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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무겁지 않은 잡문)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자유게시판
작성자
사평역에서
작성일
2013-01-01 20:51
조회
3785

 

몇 년동안 물밑에서 잠수만 하고 있던 회원입니다.

예전에는 이따금 글을 올리기도 하고 행사에 참여도 자주 했는데 그렇지 못했네요.

 

인사겸해서 잡문 하나 올립니다.

 

 

 

 

 

긴 몸살 또는 피로가 잔뜩 쌓인 직장생활의 연속

 

입맛이 너무 없어습니다. 배는 고프지만 도무지 무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필자에게는 거의 발생되지 않는 상황임)

 

음식을 해먹기는커녕 밖에 나가 무엇을 사먹기도 몸이 지쳐있습니다.

배달음식은 도저히 넘어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뭐라도 꼭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행히 밥솥에는 따뜻한 밥 한공기는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꼭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님은 무엇으로 입맛을 달래보겠습니까?

 

 

 

1. 신김치  (옵션으로 찬물까지는 허용)

 

한국인의 기본반찬 김치, 오래 묵어 그윽한 신맛

입맛없는 자취생의 영원한 동반자

 

찬물에 말아서 김치 한조각 우걱우걱

오래 묵은 김치의 양념과 강한 향이 부담스러우면 찬물에 씻어서 숟가락에 걸쳐서 우걱우걱

 

신통하다. 매케하고 시큰한 이 고약한 맛의 신김치

물로 씻어냈는데도 이 녀석은 무슨 고집이 이렇게 쎈지 입안에서 따끔거리며

기어이 혀밑에서 군침을 고이게 만든다.

 

 

2. 간장   (옵션으로 참기름 허용)

 

바다와 맞닥뜨린 강어귀에 자리잡은 어느 시골마을의 초등학생.

추운 날 운동장, 시린 발을 동동구르며 지루한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이겨내고

드디어 겨울방학이라며 신이나서 집에 돌아왔는데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다.

 

한겨울 보리밭을 돌보러 가신 어머니,

농한기 한푼이라도 벌겠다고 일용직 노동을 하시러 도시에 가신 아버지,

누나는 식구들 반찬거리라도 구하겠다며 

강(江) 하류에서 언손을 호호 불어가며 파래를 건지고 있다.

곱디고운 누나의 손을 파르레하게 만들어버린 차가운 겨울 강이 참 얄밉다.

밀물이 되면 바닷물이 밀고 오는 짠내가 섞인 하류의 강물은 겨울에는 더욱 시리다.

 

손주를 기다리며 군불을 떼시던 할머니

 

"내 강아지 이제 왔는가?"하시며 내 두 손을 아랫목에 밀어 넣으신다.

 

딸그락.

 

내 손끝에서 느껴지는 뜨끈한 금속의 소리.

할머니가 혼이불 아래 한켠에 두신 스테인레스 밥그릇

 

쓱싹쓱싹

 

구세대 할머니는 기어이 간장을 넣고 밥을 비비신다.

우리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신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짠냄새 그리고 참기름 냄새.

 

"할머니 싫어, 밥 안먹어"

 

나도 내 친구 XX처럼 엄마가 해주시는 달갈부침에 밥을 먹고 싶은데

내 마음도 몰라주는 할머니는 기어이 내 입으로 그 촌스러운 밥수저를 밀어 넣으신다.

 

밥수저를 들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날 달래시는 할머니 보기 미안해서 한입 받아 먹는다.

어른이 되어 보니 그때 당신의 표정이 너무 짠하다.

지금은 그렇게 몇 공기라도 받아 먹겠건만........ .

 

(필자의 이야기는 아니구요. 제가 어릴 적 살던 마을 이웃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0^;;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또래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는)

 

 

 

3. 고추장  (옵션으로 부추 허용)

 

입안이 온통 깔깔하다. 김치도 물린다.

외국에 머물러 있다보면 푸른눈의 이방인이 보내는 눈총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꺼내고야 만다는 고추장.

 

고추장에는 무슨 마법이 있을까?

입안에 잔뜩 끼인 이 텁텁한 기운을 지워버린다.

 

입을 오물거릴때 아삭아삭 씹히는 부추와 고추장의 매운맛이 신통한 조화를 낸다.

 

자기도 모르게 대접을 향하는 수저의 움직임은 빨라지기 시작한다.

어느덧 이마에는 송글송글 맺혀오는 땀을 보니 지금이 겨울이 맞나 싶다.

 

속이 조금은 따끔거릴 수도 있지만 무슨 걱정이랴?

구수한 숭늉으로 달래주면 그만인 것을.

 

 

 

4. 무김치

 

지푸라기를 조금 앉고 겨울잠을 자고 있는 장독.

어제 내린 눈을 휘휘 털며 뚜껑을 열고 대접에 담아 오는 무김치.

몇 달 전 어머니는 김장을 하시던날 무우를 굵직하게 썰어서 양념에 버무리셨다.

 

힘을 주어 조심조심 내리누르면 우둑하고 젓가락에 꽂히는 손바닥만한 무 한 조각

 

밥 한 수저 입에 담고 행여 밥알이 흘러 나올까봐 고개를 살짝 위로 올려서 입을 크게 벌린다.

 

"아~~"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나온다.

 

'우두둑 우두둑'

이빨을 타고 잇몸을 간지럽히며 내는 경쾌한 소리.

 

거참 그 녀석 식감도 좋다.

신기하다, 서리도 내리고 눈까지 왔건만 양념이 밴 무는 얼지 않았다.

 

아삭거리는  맛있는 소리가 잃었던 입맛을 찾아준다.

 

지금 이 순간은 옆집 철수가 먹었다며 자랑하는 짜장면이 부럽지 않다.

 

 

기타.

 

5. 무말랭이

 

6. 깻잎장아찌

 

7. 새우젓

 

흠 또 뭐가 있을까?

 

 

--------- 아련히 잊혀져 가는 옛 맛들이 떠올라 몇 글자 끄적였습니다...^^;;;------

 

회원여러분께 꼭....끼니는 거르지 마시라고 당부드리는 ........사평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