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3-07-11   2803

<이김유진의 女언유골> 두 개의 성을 가진 사람들

이김유진 격주간 ‘한겨레 스카이라이프’ 편집장 ujinlee@hanmail.net

사이버참여연대에 글을 올린 뒤 글 내용과 함께 제 이름에 대해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제 이름이 불편하신가요? 하긴, 무리도 아니예요. 일반적인 일은 아니니까요. 부모님의 성을 함께 쓰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시겠지요.

하지만 제 소중한 이름을 두고 놀리진 마세요. 누군들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고치겠습니까. 돌아가신 제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늘 어머니에 대한 각성을 가지고 올바르게 살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성을 함께 쓰는 것이 그렇게도 불편하신가요?

제가 부모성을 함께 쓰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두어달 쯤 됐나요? 때맞춰 명함도 떨어지고 해서 새 명함을 회사에 신청했지요. ‘이유진’이란 이름 대신에 ‘이김유진’이라 하고 영문 이름도 ‘LeeKim U-jin’으로 바꾸었지요.

한의사 이유명호, 여성학자 오한숙희, 정치인 고은광순, 교수 유채지나…. 요즘은 성을 두 개 가진 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로 여성들이지요. 제가 다니는 한겨레신문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부모님의 성을 같이 쓰는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 세 명이나 됩니다. 그 가운데는 남성도 한 분 계시지요.

부모성쓰기 운동이 벌어진 것은 지난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성계 사람들이 모여 호주제철폐, 남아선호사상 개선 등의 구호를 내세우며 부모성을 함께 쓰자는 제안을 했었지요.

부모성을 같이 쓰는 분들의 공통된 의견은 “엄마가 너무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저도 ‘전주 이씨 문중 효령대군파 17대손’이라는 친가쪽 가계 못지 않게 외가쪽 가계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더라면 좋을 뻔했습니다. 외가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광산 김씨라는 것 정도입니다. 외할머니 성씨는 부끄럽게도 기억나질 않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셨던 같기도 한데 말이지요. 어디선가 들어본 말처럼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제삿상에 절 한번 드리지 못하고, 호적에 이름조차 올라가지 못했기에(전주 이씨 문중에서 여자들도 호적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다소 억울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만 있네요.

제가 이름을 바꾸고 나서 저의 명함을 받아든 사람들의 표정이 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다가도 명함을 받아든 순간 얼굴이 굳거나 당황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기자라고 불러야하나, 김 기자라고 불러야 하나?”라며 비꼬듯 말하는 분들에서 “호주제 철폐를 주장하나보죠?”라는 ‘사상검증성 질문을 하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사물을 대하는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저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게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아버지가 기분나쁘시겠어요.” 라며 돌아가신 제 아버지의 심기까지 헤아려주신 `자상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주위분들, 특히 남성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당신도 그거였어?!” 라는 말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그거’란 ‘좋은 부모 만나 고생 모르고 자라 대학 나온 후 좋은 직장 다니면서 여성주의입네하고 남자를 우습게 아는 여자’라는 뜻일 겁니다. 한마디로 ‘너 페미니스트지?’라는 뜻이죠. 하지만 부모의 성을 모두 쓰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들어준 분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부모성 같이쓰기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분들은 있었습니다.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사람들끼리 결혼하면 자녀들은 성이 네 개가 되냐. 그 다음 손자 세대에 가면 여덟 개가 되구?” “새 엄마를 맞으면 어떻게 되나” 는 진지한 물음에서 “피박, 방구, 임신처럼 웃기는 성이 나오면 어떻게 하냐”는 다소 비아냥거리는 비판까지. 하지만 이런 것들은 사소한 문제입니다. 부모성을 함께 쓰는 사람들이 결혼하면 부부의 합의에 따라 아이의 성을 결정한 뒤 아이가 성장하면 다시 의견을 물을 수 있을 겁니다. 새 엄마를 맞으면 또 그에 맞게 부모와 아이가 함께 머릴 맞대면 되겠지요. 아이의 성을 결정하는 문제를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얘기하거나, 아이에게 그 선택권을 주는 것 또한 인권의 차원에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조상이나 정체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겠구요.

실제 유럽 지역 대부분의 나라에선 법적으로 자식들은 부모의 성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중국도 2001년 개정된 혼인법에 따라 자녀들은 부모의 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정할 수 있게 됐죠. 영국과 이스라엘은 부부의 협의하에 부모의 성 가운데 하나를 자녀에게 부여할 수 있도록 했구요, 독일은 자녀가 태어나면 부부간에 합의하여 성을 부여하거나 혹은 후견재판소가 부모 한편에게 결정권을 주도록 한다지요. 스웨덴은 3개월 이내에 성에 대한 선택이 없으면 어머니 성을 따르도록 한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자녀에게 부모 모두의 성을 함께 쓰도록 하고 있구요.

부모성을 함께 쓰는 것 때문에 불거질 문제들보다 더 비합리적인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제국주의의 산물인 호주제입니다. 부모성 함께쓰기 운동의 시발점은 호주제 탓이 큽니다. 그렇다면 호주제는 무엇이 문제인가 봐야겠지요. 우선, 부부가 이혼해서 엄마가 아이를 키우더라도 친권은 남편이 가집니다. 엄마쪽 친권은 단지 양육권에 불과하지요. 이혼한 후 여자가 데리고 온 아이도 이혼한 남편 호적에 버젓이 올라있습니다. 여자가 일가창립을 하더라도 마찬가지지요.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아이의 호주는 전남편이고, 아이와 엄마는 단지 ‘동거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식이 부모의 이혼 등으로 인해 모계 성을 따르려면 그 아이는 ‘사생아’가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성을 어머니의 성으로 바꾸는 문제도 복잡합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아이의 사망신고를 낸 후 다시 입양절차를 거쳐야 하지요. 이 경우, 엄마와 아이는 ‘동거인’이 됩니다.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마음대로 바꾸어 부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하물며 작명가나 점술가를 동원할 정도로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모성 같이쓰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제 경우는 이렇습니다. 저는 저를 낳아준 부모님 두 분 모두를 평생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싶습니다. 이 사실을 가장 손쉽게 잊지 않고 지내는 방법이 두 분의 성을 함께 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부모성을 함께 쓰는 사람들의 이름을 놓고 놀리는 일은 그쳐주시길 부탁합니다. 열달 동안 저를 뱃속에 넣고 기르며 발가락이 볼록거리는 것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셨을 어머니, 그리고 갓난 저의 입에 젖꼭지를 밀어넣어주며 머리를 받쳐주었을 어머니, 서른해 가까이 길러주며 애간장을 태우셨을 어머니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모성을 함께 쓰고 싶은 겁니다. 당근 호주제가 폐지되기를 바라구요. 세상엔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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