지 않을까, 선거를 승리로 이끈 필승의 구호,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어느 정도는 실천하지 않을까. 그래야 끝까지 부여잡고 싶은 이미지 “신뢰의 정치인”이 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노인연금의 축소나 ‘4대 중증 질환’의 비급여 제외에서 보듯이 맞춤형 복지는 날이 갈수록 빈약해지고 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금융지주회사법·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 정도로 경제민주화가 진전됐다고 평가할 이는 없을 것이다. 

 

 매달 <참여사회>에서 점검했듯이 굵직굵직한 정책은 모두 “줄푸세(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는 뜻으로 2007년 17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내세운 공약)”를 가리키고 있다. 세계경제의 장기침체와 시장만능론의 파산에도 불구하고 “수출과 낙수효과”라는 구체제의 주문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 기조에서 경제성장률을 높이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앞으로 재앙이 될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어느 통계나 마찬가지지만 가장 최근에 발표된 표를 들여다보면서 점검해 보자. 

 

(표)

주: 1) 통관기준,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 [  ]내는 7월중   

자료: 통계청「산업활동 동향」, 관세청, 한국은행

출처 : 한은, 최근의 국내외 경제동향, 2013.8.8

 

 보다시피, 2011년까지 두 자릿수로 늘어나서 한국경제를 지탱해주던 수출 증가율은 0을 중심으로 오르락내리락이며 전년 대비 설비투자 증가율은 두 자릿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수출 증가율에 정확히 비례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대기업의 투자가 살길이라며 그들의 소원을 들어 주는 데 급급했다. 지난달에 소개한 각종 규제완화, 특히 수도권 규제완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재벌들이 오랜 숙원이던 수도권의 땅을 사들인다고 해서 당장 설비투자가 늘어날 리는 만무하다. 

 

 정부가 희망을 걸고 있는 건, 그래도 플러스를 보이고 있는 건설투자분야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동산 붐은, 빈사 상태인 대형 건설사를 살리는 일인 동시에 가계부채의 폭발을 막고, 또한 경제성장률도 올리는 묘수로 보일 것이다. 하여 국토부장관은 주택공급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전월세 폭등이 일어나자 금융위원회는 전월세 대출을 늘리겠다고 나섰다.  

 

기후변화 보다 더 무서운 재앙, 민영화

 

또 하나 확실히 나타난 기조는 민영화이다.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재정 부족 사태에서 비롯되었다. 정부는 하반기와 내년에 3-4% 성장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거의 100%,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장 손쉬운 해결책인 부자 감세를 되돌리는 일은, 예의 투자 때문에 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민영화다. 의료민영화와 수서발 KTX 노선 민영화로 출발한 이 흐름을 방관한다면, 곧 인천공항과 가스공사도 덮칠 것이다. 즉 정부는 국민 모두가 공유해야 할 자연과 공공재를 팔아서 재정을 확충하고 성장률을 끌어올리려 하는 것이다. 더구나 한미 FTA가 발효되어 있으므로 이렇게 파괴된 공공성은 다시 복원되기도 어렵다. 기후가 아열대로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꺼져가는 구체제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이 시도를 막지 못하면, 우리가 4년 뒤 정신을 차린다 해도 너무나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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