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1-07-25   3614

[인턴후기] 국민참여재판을 다녀와서

* 7월 4일부터 8월 12일까지 6주간 참여연대에서는 14명의 8기 인턴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교육 및 체험을 경험해 보는 이번 인턴 프로그램의 후기가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지난 7월 20일(수) 국민참여재판에 다녀온 인턴들이 쓴 방청 후기를 3편 싣습니다.

 

 

[인턴후기 4]

 

국민참여재판 방청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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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인턴 8기 이정훈

국민참여재판 방청을 하기 전에는…

 

국민참여재판이란 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사회탐구 선택과목으로 법과 사회를 배웠을 때 였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사법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배심원 제도를 도입했고 재판에서 배심원의 역할은 단지 자신의 의견 제시에만 그치고 판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배웠다.

 

 

사실 실제로 법원에는 처음 가보는지라 무척 긴장되었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엄숙했다. 재판에 방청하러가기 전날에 담당 간사님께 살인사건으로 인한 재판이라는 말을 들어 잔뜩 긴장한 상태로 법원으로 갔다. 그리고, 법정에 들어가기전 긴 복도에서부터 이 사건을 방청하러 온 로스쿨학생, 그림자배심원, 일반배심원들이 움집해 있어 법원으로 오면서 느낀 긴장된 마음은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리고, 법정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본 재판과정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의 기대도 되었다.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하면서

 

원래는 11시부터 재판 시작이라고 했지만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선정이 늦어져 1시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됬다. 처음에 배심원단(10명)이 입장했고 그 후 검사(2명) ㅡ> 판사(3명) ㅡ> 피고인 순으로 입장했다.

검사 두명중 한명의 여검사가 있었고, 판사는 부장판사와 옆에 배석하는 젊은 판사가 두명있었는데 한분은 여자 판사였다.

여자 판사와, 검사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진심으로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먼저, 판사가 배심원단에게 재판의 원칙에 대한 설명을 하고 배심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신중히 경청해줄 것을 당부했다.

 

본 사건은 30년 지기의 친구를 칼로 33회 찔러 죽인 살인사건이고 망인이 된 피해자 유씨와 피고인 이씨는 고등학교때 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검찰측과 변호인단은 33회 칼로 찔러죽인 것은 잔혹한 살해방법이었다고 입장을 같이 했지만, 계획적 범행 이었는지 우발적 범행이었는지, 그리고 피해자 유씨가 피고인 이씨를 지속적으로 괴롭혀 왔는지 하는 것이 사건의 쟁점이 되었다.

 

이 재판에서 변호인단은 피고인의 감형을 위해 여러 주장을 펼쳤지만 내가 생각했던거 보다 논리적이지는 않았고, 변호인단이 주장하는 것은 피고인이 피해자 유씨로 부터 지속적으로 정신적/육체적 괴롭힘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4명의 증인은 괴롭힘을 받은 모습을 본적이 없다고 진술했고, 단 1명의 증인만이 괴롭힘을 받은 것 같다고 추정하는 진술했다.

 

피고인의 부인이 증인으로 나와서 남편인 피고인이 망인 유씨로부터 지속적인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지속적으로 아들과 부인을 위협했다고 이야기했지만 부인이 주장한 여러 정황을 뒷받침할 증거가 제시되지 못했고 판사는 부인의 주장이 조금 의구심이 들어 계속 부인에게 말을 조금씩 바꿔가며 여러차례 질문했을 때 부인이 당황하며 횡설수설하다. 결국에는 자신은 잘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증언을 마쳤다.

 

재판이 진행 되는 내내 유가족들은 방청석에서 흐느끼며 울었고, 감정에 복받쳐 죄수복을 입고있는 피고인에게 욕설을 하고 고성을 질러 판사에게 두차례 정도 퇴장 명령을 당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밤 7시 30분부터 다시 시작된 재판에는 살해영상을 담은 CCTV와 사채부검 사진과 부검소견을 보았고 실제 살해에 쓰인 칼을 증거물로 봤다. 이 자료를 보기전 판사는 CCTV와 사진이 잔인하기 때문에 임산부와 미성년자 그리고 심신이 미약하고 건강이 좋지 않다면 보지 말기를 당부했다.

