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10-25   2120

<안국동窓> 한미FTA, 버스 노선 말고 협상안을 바꿔라

한미FTA 제4차 협상이 지난 22일(월)부터 오는 27일(금)까지 제주도 중문관광단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어처구니가 없게도 중문단지를 지나거나 경유하는 버스 노선을 임의적으로 변경해 버렸다. 경찰은 협상장으로 가는 모든 도로를 봉쇄해버려 계엄사태를 방불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협상기간 동안 협상장 앞은 물론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할 수도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한미FTA 협상이 국민들에게 공개하지도 못할 정도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권오규 부총리는 이번 4차 협상에서 “(농산물, 자동차, 의약품, 지적재산권 등) 핵심 쟁점을 제외한 이견 사항들의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5차 협상부터 핵심쟁점 타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른바 ‘가지치기’ 작업을 작업을 통해 5차 협상부터는 핵심 쟁점 타결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한국 측이 핵심 관철과제로 삼고 있는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반덤핑 등 무역구제, 전문직 비자쿼터’ 등에 대해 미국 측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고 일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받은 신속협상권(TPA)이 만료되기 6개월 전 법령개정이 필요한 부분을 의회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올 12월 초 미국에서 열릴 5차 협상이 사실상 마지막 협상이 된다. 그러므로 정부가 4차 협상 전략으로 내세운 ‘가지치기‘ 작업은 실제로는 나무를 뿌리째 뽑아 죽이는 결과를 빚어낼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협상태도는 “한미FTA 협상의 마지노선도 정해놓지 않고, 북 핵실험으로 초래된 한미 안보동맹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미국 측의 요구를 4차~5차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수용하여 한미FTA 협상을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정부가 지난 1차~3차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비판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의 식탁안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위생검역 분야만 보더라도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4대 선결조건으로 내줘

한미FTA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부는 광우병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재개를 ‘4대 선결조건’ 중의 하나로 승인해줬다. 정부는 30개월 이하에서도 광우병 발생했고, 근육에서도 광우병 원인물질이 발견되었다는 연구 보고가 나오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는 안전하다”는 케케묵은 타령을 되풀이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1차 협상에서 위생검역(SPS) 분야의 이견이 커서 통합협정문 작성에 실패했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2차 협상 이후에는 협의 채널 구성 외에는 이견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심지어 3차 협상 전후부터는 “위생검역분야는 과학적기술적 분야이므로 미국이 요구하는 위생검역 상설위원회나 한국이 주장하는 담당공무원을 지정하는 접촉창구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얘기까지 흘리고 있다.

30개월 미만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사례는 영국에서 84건, EU에서 20건, 일본에서 2건 등 확인된 것만 하더라도 최소한 100건이 넘는다. 광우병 발생국인 일본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바로 이러한 사례를 근거로 20개월 미만을 수입조건으로 관철시켰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2월 22일 국제수역사무국(OIE)에 보낸 공식문서에서 살코기에도 광우병 위험물질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광우병의 임상증상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 몇몇 말초신경조직으로부터 검출된 사례가 2건이나 있으며, 광우병 감염 소의 근육을 접종한 10마리의 쥐 중에서 1마리에서 광우병 병원체가 축적된 것이 확인되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광우병 발생국가 중에서 한국에 유일하게 쇠고기를 수출하게 된 미국의 타이슨 푸드ㆍ카길 등 대규모 식육가공 독점기업들은 ‘뼈를 발라낸 살코기’만을 수입하기로 한 한미정부의 수입위생조건을 더욱 더 완화해줄 것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선적을 보류하고 있다.

이들 타이슨 푸드ㆍ카길 등 초국적 독점기업의 요구를 대변하는 미국 농무부는 지난 9월 25일 한국 농림부에 공문을 보내와 “뼛조각들이 검역 과정에서 설사 발견되더라도 수입을 승인해 달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미 FTA 4대 선결조건 중 하나였던 쇠고기 수입재개가 아직 미해결 상태이므로 미국 측은 한미 FTA 4차 협상에서 별도의 ‘동물검역 전문가 기술 협의’ 요구를 더욱 공세적으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한미 정부는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동물검역 한미 전문가 협의’를 할 예정이다.

