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1-08-01   4821

[인턴후기] 전쟁기념관, 평화박물관을 다녀와서

* 7월 4일부터 8월 12일까지 6주간 참여연대에서는 14명의 8기 인턴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교육 및 체험을 경험해 보는 이번 인턴 프로그램의 후기가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아픈 과거를 기억 하며 우리의 미래를 내다본다.
 

[인턴후기 8]  8기 인턴 이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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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듯이 내리던 비도 그치고 무더운 여름 날 인턴들과 함께 전쟁 기념관을 방문 했다. 덥다고 징징거리며 전쟁 기념관에 들어섰다. 징징거리던 것도 잠시, 입구에 자리한 형제 동상을 보는 순간 마음이 먹먹해졌다. 직접 전쟁을 겪어본 나이도 아니고, 전쟁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은 게 다다. 하지만 형제 동상을 보고 난 그 놈의 이념이 뭐길래 피 튀기며 싸워야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 멘탈은 정말 단순하다. 부딪히는 걸 원체 싫어하는 난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고 본다. 단순한 내 멘탈은 이념을 생각 하는데 있어서도 적용 된다. 이런 이념도 있고, 저런 이념도 있는데 굳이 전쟁을 일으켜야 했을까. 정말 단순하다.
 
전쟁 기념관 방문이 처음인 나는 부산에 위치한 UN 민주공원의 엄숙한 느낌과 비슷 할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전쟁 기념관’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전쟁 기념관의 웨딩홀, 3층에 위치한 사격장, 1층 한 켠엔 천안함 사건의 자료가 있고, 반대편엔 어린이들을 위한 이벤트 장까지. 참으로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엄숙해야할 곳에서 결혼식이라니. 전쟁을 거쳤던 사람들이 와서 본다면 뒤로 넘어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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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 입구

과연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전쟁이 기념할 일들인가? 유럽처럼 정복전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역사 속에서 본다면 많은 피해를 입으면서 적들을 막아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피를 흘렸던 전쟁 밖에 없는 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어났던 전쟁들을 모른 체 넘어가자는 건 아니다. 우리가 천안함 46인 용사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참전한 용사들을 기리고 기억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참된 기념관의 의미는 그렇다. 그런 기념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쟁을 기념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미래의 군복까지 전시 해놓았다. 앞으로 전쟁이 일어날 것이란 말인가? 한층에는 우리나라의 군대들에 대한 자부심 밖에 보이지 않았다. 국방부와 가까워서 그런가.  
 
쭉 둘러보고 난 후 이진선 간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단어의 선택이 참 중요하다고 본다. ‘전쟁 기념관’이 과연 적절히 쓰인 것일까. 나는 박물관의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구한 말 다른 나라의 군복과 총들을 전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많은 의문이 남았다.
 
전쟁기념관을 나와서 종로에 위치하고 있는 평화박물관으로 갔다. 평화박물관은 작은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강의를 들으며 든 생각은 항상 우리가 피해자라고만 느꼈지만 월남전에 파병된 우리나라 군인들이 저지른 일들을 보고는 할 말이 없었다. 평화를 위해선 잘 못된 점을 은폐하기 보다는 사과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하지만 그게 또 쉽지는 않겠지.
 
나는 내가 전쟁과 관련 없는 세대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작년 21년 살아생전 처음으로 전쟁이 일어 날 지도 모르는 사건을 접하게 된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보면서 전쟁에 노출 되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평화군축센터의 박정은 팀장님의 강연이 떠올랐다. 무기를 생산하고 군사기지를 많이 짓는다고 해서 안보가 강화 될까? 오히려 너도 나도 군사력을 증강 하다보면 분쟁 위기를 더욱 고조 시키며 안보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짓는다고 해서 국가 안보가 강화 된다는 입장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의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기억해야 한다. 이 작은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렀는가. 그 때마다 적들을 물리치고 목숨을 바쳤던 용사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토록 편하게 숨쉬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 땅에서 태어난 같은 민족이고, 때로는 안보와 관련해서 적이 되기도 한다. 국가의 힘이 약해져 한 때 큰 시련을 겪기도 했었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지켜온 것은 우리 모두의 힘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쟁은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나라의 주인이 될 친구들에게 전쟁터로 남은 나라보다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우리 땅을 물려주는 것만큼 큰 선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선조들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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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박물관 김영환 활동가

 

 

[인턴후기 9]  

 

“전쟁기념관 방문: ‘평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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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인턴 목타르 아부바카르

요즘 평화라는 단어를 쓸 때 상대주의나 ‘지적인 예술’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는 인생이다. 평화는 평온이다. 평화는 적극적인 평화다… 한도 끝도 없는 말이다.  아무래도 복잡하고 함축성이 많은 단어일수록 철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평화를 말할 때, 그리고 한국 사회와 역사를 봤을 때 어떤 의미를 띄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7월 28일에 전쟁기념관과 평화박물과의 방문을 즐겁게 기다렸다.