 

살해영상은 실제로 너무나 참혹했고 잔인했다. 나는 실제 살해영상을 보는 내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한 10시까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고 나는 귀가를 했다. 함께 인턴하는 1명의 학생이 남아서 재판을 끝까지 지켜봤는데 새벽 2시쯤 되어 선고가 이뤄졌고, 검사는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판사 역시 생명의 존엄성과 피고인이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여러 증거를 참고했을 때 망인이 된 피해자 유씨가 폭력을 유발한 정황을 찾지 못했다고 말하며 무기징역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민참여 배심원단들의 최소 23년 ~ 최대 30년 징역의 의견을 수렴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고 한다.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한 후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한 후에는 처음에 가졌던 부정적인 선입관이 사라졌다. 아무리 배심원의 의견이 판사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해도 7명의 배심원들이 재판장과 함께 양형에 관해 토의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배심원이 참여하는 점들을 봤을 때 판사가 배심원의 의견을 전적으로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렇기에 배심원들의 평결은 조금이라도 판사의 평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법원에서는 배심원들을 배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을 느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검사와 변호사가 자신의 주장을 PPT로 설명하는 것이었다소 딱딱하고 엄숙한 곳이라고만 알고 있던 법정에서 PPT를 사용하여 재판관과 배심원단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니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권위적인 기관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려는 법원의 작은 노력으로 나는 해석했다.

 

실제로 재판을 본적은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었고 책에서만 보던 배심원제도를 직접 본 느낌은 재판을 좀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결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재판관과 검사, 변호사, 피고인, 증인 등 그 모두가 재판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에 호소하는 증언과 행동을 해서 조금은 가식적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이 실제로 참여하는 배심원제도와 방청제도를 통해 판사의 오판을 방지하고 좀 더 평등하고 공정한 판결을 이끌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배심원단을 선정하면서 선발인원이 현재에는 만 20세 부터인데 한 사람의 인생을 크게 좌우할 문제라면 여러 사회적 경험을 하신 분, 연륜이 있으신 분들이 우선 선발되야 하지 않나 라는 개인적인 소견을 밝힌다. 실제로 오늘 재판에서 나보다 어려보이는 20대의 남자가 한명 있었는데 재판이 장시간 이어지니 피곤해하고 집중력이 흐려져 지쳐하는 모습을 봤다.

 

비록 법학을 전공하는 법학도는 아니지만 나에게 이번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좋은 기회였다. 실제로 형사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았고 법원의 분위기도 알게 되었다.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선입관을 깨주고 앞으로도 옳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소중한 깨우침을 준 참여연대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이런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사법 활동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길 바란다.

 

본 재판을 방청한 후 정말 죄짓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휘감았고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유가족은 물론이고 자신의 가족과 자기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인턴후기 5]

 

7월 20일 그날 서울지방법원 417호에선..
 
8기 인턴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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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소중하다. 어린 시절 유독 집안에 사고가 많았던 나로서는 ‘생명이 소중하다’라는 말을 평생 가슴 속에 새기며 살았다. 지난 3월 소중한 생명하나가 잔인하게 살해됐다. 피의자는 30년 지기 고등학생 동창이었다. 친구를 살인한 사실에 대해 피의자가 인정을 하고 있던 터라 양형만을 결정하는 재판이 사건 발생 4개월이 지난 7월 20일에 열렸고 난 인턴친구들과 함께 이날 재판을 방청했다.
 
