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4-03   2060

<안국동窓> 친환경은 반경제인가

봄이 왔다. 하늘이 온통 뿌옇다. 중국에서 황사가 몰려온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봄은 꽃바람이 아닌 모래바람의 계절이 되었다. 갈수록 황사가 몰아치는 날짜가 늘어나고, 또 황사의 세기도 무서울 정도로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의 세기가 강해진다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공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중금속 황사’, ‘화학물질 황사’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공해물질들로 중무장한 이 황사는 건축물과 자동차를 갉아먹는다. 그러니 우리의 몸은 어떻겠는가? 피부도 폐도 견딜 수 없다. 올해부터 노약자들에게 황사 마스크를 나눠주기로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황사에 대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려야 할 것이다. 오존경보제와 같은 강력한 황사경보제를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황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발본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갈수록 무서워지는 황사를 보면서 우리가 생태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위험천만한 시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고 있는가? 환경문제니 생태위기니 하면서도 실은 남의 집 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환경문제니 생태위기니 하는 것에 신경쓸 겨를이 어디 있냐고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서 아토피로 대표되는 각종 환경 관련 질병에 시달리며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2005년 1월 27일, 세계경제포럼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 146개국을 대상으로 ‘환경지속성지수’(ESI)를 발표했다. 여기서 꼴찌는 북한이 차지했으며, 한국은 무려 122위를 차지했다. 부끄러운 것을 떠나서 우리가 끔찍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이런 식으로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2006년 1월 25일, 세계경제포럼은 역시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 133개국을 대상으로 새롭게 ‘환경성과지수’(EPI)를 발표했다. 여기서 한국은 42위를 차지했다. 두 지수의 차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 일부 언론에서는 불과 1년만에 122위에서 42위로 개선되었다고 보도했으나 이것은 쉽게 말해서 ‘무지와 태만에 의한 오보’에 가깝다.

물론 세계를 대상으로 한 이런 조사가 사실을 꼭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컨대 대기질, 수질, 에너지 소비량, 쓰레기 배출량, 자동차 이용량,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의 여러 지표들은 한국의 반환경적 상태를 여실히 증명해준다. 환경오염과 환경정책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상대는 적어도 30개의 OECD 회원국 안에 있지 않으며 중국이나 인도처럼 노골적으로 환경을 훼손하고 고도성장을 추구하는 나라들 안에 있다는 것이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이미 잘 밝혀졌다.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의 ‘선진국’이지만, 한국 환경은 세계 100위권에 머물고 있는 ‘후진국’인 것이다.

20세기의 경제는 일방적 착취와 공생적 복지의 대립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당연히 일방적 착취경제가 후진적인 것이고, 공생적 복지경제가 선진적인 것이었다. 21세기의 경제는 반환경적 착취와 친환경적 복지의 대립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이제 ‘생태복지사회’가 아닌 ‘선진국’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정책은 이 거시적 목표를 기준으로 정립되어야 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역시 이 목표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안전하고 편리하고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재계의 행태를 보면, 이러한 ‘선진국’의 꿈은 여전히 멀기만 한 것 같다. 그들이 그토록 ‘존경’해 마지 않는 세계경제의 지도자들이 매년 스위스의 다보스에 모여 한국의 끔찍한 환경상태를 비난하고 조롱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환경을 파괴해서 돈을 벌겠다고 눈이 벌겋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환경을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유럽과 미국은, 그리고 일본은 이미 오래 전에 거대한 쓰레기통이 되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왜 유럽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가?

진정한 문제는 반환경 경제와 친환경 경제 사이에 놓여 있다. 노동과 자연에 대한 ‘이중의 착취’를 통해 부를 쌓은 ‘반환경 경제 세력’이 여전히 이 사회의 지배세력이라는 데에 해답이 있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을 시작했다. 이 땅의 ‘반환경 경제 세력’도 이 전환을 되돌릴 수 없다. 친환경 경제는 우리의 생활조건과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경제성장과 고용증대를 가져오는 반면 의료비 등의 생활비를 대폭 줄일 것이다. 예컨대 새만금이라는 천혜의 자연을 파괴하는 데에 들어가는 돈을 친환경 경제에 쓴다면, 국민소득은 똑같은 양만큼 늘어나면서 새만금을 지키고 아토피도 없애고 고용은 10배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

재계의 악의적 선전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은 반경제가 아니다. 오히려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에 비추어 보자면, 반환경이야말로 이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가는 반경제이다. 반환경은 반경제다! 동북아의 환경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한 연구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북한의 생산오염과 남한의 소비오염은 이미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서둘러 친환경 경제로 옮아가야 한다. 동북아의 생태적 전환은 물론이고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이끌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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