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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아침고요 단풍놀이 가요

자유게시판
작성자
김수길
작성일
2001-10-20 01:02
조회
7190
날씨 좋은 가을날,

산세가 우람한 '축령산' 한 자락에 아늑한 보금자리처럼 자리 튼 '아침고요'를 찾았다.

파란 하늘은 높고 넓은데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포근하게 감싼다.



환한 '아침고요'에 들어서니 키 작은 맨드라미가 탐스러운 꽃을 머리에 커다랗게 이고 손에 손을 잡고서 활짝 반긴다.

어릴 적 흔하게 보아 다정한 맨드라미 수수한 빨간 꽃이 하도 고와서 발길을 멈춘다.

국화, 금잔화, 백일홍, 이름 모를 온갖 꽃들이 옹기종기 무리 지어 꽃길을 이룬다.

꽃동산을 빙 둘러 안은 산봉우리에 가을빛이 완연하다.

가을 산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산봉우리 높은 곳에는 벌써 나무들이 잎을 떨구었는지 앙상한 모습이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며, 중턱에는 울긋불긋 오색 단풍이 조화를 이루고, 밑으로 내려올수록 나무는 아직 잎이 푸르다.



운동장마냥 넓은 잔디밭에는 풀이 새파랗게 자라고 있어 가을 산과 대조를 이루고, 마른 가랑잎을 스치고 불어오는 미풍이 부드럽다.

파릇파릇 풀밭에 노란 옷을 입고 소풍 나온 유치원 어린이들이 병아리처럼 모여 논다.



돌부리에 발끝을 채이며 골짜기로 내려가니, 폭포 아래 맑은 물이 깊은 선녀탕(仙女蕩)이다. 시원스레 물이 떨어지는 소(沼)는 바닥까지 훤히 드려다 보이는데, 쉴새 없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물고기떼로 부산스럽다.

좁은 세상에서 숨돌릴 틈도 없이 바쁜 물고기의 몸놀림에 정신을 팔고 있자니, 말쑥한 다람쥐가 쪼르르 바위를 타고 내려와 관심을 빼앗는다.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날쌔게 옮겨 다니는 다람쥐는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아예 바위 위에 의젓하게 올라앉아서 여유를 부린다.

골짜기 차가운 개울물에 손을 적시며, 하늘을 우러르고, 산을 올려다보았다.

속세를 멀리 두고 깊은 산 속에 푹 파묻힌 듯 떠나온 곳이 아득하기만 하다.

개울가에는 돌탑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장관이다.

돌 위에 돌, 그 위에 또 돌…을 올려놓아 쌓은 탑들.

어느 손에 들려서 쌓아졌을까,

돌탑을 쌓은 정성은 무엇을 향한 기도일까.

돌탑 하나하나에 애틋하고 간절한 사연들이 그대로 담아 있을 것 같아 귀기울인다.

이 넓은 골짜기를 가꾸느라 수없이 많은 돌들을 들어냈다던 '아침고요' 한상경 교수의 고생담이 생각났다.

풍광이 수려한 이곳에 골프장이 아니라 꽃동산을 차린 그분의 꿈과 땀이 꽃처럼 아름답다.



색색으로 핀 백일홍 꽃무더기를 두 팔로 끌어안으니 꽃 속에서 꿀벌 한 마리가 튀어나와 윙 날아간다. 열심히 꿀을 모으다 불청객에 놀라 달아나는 꿀벌 꽁무니를 바라보며 머쓱해졌다.

"그렇게 줄행랑을 치지 않아도 되는데…" 라고 중얼거리지만, 달아난 꿀벌을 다시 불러올 재간은 나에게 없다.

꽃밭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어 미색을 뽐내니 구경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꿀벌들은 언제나 한가로이 꿀을 모을 수 있을까.



가을볕에 온몸을 맡긴 채 나무는 마치 불타오르는 듯 붉게 물들었다.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비치는 붉은 빛이 얼마나 고운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보는 단풍이지만 곱게 물든 잎들을 보면, 매번 그 아름다움에 놀라고 그 변화가 신기롭기만 하다.

떠나기 위한 나뭇잎의 화려한 차비, 머지않아 잎은 땅에 떨어지고 찬바람에 흩날릴 것이다.

떨어지는 날을 기다리는 나뭇잎의 마지막 변신에 눈이 부시다.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아침고요'는 나무들이 우거진 칙칙한 숲 속에 숨어 핀 들꽃처럼, 그렇게 가만히 강렬하게 사람의 발길을 끈다.

이른 아침 이슬 머금은 꽃들의 영롱한 모습을 그리며 '아침고요'를 나온다.



'감사의 나무에서, 만족의 꽃이 피고, 행복의 열매를 맺는다'고.

까페 '행복의 강'에서 바라보는 강에 저녁 안개가 낮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감사하고 만족하며 행복한 날,

강을 가르며 하얀 물줄기를 뿜어내고 힘차게 달리는 수상스키의 팽팽한 탄력이 보기 좋다.

노을 빛이 반사되어 강물은 은빛으로 반짝이며 흐른다.

흐르는 저 강물처럼 오늘 하루도, 또 우리들의 이야기도 멀리 멀리 흘러가는 때이다.

모든 것이 흐르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요란스럽게 손님을 반기던 흰둥이는 떠날 때에도 모른 체 하지 않았다.

'컹컹'대는 인사를 뒤로 달리고 달려 차량들의 불빛만 움직이는 어둠에 휩쓸렸다. 서울로.2001.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