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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11월 - 김동규 회원

참여연대365
작성자
활기차 차장
작성일
2013-11-04 17:11
조회
2988

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 -노동자 마을 카페 봄봄에서 

김동규 회원

 

글 호모아줌마데스 / 사진 Nina Ahn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

 

“카메라 보지 마시구요. 손은 좀 더 자연스럽게, 자 이제 크게 한번 웃어주세요.”

온갖 주문이 쏟아지자 그의 몸이 점점 더 경직된다.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목까지 빨갛다. 인터뷰할 때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던 그도 카메라 앞에 서자 손과 발을 어쩔 줄 몰라 당황한 기색이다. 

“너무 크게 웃으면 사진이 예쁘게 안 나오던데요.”

연신 터지는 플래시에, 옆에서 웃고 박수치며 구경하는 사람들의 성화에 정신이 나간 얼굴로 허둥지둥 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이 남자, 김동규 회원. 자신의 결혼식에서 ‘반값등록금, 될 때까지!’라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는 전설의 주인공다운 포스였다. 그나저나 결혼식 시위 사진도 표정이 자연스럽진 않던데 말이죠……, 하하하.

 

그의 이력서

 

대학 입학과 동시에 학생운동 시작, 군 제대 후 한국대학생총연합회의 간부로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 전국민중연대 활동가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후 올 3월에 그만 두기까지 8년간 한국진보연대 상근자로 근무. 2008년 촛불집회 때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으로 활동하다 수배됨, 조계사에서 천막 농성으로 맞서다 끝내 체포, 수감. 현재 노동자마을카페 봄봄의 매니저.

참으로 초지일관적인 이력. 스펙만 놓고 보면 꽤나 강성이지 싶은데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는 순박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이른바 ‘외유내강형’,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스타일……. 

 

“대학 입학하고 탈춤반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 하고 함께 공부하고 술 먹고 부대끼며 사는 게 너무 재밌고 좋았어요. 제가 92학번인데 그때만 해도 서클에 들어가고 데모 나가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였죠.”

그런 행보가 전공이 정치외교학인 것과 관련 있는 것인지 묻자 그건 아니란다. 몇 번의 추가 질문을 하고 나서야 왜 그가 소위 ‘운동권’에 온 청춘을 받쳤던 것인지 실마리가 잡혔다.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 중 하나가 ‘착하게 살아라’였어요. 그런 어머니의 바람이 제 인생의 기조가 된 셈이죠. 웬만하면 착하게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해요. 방향의 선명성도 중요하지만 통합적으로 가야한다는 게 제 스타일이에요. 좋은 게 좋은 거고 차이가 좀 있더라도 다 함께 가야하는 거고.”

그러나 그가 살아낸 시대는 ‘착하게 살자’라는 신조를 지키려면 싸움꾼이 될 수밖에 없는 수상한 시절이었다. 

“진보연대 활동가로 있으면서 2005년 매향리 사격장, APEC 회의, 홍콩에서 있었던 WTO회의 등 굵직한 사건들이 참 많았죠. 홍콩에는 농민들과 함께 대규모 원정 투쟁을 갔었고 2006년 한미FTA 협상 때도 미국에 4번 정도 갔었고, 그때가 원정 투쟁의 원년이었는데 개인적으로 견문과 시야가 넓어진 계기가 되었죠.”

신자유주의 격랑이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을 덮쳐올 때였다. 큰 파도들이 휩쓸어가는 역사의 현장에서 그는 가장 앞에 서 있었다. 그래서 부딪치고 깨지고 피 흘려야 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때 수배를 당했는데, 조계사에서 농성을 하다 결국 잡혔죠.”

 

아무리 지나간 이야기라도 ‘수배’이야기를 이렇게 웃으며 해도 되나 싶지만 다 사연이 있다. 

“자진출두는 하지말자, 청계광장에서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잡히더라도 잡히자, 이렇게 정리하고 막 헤어지려고 하는데 누군가 동해에 가자고 했어요.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동해에 가서 해나 한번 보자고…….”

그들은 진짜로 동해에 갔고, 모텔에 있다 붙잡혔다. 해는 보지도 못 했다. 

 

“영화 한편 찍었죠, 하하하”

결혼식에선 턱시도 차림으로 1인 시위를 했고, 결혼 세레모니로는 100만 원을 내고 부인과 함께 민주노동당 평생당원이 되었다. 인생을 영화로 만들 줄 아는 남자다.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

 

세상을 바꾸는 노동과 마을의 합체 - 카페 봄봄 

 

그렇게 가입했던 민주노동당은 이후 통합진보당으로 바뀌었고 그가 일했던 진보연대는 통합진보당 소속 단체였다. 그가 올 3월에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런 사실들과 무관하지 않다. 

“결정적 계기는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 문제 때문이었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일일이 다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간단히 말하면 제가 가진 문제의식은 이석기 의원이나 특정 정파 차원의 것이 아니에요. 눈앞에서 지난 10여 년간 이룩했던 진보정당 운동의 성과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걸 지켜보며 이젠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열심히 해나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보진영 내에서 스스로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했다.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준비해야 할 시기였죠. 멈춰 서서 지나온 길들을 되짚어 봐 야했어요. 철저하게 성찰하고 반성하는 일, 그 자체가 새로운 운동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운동이 관성이 되면 더 이상 운동성을 느낄 수 없다, 그럴 땐 오히려 멈추는 것이 새로운 운동이다, 멈춤은 단지 정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페이스북에 쓴 말들이다. 

