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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민 감독의 독립영화 프락치 5월20일 CGV 상암, CGV 강변 개봉

자유게시판
작성자
사이렌
작성일
2005-05-20 17:20
조회
1083



황철민 감독의 독립영화 ''프락치''



신분이 들통난 프락치 K(추헌엽)와 그를 감시하는 기관원 권(양영조)이 찌는 듯한 여름, 에어컨도 없는 변두리 한 낡은 여관방에 숨어 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밥 먹고, 자고, 비디오용 카메라로 방 안을 찍는 것 정도다. 바깥 나들이에 대한 욕망을 누그러뜨리고 끊임없이 ‘때’를 기다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곧 ‘감옥 생활’이다.



급기야 둘은 K가 읽고 있던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을 대본으로 연극 놀이를 시작한다. 누추한 여관방은 ‘아무데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찬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되고, K는 고리대금업자를 죽이고 죄의식에 사로잡힌 가난한 학생 라스콜리니코프를, 권은 거룩한 창부 소냐 역을 맡는다. 그리고 옆방에 투숙하고 있던 배우 지망생 10대 소녀가 이 놀이에 개입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 많은 책 가운데 하필 ‘죄와 벌’인 것은 “프락치도 인권을 침해당한 피해자지만, 그럼에도 프락치 활동의 죄가 큰 탓에 벌을 받아야 한다”는 감독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이용가치가 없어진 프락치는 결국 기관에 의해 암매장되고 만다.



‘프락치’는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를 맡고 있는 황철민 감독이 무려 7년이나 걸려 완성한 영화다. 마치 모래를 뿌려놓은 듯 시종일관 거친 화면으로 전개되지만, 작품은 구성이 탄탄하다. 권위주의 정권시절 한국의 모습을 축소한 듯한 여관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 간의 팽팽한 긴장관계의 변화, 권력을 가진 자가 자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 등이 밀도 있게 묘사된다. 특히 이 영화는 한때 운동권 학생들을 감시하던 프락치가 자신을 필요로 했던 그 무리들에게 이용당하고 버림받는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프락치의 인권 문제 또한 제기하고 있다. 극중 시간적 배경이 여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여름으로 곧장 넘어가는 것은 암울했던 당시 시대상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길을 가다 불량배들에게 두들겨맞아도 경찰이 오면 먼저 자리를 피해야 하는 수배자의 처지를 재미나게 그려넣기도 했다.



영화는 다행히 고발적·정치적 성격을 자제하고 있다. 반드시 ‘한국적 상황’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일어날 법한 상황들을 설정했다. 당시를 지나온 사람들이 보기에도 영화는 결코 억지 감정을 유발하지 않는다. 적절한 생략과 암시가 매끄러운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다.







황 감독은 베를린 유학 때 한국에서 망명해 양심선언을 한 실제 프락치를 만났고, 여기에다 1993년 남매 간첩단 사건을 결합하여 이 영화를 만들었다. 97년 감독과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제1회 부산프로모션플랜(PPP)에 선정됐지만, 2004년이 돼서야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을 받아 완성한 독립영화다. 3000만원을 받아 15일 만에 디지털카메라로 촬영을 마쳤다. 그리고 2005년 키네코 작업을 거쳐 35mm 극영화로 관객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올해 제34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제7회 부에노스아이레스 영화제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CGV강변과 CGV상암 인디영화관에서 20일 개봉한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