“법조인도 아닌 배심원들이 무얼 아십니까, 내 동생이 어떻게 죽은지나 제대로 아십니까” 30년 지기 친구의 흉기에 잔인하게 살해된 피해자 큰 형이 법정에서 한 말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심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배심원들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방청석의 분위기는 달랐다. 배심원을 모독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형의 심정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동생이 죽었다. 그것도 믿었던 30년 지기 친구의 칼에. 배심원이 자신의 동생을 위해 올바른 판결을 어떻게 내려줄 수 있냐고 외쳤고 형은 배심원을 신뢰하지 않았다.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20세 이상의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평결을 내리는 재판이다. 피해자 형은 이 점에 대해 불편해했다.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인들이 어떻게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 또한 이 점에 대해선 피해자 형과 같은 생각이었다. 또 재판을 지켜보는 내내 기존의 재판과 달리 피의자나 증인들의 증언이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피의자’, ‘내장까지 드러낸 채 잔혹하게 죽어간 하나뿐인 남동생’ 등의 말이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 측에서 수없이 오고갔다. 재판의 성격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에 너무 치우쳐있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이런 재판에서 제대로 된 판결이 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재판을 지켜보는 내내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양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쟁점은 하나였다. “30년동안 자신을 괴롭힌 친구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했다”는 피의자 주장과 “동업을 하는데 있어서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돈을 주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저지른 살인이다”는 검사측의 해당 재판의 쟁점이었다. 만약 피의자 주장대로 오랜 시간동안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면 정상 참작돼 피의자의 구형기간이 다소 줄어들 수 있는 중요한 점이었기에 재판 내내 이를 소명하기 위해 검사와 변호사측은 법정에서 대립했다. 출석한 증인 9명이 차례대로 법정에서 증언을 했다. 그런데 증언에서는 피해자가 피의자를 학대하고 괴롭혔다는 점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어 피의자 부인 차례가 됐다. 부인은 피의자가 피해자로부터 학대받은 광경을 목격했다고 했다. 목격했던 시간과 장소, 그 밖의 주변 사물에 대해 진술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은 자신이 한 진술을 번복하고 당황해했다. 피의자가 괴롭힘을 당했다는 결정적인 증언을 한 부인의 진술이 신빙성을 잃어 갔다.
 
괴롭힘으로 인한 살인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 측에서는 흥미로운 증거를 제시했다. 피의자의 계좌 추적 결과였다. 동업 과정에서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건네준 9억6000만 원의 흐름으로 피의자는 피해자를 죽인 지 3시간 도 안 지났을 무렵 증권계좌에 남아있던 3억4000만 원을 자신의 동생들 계좌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또 받은 돈을 주식에 투자해 1억 원의 손실을 본 사실을 검사는 증거로 제출했다. 구치소 접견실에서 ‘주식 손실 때문에 죽였다고 그러면 나는 무기징역이나 사형이야’ ‘주식 손실금 1억 때문에 죽였다 그러면 안 되니까 공탁을 해야 한다’고 말한 사실도 공개했다.
 
정오에 시작됐던 재판은 다음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법원은 피의자에게 살인 혐의로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배심원단의 징역 23년 형 선고 결정을 존중한 결과였다. 판결이 선고 된 후 유가족은 통곡했다. 비로소 30년 동안 친구를 괴롭혀 죽임을 당했다는 동생의 누명이 벗겨져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재판이 끝난 후 재판 처음부터 배심원과 국민 참여재판의 성격에 대해 가졌던 내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됐다. 재판을 시작할 무렵 재판장은 “배심원의 평결과 법원이 평결이 90% 일치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저렇게 확언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비록 무기징역을 생각한 재판장과 징역 23년을 생각한 배심원의 평결은 달랐지만 피의자가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괴롭힘으로 살해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생각이 일치했다는 사실을 보면서 배심원의 능력을 의심한 것이 새삼 부끄러웠다. 피해자 형도 어느 정도는 나처럼 배심원과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의심과 불편함이 어느 정도 해소 됐기를 바란다.

 

 

[인턴후기6]

 

새로운 시작

 

8기 인턴 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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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벽 2시 13분.

  “…징역 23년을 선고합니다.”