 

“그러다 비슷한 고민들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노동을 가지고 마을 안에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노동자마을카페 봄봄이에요.”

서로 마주보며 함께 가자는 뜻의 ‘봄봄’. 서울노동광장에서 공간을 내주고 한시적으로 재정적인 도움도 주고 있지만 운영은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 

 

“카페의 의사결정은 회원들까지 모두 포함하는 카페 반상회에서 해요. 협동조합의 형태는 아니지만 카페는 회원 모두의 소유인 거죠. 강의도 열고 미싱이나 드로잉 같은 것도 함께 배우고 텃밭도 가꾸고, 앞으로도 실험해볼 만한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지금은 수공예작가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만든 소품들도 판매하고 있어요. 봄에는 텃밭에서 나오는 걸로 샐러드도 만들고, 동네 주민들이 만들어 온 오미자차, 매실차로 음료를 만들어 팔기도 하구요. 어느 정도의 규모로 만들어 갈 것인가, 지속가능한 것인가,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은 계속 하고 있어요.”

 

봄봄이 위치한 영등포에는 노숙인들이 많다. 외국인노동자들을 비롯해 인근에 직업훈련학교 학생들, 고시원에 사는 이들, 작은 가게를 하는 상인들도 많다. 그들 모두를 마을이라는 공간 안에서 ‘노동’이라는 열쇳말을 가지고 만나는 것. 봄봄이라는 공간을 바탕으로 이 모든 관계가 함께 어우러지고 더 넓게 확장되는 것. 이것이 그가 꿈꾸는 미래다. 

 

사랑학개론

 

참여연대 사람들 모두와 알고 지낸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2008년 촛불집회 때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활동을 하며 참여연대 사람들하고 많이 친해졌어요. 그전까지 저에게 참여연대의 이미지는 엘리트적이고, 정책이나 만들고,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약간 개량적인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정도? 근데 같이 촛불시위하면서 활동가들의 열정과 헌신적인 모습에 엄청 감동받았죠.”

쉽게 말해 참여연대는 몸은 안 쓰고 머리만 쓴다는 느낌. 그 편견이 촛불시위의 현장에서 함께 싸우며 깨져나갔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배우고 알아갔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참여연대 사람들에게 하도 술을 얻어먹어서 죽을 때까지 회비를 내도 아깝지가 않아요.”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카페 봄봄에서 판매하는 수공예 협동조합 ‘소꿉’에서 제작한 물품들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쯤 질문지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별이 눈에 띄었다. ‘사랑학개론.’

 

술자리에서 그렇게 사랑에 대해 강의를 하신다면서요?

“저야 뭐, 외계인과도 총단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해동포주의자라고 할 수 있죠.”

으이구, 그런 맥락이 아니란 거 잘 아시잖아요.

“연애를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나름 실전을 통해 구축한 이론들도 몇 개 가지고 있고, 일반적인 사랑의 이론들도 있어요. 일단 사랑에는 물결론과 깃발론이란 양대 이론이 있는데,  깃발론은 혼자 가서 일방적으로 고백하는 거고 물결론은 시간을 두고 물결을 일으켜서 그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거죠. 참여연대 간사 한명이 연애 문제로 괴로워할 때 제가 코칭을 좀 해준 적이 있죠. 그 두 사람 지금 결혼해서 잘 살아요.”

 

그때 그가 추천한 건 깃발론. 물결론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란다. 

“사랑의 시작은 사랑하는 마음을 먹는 거다, 일단 네 마음을 전부 다 표현해라, 그 다음은 네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조언했죠. 저도 제 아내와 결혼할 때 깃발론을 썼어요. 마음이 정해졌을 때 문자를 보냈죠. 나랑 데이트 한번 하자구요.”

음, 수배 중에 동해의 일출을 보러 갔던 로맨티스트 치곤 좀 별론데요, 라고 하자 함께 있던 다른 여성들의 반대 발언이 쏟아진다. 직접적인 표현이 더 매력 있다는 것이다. 난 늘 소수자인 운명을 타고났다보다. 여하튼 연애가 화두로 떠오르자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모두 대동단결의 자세로 대화에 참여한다. 이날 인터뷰는 그의 ‘이론과 실전에 근거한 러브스토리’를 길게 듣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

 

시대의 격랑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생의 어느 순간 멈춤을 선택하고, 그리고 그 이후 그는 자신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전에는 개인적인 삶에서든 운동에서든 이걸 해야 한다는 당위 혹은 도덕, 책임 같은 게 더 앞섰었죠. 지금은 내가 내 삶의 진정한 주체가 된 느낌이에요. 이전의 활동들과 관계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구요, 어쨌든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잘 하는 것들을 가지고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찾으려 하는 거죠.”

그래서 그는 이 시에 끌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백무산의 ‘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에 말이다. 

 

그대는 하나의 얼굴이 아니다

그대는 그곳에 그렇게 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일렁이는 바다의 얼굴이다

 

모든 길을 열어두겠다

그대에게 가는 길은 하나일 수 없다

길 밖 허공의 길마저도 열어두겠다 

 

봄봄에 모인 사람들이 꼭 하나의 지향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건 맞지만 마을 안에 갇혀서도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하나의 얼굴도 아니고 하나일 수도 없는, 그대에게 가는 길. 그 길목에 카페 봄봄이 있다.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을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