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5-06-30   2634

<안국동窓> 폭압적 근대화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무렵,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당시 한국 최고의 ‘호화백화점’으로 알려져서 ‘과소비 1번지’로 꼽히기도 했던 삼풍백화점이 어떤 외적인 이유도 없이 저절로 완전붕괴하고 말았다. 판잣집에서도 거의 볼 수 없는 황당한 일이었다. 502명이 죽고 937명이 다쳤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 죽은 이들 중에서 30명의 신원은 결국 확인하지 못했다. 경제적 피해는 거의 3000억원에 이르렀다. 다친 이들은 물론이고 시민들 중에서도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강산은 크게 변했다. 나라 전체에 아파트와 도로가 엄청나게 늘어나서 말 그대로 아파트 공화국, 시멘트 공화국이 되고 말았다. 이렇듯 각종 구조물과 건축물이 크게 늘어난 만큼 위험도 크게 늘어났다. 이런 위험이 사고로 발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과거의 일이 되었는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그 자체로는 결코 특이한 사고가 아니다. 사고는 후진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선진국에서도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 주원인은 결코 테러가 아니다. 광우병처럼 미국, 영국, 독일,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만 나타나는 끔찍한 사고도 있다. 그러니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같은 사고는 한국과 같은 ‘후진국’에서만 일어난다는 ‘편견’은 꼭 버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편견’을 일본이 널리 유포한다고 보기도 한다. 예컨대 2003년 2월의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때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며 일본 언론이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철도 사고가 왕왕 일어나며, 2005년 4월 25일에는 107명이 죽고 547명이 다치는 대형 탈선사고가 일어났다. 현대 사회는 엄청난 인위적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사회이다. 이 점을 강조해서 울리히 벡이라는 독일의 사회학자는 현대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부른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독일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위험사회’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원인은 무엇인가? 기술적 원인은 ‘총체적 부실’로 밝혀졌다. 설계, 시공, 감리의 모든 과정이 부실하게 이루어져서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원인이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총체적 부실’이 이루어지게 되었는가? 하나의 건축물을 지을 때, 설계, 시공, 감리의 모든 과정에서 관련 관청의 점검과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있던 건축법의 가장 초보적인 사항이다. 바로 이 가장 초보적인 사항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아서 결국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라는 대참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 수 있었는가? 삼풍백화점의 소유주가 관련 관청에 뇌물을 먹였던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서초구 구청장을 지냈던 두 사람이 모두 뇌물을 먹었고, 서초구 주택과의 모든 공무원이 뇌물을 먹었다. ‘총체적 부실’은 ‘총체적 부패’의 산물이었다. 이런 ‘총체적 부패’ 때문에 한국은 위험이 쉽게 사고로 발현되는 ‘사고공화국’이 되고 만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계기로 많은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크게 건설행정과 재난행정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건설교통부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난 직후에 건설제도개혁기획단을 꾸려서 대대적인 개혁작업을 시작했다. 행정자치부는 재난 피해자의 구제를 핵심으로 하는 재난관리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재난행정을 새롭게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부실공사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제도들이 수립되고, 소방방재청과 같은 새로운 국가기구가 창설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정말로 잊지 말고 가슴 속에 새겨야 할 것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같은 참사가 결코 제도가 없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도가 작동하지 않아서 삼풍백화점은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제도가 작동하지 않은 원인은 부패 때문이었다. 탐욕에 눈먼 무식한 건축주와 역시 탐욕에 눈먼 무식한 공무원이 짬짜미가 되어 삼풍백화점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고 다치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개혁의 핵심은 부패를 없애는 것이어야 했다.

부패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부패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손실이 크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1000만원을 주고받은 뇌물사범에게 10억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것이다. 부패가 끔찍한 대량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처벌은 결코 과중한 것이 아니라 엄중한 것이다. 그런데 삼풍백화점의 주범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삼풍백화점의 이준 회장은 7년 6개월의 옥살이를 하고 나와 얼마 뒤에 사망했다. 그의 둘째 아들로서 삼풍백화점의 사장이었던 이한상은 7년의 옥살이를 하고 나와 외국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지은 죄에 비하면 이들이 받은 형벌은 미미한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잘못된 것은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처벌이다. 가장 책임이 큰 공무원은 이충우와 황철민이라고 하는 두 명의 전직 서초구청장이었다. 이들은 징역 10월에 각각 추징금 200만원과 300만원이라는 처벌을 받았다. 사실상 ‘면죄부’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탐욕에 찬 건축주를 규제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공무원들이 건축주의 탐욕에 기생했기 때문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기업가는 이윤을 위해 악마와도 거래한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탐욕은 그들을 움직이는 근본동력이다. 그러니 자본가의 ‘윤리’에 대한 환상은 접어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정부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본가의 탐욕을 규제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중대한 과제이다. 그 탐욕에 기생해서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법정 최고형으로 처벌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고 공무원이 탐욕의 기생충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런 점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결코 끝났다고 할 수 없다. 그 주범에 대한 처벌은커녕 수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필시 어디에선가 제2, 제3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있으리라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따져 보자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박정희가 추구한 ‘폭압적 근대화’의 산물이다. ‘폭압적 근대화’란 ‘폭력을 통해 추진된 압축적 근대화’를 뜻한다. 그 동안 많은 학자들이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를 가리켜 ‘압축적 근대화’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압축적 과정이 아니었다. 압축은 폭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점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법으로 규정된 제도가 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울일 뿐이고 실제로 박정희 시대를 규정했던 것은 박정희로부터 비롯되는 노골적인 폭력이었다. 이렇게 해서 박정희는 이 사회를 ‘이중질서 사회’로 만들었다. 이것은 ‘폭력과 뇌물이 법을 우롱하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의 문제가 폭발적으로 드러난 것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였으며, 이것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사회는 아직도 대단히 불안하고 불길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박정희가 시작한 ‘본격적 근대화’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고를 곱씹어 교훈을 얻고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도, 학계도, 심지어 사회운동도 이에 대해 대단히 표피적인 관심만을 보이고 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동운동도 예외는 아니다. 502명의 희생자 중에서 340명이 노동자였다. 삼풍백화점의 문제를 가장 먼저 안 사람도 노동자였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도 노동자였다. 이런 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노동운동의 완전한 무관심은 그야말로 전율스럽다. 노동운동은 시민의 안전은커녕 자신의 안전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고 무능력한 존재인가?

우리는 아직도 폭압적 근대화의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박정희는 오래 전에 죽었지만 그가 만든 사회체계는 아직도 굳건히 작동하고 있다. 여러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박정희체계’의 구조는 여전히 굳건하다. 삼풍백화점 자리에 ‘아크로비스타’라는 이름의 호화찬란한 초고층 호화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해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중대한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다. 위험을 당연시하는 폭압적 근대화를 끝장내야 한다. 안전을 이 사회의 확고한 구성원리로 세워야 한다. 소방방재청이 제법 요란하게 벌이고 있는 낡은 계도주의적 ‘안전문화운동’ 따위로는 결코 이런 역사적 과제를 이룰 수 없다.

투명행정의 실현과 노동운동의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공무원이 부패의 주범에서 부패척결의 주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극도로 잘못된 비밀행정의 청산과 정보기술을 이용한 ‘24시간 투명행정’을 구현해야 한다. 또한 노동운동은 시민의 안전뿐만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공익 제보자’의 임무를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 한 사람의 노동자가 수천억원의 부패를 막고 수만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노동운동은 이러한 공익적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폭압적 근대화가 구축한 ‘사고공화국’의 칼날은 도처에서 우리의 심장을 노리고 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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