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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NGO 활동가의 마음공부(II)

자유게시판
작성자
김수길
작성일
2001-10-24 11:04
조회
5561
앞의 글 이어서...



2.

NGO 활동가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깨닫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나 마찬가지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한사람 한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가치와 인격의 존엄에 눈떠 자율적인 인간으로 우뚝 일어서서 당당히 걸어갈 수 있도록 서로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격려하고 북돋아 주어야 한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와 인류의 미래에 대해 책임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日常과 분리되지 않는 영적, 정신적 힘은 시민운동가에게도 요구되는 품격이다. 평화와 화해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 참된 민주주의와 사회적 정의를 희구하는 정치적 각성, 깨어있는 양심, 도덕적 민감성 등은 NGO 활동가들이 닦아야 하는 마음 공부의 불가결한 요소들이다.

이제, NGO 활동가들에게도 ''시민운동의 영성''(spirituality; 혼 또는 마음이라 불러도 좋다)이라고나 할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 엣센스는 겸허하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깊이 귀기울여 듣는 것, 곧 경청(敬聽; mindful listening)에 있다. 경청은 나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열어 놓고 사람에게, 자연에게, 천지신명에게 고요히 정성을 다해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비판하고 따지고 주장하는 ''말하기''(speaking)에 못지 않게, 겸허히 마음을 비운 ''듣기''(listening)가 필요하다. 말하는 ''입''과 듣는 ''귀''의 균형이 요구된다.

경청이란 사람에게 변화를 강요하기보다는 변화의 씨앗을 그 마음에 가만히 뿌려놓는 것과 같다. 이것을 ''예언자적 경청''이라고 불러 보자. 우리 사회에 예언자적 선포(prophetic speaking)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는 예언자적 경청(prophetic listening)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새로운 인식이 요구되는 시대가 아닐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 같을 때, 더 깊숙이 귀를 기울여 고요히 기다려 보면 소리 아닌 소리가 내 마음의 귀에 들려온다. 민중에게, 시민들에게 말과 설교를 가지고 가는 대신에 마음의 귀를 가지고 가보자. 나 자신의 계획이나 용건, 판단이나 충고 따위를 완전히 접어놓고, 오로지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나를 내맡겨 귀를 기울일 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가 두 사람 사이에 싹트게 된다.

듣기에만 길들여져 있는 것으로 보였던 민중(시민)이, 그래서 자기 주견이나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듯이 보였던 그(들)이, 비로소 가슴을 열고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놓기 시작할 때, 그(들) 자신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던 놀라운 지혜와 꿈과 비전이 엉킨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려 나오게 된다.

이 새로운 관계, 새 카이로스 속에서 상처가 아물고 한풀이가 시작된다. 민중(시민)이 제 이야기에 스스로 격려를 받고 힘이 북돋아져 현재의 곤경을 박차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열리고 영원히 풀리지 않으리라고 체념했던 난제에 해답이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잠자던 "씨 의 혼(魂)을 불러내는"(함석헌) 방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