  평결 말미, 형 선고를 끝으로 약 13시간동안의 숨 막혔던 공판과정은 막을 내렸다.

  피해자 유족들 중 여성분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울음을 터뜨렸고, 남성분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둘 검사에게 다가가 수고했다는 인사를 전했다.

  피해자 어머니의 제삿날을 정확히 2시간 13분 넘긴 시점이었다.


#2.

  피해자와 피고인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어른이 되어 부동산 투자 건으로 다시 만난 그들은 투자금을 둘러싸고 갈등을 벌였고, 결국 피고인은 피해자를 42.5cm 칼로 33번 찔러 죽였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1) 범행동기

  피고인 측은 투자처로의 투자금 유치 및 피해자에게서 빌린 10억의 상환에 대해 본인과 기타 가족들이 피해자로부터 ‘지속적인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유죄임은 인정하되, 양형의 감경조건인 ‘지속적 피해’를 강조한 것이다.
  검사 측은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빌린 10억의 전체 상환을 모면하고자, 즉 돈을 목적으로 피해자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2) 우발 vs. 계획
  피고인 측은 우발적 살인이라 단정했다. 칼은 사건 당일 낯선 이로부터 받은 전화로 심화된 불안감 때문에 호신용으로 구입했을 뿐, 살인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피고인은 당일 전화가 온 낯선 이와 피해자 간의 관계를 의심하고서, 피해자로부터 빼앗겼다가 되찾은 구겨진 아들 사진을 본 순간 우발적으로 살인을 생각했다고 했다.


  검사 측은 계획적 살인이라고 보았다. 사건 당일 칼을 구입하기 위해 상점을 돌아다녔던 점, 자동차 운전석 시트 밑에 칼을 숨겼다가 꺼낸 점, 살인 직전 화장실에 들어가 심호흡을 여러 차례 했었다는 피고인의 진술, CCTV화면에 담긴 태연하면서도 담담한 피고인의 살인 모습까지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였다.

  피고인 측에 따르면 피고인은 길어야 6년형이었지만, 검사 측에 따르면 유기징역으로는 최대 25.5년형이고 심하게는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도 있었다.


#3.

  배심원들은 겉으로 보기에 30~40대가 주를 이루었다. 성비는 남자가 조금 더 많았고, 예비배심원 1명을 포함하여 모두 10명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검사와 변호인은 친절한 말투와 여러 가지 도구들을 활용하여 배심원단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증거들을 최대한 ‘각자의 입장’에서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배심원단을 설득해야만 피고인에게 목적한 양형 결과를 이끌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검사 측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진술 부분을 손으로 가린 채, 불리한 부분을 배심원단에게 소개했다는 지적이 변호인으로부터 나오는 짤막한 해프닝이 생기기도 했다.

  재판부는 증인 심문, 증거 제시, 피고인 심문 등 일련의 절차에서 최대한 양측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려고 노력하였다. 석연찮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직권으로 심문을 하여 배심원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였으며, 필요한 경우 배심원단에서 궁금한 부분을 대리하여 질문하기도 하였다.

  새벽 1시 30분이 되어서야 최종 변론까지의 과정이 모두 끝났다. 그때까지 배심원들은  집중하여 검사와 피고인 측의 주장을 듣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물론 개중에는 이미 마음의 결론을 내린 듯 지루한 표정으로 공판 과정을 지켜본 배심원도 하나 둘 있었다. 그러나 같이 지켜본 내가 판단하기에도 공판의 후반부, 특히 피고인 심문은 이전까지의 과정에서 주장되었던 바를 확인하는 차원에 불과하였기에 그 지루함에 십분 공감되었다.


#4.

  새벽 2시. 평의 결과가 나왔다.
  배심원단은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하고, 특히 계획살인 및 잔혹한 범행 수법을 인정하여 특수 가중 처벌할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또한 피해자부터의 지속적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 범행동기를 양형 감경에 참작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양형에 관해서는 최저 18년에서 최대 30년까지 다양한 형량이 제시되었으나 다수결로서 23년이 결정되었다.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의견을 모두 존중하여, 평의 결과에 따라 징역 23년을 피고인에게 선고하였다.

