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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미전투를 아시나요

자유게시판
작성자
덕진
작성일
2018-11-03 21:31
조회
492

발미(Valmy) 전투를 아시나요



인류의 역사는 변화를 통하여 꾸준히 발전해왔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반동을 극복하고 이뤄졌다는 게 역사가 발해준다. 기득권층의 반동은 집요하고 잔인하고 끈질기다. 여기 2 가지 사례를 들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을 돌아볼까 한다.



프랑스혁명과 발미 전투



중세의 절대왕정과 신분제에 항거하여 파리의 민중들이 1789714일 왕권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하고 이 분위기는 지방으로 확산된다.


국민의회는 826일 앙시앵 레짐을 거부하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통해 자유·평등·우애를 슬로건으로 국민주권이라는 새 원칙을 세웠다. 의회가 군주로부터 인민에게로 주권을 넘긴 것이다.



1790년에는 국민대표로 구성된 제헌총회가 새 헌법을 만들었다. 내용은 봉건제의 종식을 뜻하는 것으로, 귀족의 특권과 칭호가 폐지되고, 교회령이 국유화되고, 능동시민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졌으며, 지방자치를 위한 행정구역이 개편되고, 형법도 인도주의적으로 바뀌어 프랑스는 공화제에 근접한 입헌군주제가 수립되었다.



이를 지켜본 인접 국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반프랑스동맹(1)을 맺고, 프랑스 혁명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정규군 5만을 편성하여 파리를 향해 출정시킨다. 침략군의 총사령관 프로이센의 브라운 슈바이크공작은 프랑스 국민은 나와 왕에게 복종하라!” 라고 선언한다.


의회는 조국의 위기를 알리고 젊은이들에게 군에 지원하도록 운동을 전개하자 마르세이유 지원자들은 라 마르세에즈를 힘차게 부르며, 파리로 행군했다.


국경지대에 모인 프랑스군은 모두 34천명, 여기에 왕당파 장교 9천명 가운데 6천 명이 이미 망명길에 오른 상태라 군의 지휘·통솔도 문제였다. 허겁지겁 도망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프랑스군은 끝까지 버텨, 1792920, 발미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프로이센 군을 격퇴시킨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독일의 문호 괴퇴는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가 개막되었다고 말했다.



절대왕조인 입접국가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3국이 모여, 1798년 제2차 대불군사동맹을 맺고 군사행동을 준비한다. 이에 집정내각은 이집트에 가 있는 나폴레옹을 급히 파리로 소환한다. 이에 나폴레옹은 집정관으로 취임한다.


나폴레옹군에 연달아 패배한 인접국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영국 4국이 1805년에 제3차 대불군사동맹을 맺고, 나폴레옹은 황제에 등극하여 프랑스의 시민혁명은 1860년 보불전쟁 패배로 나폴레옹3세가 황제에서 물러날 때까지 긴 시간 중단된다.



2. 이란·이라크 전쟁(Iran·Iraq war)



1979116,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나 1925년 이후 이란을 세속화하고 친 서방정책을 견지해온 팔레비 왕정이 무너지고, 15년 간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루훌라 호메이니가 귀국한다. 그는 국민투표로 왕정을 공화정으로 바꾸고 국가 지도자로 등극하여 나라를 이슬람법에 기초한 국가 개조작업에 착수한다.



1979716일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라크의 후세인은 1980922, 선전포고도 없이 국경을 넘어 이란을 침공한다. 명분은 이란·이라크 국경분쟁이었다.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왕정국가들의 왕실은 공화정을 두려워했고, 중동 석유에 막대한 이권을 갖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석유 이권을 지켜야 했으므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소련까지도 이라크가 이길 것으로 알고 이란을 외면하여 세계에서 오직 두 나라 리비아와 시리아만이 이란 편을 들었다. 이란과 미국 사이의 마찰은 팔레비2세의 해외 망명을 받아들인 미국에 항의하여 테헤란 대학생들에 의한 미 대사관 인질사태가 나고, 이에 따라 서방의 대 이란 경제봉쇄와 석유수출 중단 조치가 있고, 나아가 무기 수출은 물론 무기 부품 조달도 거부했다. 게다가 이란군은 혁명의 와중에 조직개편도 진행 중이었고, 많은 왕당파 장교들도 이란을 떠난 상태였다.



세계 군사전문가들의 예측을 벗어나, 이란의 혁명의용군과 민병대의 영웅적인 저항에 밀려 이라크군은 1982년 점령지에서 철수하고 평화협상을 제안하나 이란은 이를 거절하여, 1988820일에 가서야 전쟁이 끝난다.



3. 혁명과 전쟁이 남긴 유산



3-1. 발미전투


국외로 탈출하려던 루이16세는 국경에서 발각되어 파리로 압송되고, 이에 배반자로 몰려 1793121일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이에 놀란 방테지방의 농민들은 왕당파와 귀족들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켜 1795년까지 약 3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마무리된다.



프랑스 인접국가들의 3차에 걸친 대 프랑스 군사동맹과 이에 대응한 나폴레옹전쟁으로 100만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3-2. 이란·이라크 전쟁


미국은 아직도 이란에 석유금수 등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오바마 전


정부가 중동정책의 일환으로 국교 정상화를 위해 마련한 정책을 후임인 트럼프 대통령이 뒤집어버린 결과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 이란은 내년에 이슬람혁명 40주년을 맞는다.