미국, GM 농산물 등 위생검역 현안 관련 구체적 압력 행사

미국은 한미FTA 협상에서 위생검역조치에 대한 여러 가지 위생검역 현안에 관해 구체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유전자조작(GM) 농산물의 비의도적 혼입율을 현행 3%에서 5%로 상향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유전자조작 식품(GMO) 표시제를 철폐하거나 요건을 완화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위해성 심사 결과 승인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일반 농산물과 동등하다”는 해괴한 ‘동종 상품의 정의’를 한국이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유기농 농산물로 둔갑하여 우리 식탁으로 오르게 된다.

어디 그 뿐인가. 미국은 자국의 ‘국립 유기농 프로그램(NOP)’ 인증 프로그램을 한국이 수용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한국 식약청은 지난 2005년 3월에 “유전자조작 등 바이오테크놀리지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가공식품에 대해서만 유기농 라벨을 달아주는 기존의 라벨링 제도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그래서 미국은 한미FTA에서 이를 가능한 빨리 시행하도록 촉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미국은 특정 주에서 광우병과 같은 가축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특정 주를 제외한 다른 주의 쇠고기 수입을 금지할 수 없도록 새로운 ‘지역화 요건’을 수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가축의 ‘원산지 규정’도 사육국 기준이 아니라 도축국 기준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멕시코산 소가 미국에서 90일 이상 사육된 다음에 미국에서 도축될 경우, 원산지를 멕시코가 아니라 미국으로 표시하도록 바뀌었다. 아직까지는 광우병 발생으로 수입이 금지된 캐나다산 소가 미국에서 도축되었을 경우라도 수입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이 요구하는 원산지 규정을 수용할 경우, 광우병으로 수입이 금지된 캐나다산 쇠고기가 미국산으로 둔갑하여 우리 식탁으로 올라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지역화 요건 변경은 미국의 주도적인 요구로 내년 3월 WTO 위생검역(SPS)위원회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미국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대 농약잔류량 제한 검사를 대폭 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기능성 건강보조식품의 규제를 완화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표준 및 적합성 평가 절차도 간소화하여 미국 FDA가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승인하는 물질(GRAS)을 한국이 자동적으로 인정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식탁안전, ‘사전예방 원칙, 지역 먹을거리, 식품 운반거리’ 도입해야

현재 정부의 태도로 미루어볼 때, 아마도 정부는 미국의 이러한 요구를 모조리 들어줄 태세인 것 같다. 정부는 한미FTA 협상에서 구체적인 위생검역 현안 문제는 논의하지 않기로 했다고 주장하며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정부가 왜 미국의 위생검역 현안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한미FTA 협상과 별도로 ‘한미 동물검역 전문가 기술 협의’, ‘한미 식물검역 전문가 기술 협의’, ‘한미 생명공학분야 전문가 기술 협의’를 하기로 했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

미국 측의 요구로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미 동물검역 전문가 기술 협의’와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안양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미 식물검역 전문가 기술 협의’, 그리고 11월 초에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미 생명공학분야 전문가 기술 협의’가 정말로 한미FTA와 무관하단 말인가?

EU와 일본 등의 나라들은 국민의 건강과 식품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사전예방의 원칙’을 위생검역의 기본 원칙으로 적용하고 있다. 사전예방의 원칙으로도 카길ㆍ몬산토 등 세계의 식량을 지배하는 식량 독점기업의 횡포를 막아내기 힘들어지자 국민의 건강과 식품안전, 그리고 환경ㆍ생태보전을 지켜내기 위해 ‘지역 먹을거리(local food)’와 ‘식품 운반거리(food mileage)’라는 개념까지 도입하고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가 운반거리가 제일 짧아 농약이나 방부제 등을 가장 적게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엄청난 세금을 낭비하여 한미FTA만 성사되면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과 경제동맹을 강화해 금방이라도 선진국이 될 것 같은 장밋빛 환상을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홍보하기에 앞서 최소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라도 지켜주길 바란다. 진정으로 정부가 바꾸어야 할 것은 한미FTA 협상장으로 가는 버스노선이 아니라 모든 것을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한 굴욕적인 협상안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박상표 (수의사,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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