 

  1) ‘상식’의 한계는 어디?
  짤막한 내 상식에 따르면, 형사재판은 크게 사실관계 판단과 적용법조 판단으로 나뉜다. 살인 사실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 전자라면, 후자는 사건에 대해 어떤 죄형에 관한 법조항을 적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을 보기 전까지 배심원단이 하는 역할은 단지 사실관계 판단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 일반에 통용되는 상식을 기준으로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적용법조에 관한 판단은 축적된 경험이 없다면 곤란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배심원단은 형량을 정하는 역할까지도 겸하고 있었다. 해당범죄가 살인죄임이 명백하다보니, 죄형법조 적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형량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대법원에서 제시하는 양형기준을 배심원단에게 자세히 설명하며 적절한 형량을 선택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배심원단이 상식에 기반을 두고, 다수결로 결정한 형량에 대해 재판부는 그대로 따랐다.
  국민참여재판에서 상식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어쩌면 법이라는 것이 어려운 논리나 이론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상식과 상통하는 것은 아닐런지 모를 일이다.

 

  2) 배심원단과 ‘법감정’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 유족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법정모독으로 퇴정당하기도 하였고, 신고 있던 구두를 던지기도 했으며 피해자의 죽음과 관련한 진술과 증거가 제시될 때마다 구슬프게 울음을 터뜨렸다.
  검사는 최종 변론에서 피고인에 대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유명한 말까지 곁들이며 검사는 피해자와 유족의 입장에 철저히 감정 이입한 듯 보였다.


  평결 결과는 징역 23년이었다. 유족들의 법감정을 조금이나마 보듬어 안은 결과였을까. 판결 확정이 나지 않은 지금, 아직은 모를 일이다.
  배심원단은 피해자 측의 법감정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였을까. 법감정은 형량을 정하는 공식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고려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느낄 수 없는 법은 더 이상 법으로서 기능하기 힘들다. 법은 사람들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배심원단이 얼마만큼 국민들의 법감정을 대변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5.

  법정을 빠져나오며, 차가운 새벽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누군가에게는 후회와 회한의 나날이 결정된 하루의 시작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결정이 내려진 하루의 시작이다.

  어느 쪽이든 새로운 시작인 것만은 모두에게 공통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시작이 우리들, 국민들의 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 못다한 이야기 1.

  사실 공판을 끝까지 지켜보기로 한 것은 매우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피해자 유족이 던진 구두에 머리를 얻어 맞았는데, (옆에 앉은 동기도 맞았다는 걸로 봐서 1타 2피이거나 구두를 두 개 던지셨을 듯) 그 후 저녁에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서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희한하게 구두에 맞은 곳이 아련하게 아파오더라. 문득 끝까지 결과를 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가슴 속에 차올랐고 결국 새벽이 되어서야 법정을 빠져나왔다.


# 못다한 이야기 2.

  언론에서는 피해자가 30여년간 피고인을 괴롭힌 악질로 묘사되었다고 한다. 피해자의 명예가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한다.


# 못다한 이야기 3.
 
추천할 만한 영화 하나와 책 하나.

[12명의 성난 사람들] : 흑백 영화인데 배심원제도의 합리적 이성 측면을 강조한다. 검사의 주장과 증거에 따르면 명백히 살인을 저지른 한 소년 피고인에 대해 12명의 배심원들이 평의를 거치면서 유죄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되고 결국 피고인의 누명을 벗긴다는 내용이다.

 

[방황하는 칼날] :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미스터리 소설이다. ‘법감정’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납치, 마약 사용, 강간, 살인 등 종합적 흉악범죄를 딸에게 저지른 A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현행 소년법의 보호를 받아 죄질에 비해 너무나도 가벼운 형을 살 것에 비관한 나머지, 피해자의 아버지가 A를 직접 죽이기 위해 돌아다니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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