전쟁기념관을 먼저 방문했다. 원래 박물관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싫증이 나지만 한국전쟁이 어떤 식으로 기억되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그런지 들뜬 마음으로 인턴친구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 삼각지역에서 내렸다.  걸어가는 길에도 박물관이 의미하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었다. 원래 박물관은 한 나라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는 기억의 터전으로 국가의 바탕을 이루는 개념과 가치를 보여준다. 그런데 기념관 맞은 평의 국방부를 봤을 때부터 상당한 의문이 들었다.

 

‘형제상’을 지나 기념관 안으로 옮기며 두리번거렸다. 기념관과 그 앞의 플라자가 어마어마한 규모였기 때문이다. 무더위가 찾아온 7월말이었지만 왠지 날씨가 을씨년스러웠고 기념관의 벽들도 옅은 회색이었기 때문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한국인, 외국인 관광객 몇 명밖에 없는 기념관 안에서 우리 인턴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천안함 전시회, 삼국시대, 임진왜란에 대한 전시회를 빠른 발걸음으로 지나쳤고, 한국전쟁 전시회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한반도 평화를 생각하면 한국전쟁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크게 실망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전시회가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발발, 진행과정 등이 교과서처럼 줄줄이 나왔다. 애치슨선, 인천상륙작전,  일사후퇴, 그리고 남과 북의 군사력 비교까지 주요 내용이 나왔지만 서로 비슷한 영상과 톤으로 소개되어서인지 와 닿지 않았고 끝이 안 보였다. 그나마 내 눈길을 끌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소개하는 부분이었다. 특히 1950년대 주로 무엇을 먹었는지(수제비, 꿀꿀이죽과 호박죽), 또 피우던 담배는 어떻게 생겼는지, 사용했던 생필품의 모습이 어땠는지 한참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경험은 자기 직전에 읽는 물리학 교과서, 아니면 금요일 4시 반에 듣는 동유럽 문학 강의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기념관이 나의 관심을 제대로 유발하지 못했다.

두 번째 문제는 가장 걱정스럽다. 역사를 기록해서 한 나라의 기억을 보관하는 하나의 기념물로서 전쟁기념관은 역사를 이해하고 소화하고,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게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결국 얻을 교훈은 없고 일관성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전쟁의 과거를 보여주고, 최신형무기를 보여주면서 전쟁의 미래를 보여주며 한국 전쟁은 폭력 연속체의 한 지점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한국전쟁을 소개하며 역사의 단절이 이루어졌다는 듯, ‘민족의 비극’을 외치며 6.25전쟁의 절대적 특수성을 보여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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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기념관 3층에 있는 사격 체험관

 

다른 모순도 있었다. 예컨대, 전시회는 난민과 사상자를 보여주며 전쟁의 비극을 강조하면서도 3층에 사격장처럼 꾸며진 총 게임이 있다. 전쟁을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인지 게임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지, 명확한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러한 모순들이 경악스럽다. 전쟁기념관에서 어떠한 가르침이 나와야 한다면, 최소한 전쟁의 이유를 잘 설명하고,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도리 정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평화를 위한 길, 전쟁의 교훈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문제는 어쩌면 기념관을 기획한 사람들은 전쟁과 평화의 개념을 너무 단순화 시켜서 그럴 수도 있다. 전쟁은 무력충돌, 평화는 전쟁의 부재라고 정의가 내린 듯하다. 북한 군인들이 38선을 건너 남침을 하는 전시회의 한 장면에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민족의 비극이 시작된다!”라고 적혀 있었다. 과연 전쟁의 비극이 그 시점에서 시작되었을까. 독립 이후의 이데올로기적,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간과하고, 4.3사태도 제대로 다루지 않는 전시회는 전쟁을 너무나 단순히 본다고 생각했다. 물론 전후의 상황도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전쟁을 역사의 필연적인 결과물로 볼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요인의 우발적(contingent) 산물이다.

다른 인턴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역사의식의 문제’와 ‘흑백논리’, 또는 ‘편향된 시각’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들으면서 나도 스스로 박물관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했다. 박물관은 역사를 보는 한 시각을 제공하지만 역시 사람 간의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서 그 시각을 평가하고, 역사에 더 역동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 같다.

평화박물관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박물관이 생기게 된 계기, 이를 둘러싼 논리, 그리고 평화 활동에 대한 발표를 듣고 몇 가지 질문을 한 다음 스케줄이 마무리되었다. 평화박물관도, 인턴친구들과 한 이야기도 전쟁의 역사를 보는 참신한 시각을 줬기에 인상 깊은 날이었다.

얼핏 보면 우리도 잘못됐다는 흑백논리에 빠진 것 같다. 전쟁기념관 가서 ‘전쟁을 이런 식으로 기념하면 안 된다’하고 평화 박물관으로 옮겨 ‘이것이 바람직하다’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오후 내내 우리는 전쟁과 평화를 보는 다양한 의견도 나누었다. 안보와 평화를 위해 분쟁지역으로 군을 파병해도 되느냐, 게임의 폭력은 어느 정도 사회에 반영되느냐 등의 질문을 하며 전쟁도 평화도 보다 복잡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평화의 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어 매우 보람찬 하루로 내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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