이라크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199082일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미국과 서방국가의 군사개입으로 6주 만에 철군하는 만행을 저질러 미국의 미움을 자초한다.


미국의 전임 대통령 부시는 9.11테러 이후 2002년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이들 나라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테러를 지원하고 있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힌 직후, UN안보리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2003320일에는 이라크를 침공하여 정권을 무너뜨리고 후세인 전 대통령을 체포하여 처형한다. 현재 이라크는 친미 과도정부가 집권하고 막대한 석유자원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점유했겠다. 미군은 아직도 철군을 안 하고 있다.



친 이란 국가였던 리비아는 카다피 대통령이 집권 42년 만에 20111020일 반군에게 사살되었다. 카다피는 1969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하여 국호를 리비아 아랍공화국으로 바꾸고, 반 서구제국주의와 이슬람 민족주의를 추구했다.



시리아는 더욱 복잡하다. 1941년 독립한 이래,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에 참여했다가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에 빼앗긴 시리아는 반미 정서가 강한 나라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영향으로 20113, 알 아사드 부자의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이를 군이 유혈 진압하여 무장 반군의 폭동으로 발전했다. 이후 내전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과 수니파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지원하는 반군과, 러시아와 시아파 종주국을 자처하는 이란이 지원하는 정부군의 대리전으로 발전하고 여기에 이라크에서 밀려난 IS와 쿠르족 발전을 두려워한 터키까지 참여했다.


최근 UN난민구호단체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인구 1800만 명인 시리아에서 해외로 간 난민이 480만 명을 넘었고, 국내 실향민이 610만 명이라 당장 생계가 어려운 구호 대상이 무려 1,310만 명이란다.


예멘 내전도 시리아와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4. 마치는 말



4-1. 이슬람주의와 반 서구제국주의를 추구했던 리비아나 시리아가 반군에 의해 정권이 무너지는 이유를 알아보면, 국내 언론은 하나같이 독재와 부정부패로 나온다. 정말 그것이 다일까? 친 서방 산유국들인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밀리트연합, 카타르 등은 투명한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나?



버몬트대학 교수 제임스 로웬이 2003년도에 펴낸 미국의 거짓말(Lies Across America)’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류학자들이 즐겨 쓰는 표현에 의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인디언을 착취했고, 스페인 사람들은 인디언을 노예로 삼았으며, 영국인들은 인디언을 살해했다” “미국 영토 내에서 1491년에 1,400만 명이었던 원주민 수가 1920년에는 불과 244천 명으로 약 98%가 감소했다”(김한영 옮김, 갑인공방, 235)



그럴듯한 명분을 붙여 미국은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 미군을 투입했고, 독재 추방과 인권을 내걸고 리비아와 시리아 반군 지원에 나섰다. 결과로 오늘 이들 나라 국민 수천만은 생존을 위해 난민으로 지구상을 떠돌고 있다. 생존권을 뺏어놓고 인권이 무슨 뜻이 있는가?


중동 국가에 친 서방 정권을 세워놓고 석유를 지배하겠다는 야욕 이외에 다른 명분은 그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201152일 밤, 세계의 TV는 미 해군 특수부대가 헬리콥터를 타고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습격해 비무장으로 자고 있던 그를 사살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인권을 내세운 오바마 대통령의 명령이라니 더욱 놀랍다. 입국허가 없이 무장한 군대가 월경했다는 점, 전장에서 무장한 군인을 포로로 잡아도 현장 사살은 금지하고, 형사범은 법정에 세워 재판을 받아 죄를 묻는 게 국제법 규정이다. 이 사건의 뜻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자들의 최후를 보여줌으로 공포로 인한 자기 검열과 순종을 강요하는 것이리라.



19481210일 제3UN총회에서 채택한 세계 인권 선언 제1조는 다음과 같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 인간은 타고난 이성과 양심을 지니고 있으며, 형제애의 정신에 입각해서 서로 간에 행동해야 한다.”


현재 UN은 이 선언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나? 힘 있는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착취하는 구조를 UN이 나서서 뜯어고쳐야 하겠다. UN은 하루빨리 자기혁신을 해야 한다.



4-2. 현재 한반도는 전인미답의 새로운 길을 가려한다. 갈등과 대립의 70여 년의 분단체계에서 협력과 공존의 평화체제로 이행하려 하고 있다. 이념대결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리 잡았던 분단체제의 유습을 청산하기란 쉽지 않다.


대외적으로 한반도를 들러 싼 미···4대강국의 협조가 문제다.


대내적으로는 반공이념과 절대적인 한·미공조를 기초로한 보수·우익주의자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대내적으로 뜻을 같이해도 어려운 판에 보수주의자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니 첩첩산중이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옛말이 있다. 자유한국당과 태극기부대는 눈앞의 작은 이익을 탐하지 전에 장래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조국의 모습을 감안해야 하겠다.



그래도 역사는 발전해가고 있다. 프랑스혀명은 80년이 걸렸고, 이슬람혁명은 40년이 지난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도 인내심을 갖고 열린 정신으로 천천히 앞으로 전진해야 할 것이다.


2018.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