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3-07-25   995

<경제포커스> 탈세한 사람만 세무조사를 받고 탈세한 만큼 세금을 내면 되는 거 아냐?

과학적이고 공정한 세무조사를 위하여

세상이 세무조사에 대해 내게 가르쳐 준 것

10대에는 TV에서 “세무조사”라는 말을 듣고 저는 그게 정부에서 뜻하는 바를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게 하는 만능 정책 집행 도구인 줄 알았어요. 자식들에게 고액 불법 과외를 시키는 사람은 명단을 입수해서 세무조사를 한다고 하기도 하고, 중소기업 진흥을 위해 6개월간 세무조사를 중지한다고 하기도 하고요. 어른들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들어보면 정치자금 기부 액수에 따라 세무조사를 했느니 말았느니 하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어떻게 한 가지 방법으로 불법과외도 막고, 중소기업 진흥도 하고, 정치자금 모금도 할 수 있는걸까 신기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른들에게 물어봤어요. 세무조사가 뭐냐고. 그랬더니 세무서 직원들이 사업체에 한 달씩 나와서 온갖 장부를 다 뒤진 후에 엄청난 세금을 매기는 “무서운” 거라고 하더군요. 세무조사를 받는 동안에는 정상적으로 사업을 할 수도 없다고요. 들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참 이상한 이야기였어요.

사회책에는 모든 국민이 납세 의무가 있고 모든 세금은 정해진 시기에 부과된 만큼, 혹은 정직하게 신고한 만큼 내는 거라고 쓰여 있는데 누구든 세무조사를 당하면 그렇게 추가로 돈을 내야 한다니, 그럼 다들 평소에 신고납부를 제대로 안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다들 신고납부를 제대로 안 한다면 왜 몇몇 사람만 세무조사를 받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불법 과외 같은 것은 해당 법에 따라 벌칙을 매기고, 세금은 과외를 하든 안 하든 소득과 재산에 따라 정해진 만큼 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세무조사는 탈세를 방지하고 공평과세를 실현하기 위한 것

회계사가 된 지금에 와서도 세무조사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느껴지곤 합니다. 저도 그런데 다른 분들이 세무조사가 투명하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시기는 어려울 것 테지요. 재작년에 언론사 세무조사를 할 때에도 논란이 많았는데 전 그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세무조사 자체에 대한 불신에 있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언론사든 언론사가 아니든, 대통령과 관계가 어떻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조사대상자로 선정된 납세의무자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조사결과에 따라 과거에 덜 낸 세금이 있으면 내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지금의 세무조사가 탈세를 방지하고 공평과세를 실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실행된다는 걸 시민들이 못 믿으니까 무슨 세무조사가 이슈가 될 때마다 음모론이 성행하는 거잖아요.

납세자도 원하는 세무조사 강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대상자 선정기준을 마련하라

사실 작년의 어느 설문조사에 따르면 납세자의 55%가 세무조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답변했다는군요. 한편으로는 세무조사를 믿지 못하는 시민들이 왜 그런 답변을 했을까요? 우리의 납세자들은 한국의 탈세 규모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요? 탈세 자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내기 어렵지만, 한국 조세연구원이 인용한 최근의 외국문헌에 의하면 OECD 가입국가 중 일본과 미국의 경우에는 지하경제 규모가 GDP 대비 8~10% 수준이고, 프랑스, 네델란드, 독일, 영국의 경우에는 13~23% 수준인 반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약 38~50% 수준으로 필리핀, 스리랑카와 같은 그룹에 속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는군요. 그다지 기분좋은 통계는 아니죠. 하지만 이 수치가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우리의 지하경제 규모 및 그 이면의 탈세수준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데는 대체로 동의들 하실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의 세무조사 대상자 비율은 낮은 수준이예요. 한국조세연구원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97~99년간 종합소득세 납세자들에 대한 세무조사 대상자 비율은 전체납세자의 0.24~0.27% 수준이고 법인세의 경우에는 99년 조사대상비율이 전체 법인의 2.36% 수준이랍니다. 미국에선 개인소득세의 경우 0.99%, 법인세의 경우 2.09%라는데, 개인소득세의 경우에는 무려 4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거예요. 지하경제 규모라든가 여타 지표로 볼 때 탈세가 더 많은 우리나라에서 세무조사는 훨씬 적게 한다…. 뭔가 좀 이상하죠? 게다가 미국에선 소득종류와 소득수준별로 서로 다른 세무조사 선정 비율을 보이고 있어요. 소득이 높을수록 조사를 더 많이 하고, 근로소득자보다는 사업소득자에 대해 조사를 더 많이 해요. 아무래도 봉급생활자들보다는 사업소득자가, 소득이 적은 사람보다는 많은 사람이 탈세를 한다면 더 많이 할 테니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나 지금처럼 세무조사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 무조건 건수만 늘린다고 탈세가 줄어들진 않을 겁니요. 오히려 다들 자기가 재수없어서 조사를 받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납세자의 신고자료를 업종별, 지역별로 데이터베이스화 해서 다양한 항목으로 개별 납세자의 성실도를 검증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세무조사 대상자를 선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세청은 말로만 근거자료에 따라 조사대상자를 선정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세무조사의 결과를 공개하여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근거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것이었음을 시민에게 검증받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소득계층별, 지역별, 업종별로 조사 건수와 추징액, 탈세유형 등이 공개가 되면 시민들은 대상자가 제대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지요.

탈세가 만연한 것은 과연 민도가 낮아서일까?

잘못된 조세 행정의 결과일까?

국세청에서는 흔히 우리나라에 탈세가 만연한 것은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낮아서라고, 그래서 그 수준에 맞추어 세무조사를 많이 하느라 인력도 부족하고 어려움이 많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의 조세행정을 살펴보면 거기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인이나 사업소득이 있는 개인은 법인세나 소득세를 신고하도록 되어 있어요. 자기가 번 만큼 신고하고 그에 따라 납부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실제로 사업체 경영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세청에서 지역별로 거두어들여야할 세금을 책정한 후, 각 지방청에 액수를 나누어 주고, 지방청에선 또 일선세무서에 액수를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세무서에선 법인세나 종합소득세 신고 한 달 전쯤 업체에 전화를 해서 세금을 얼마 낼 거냐고 물어보고 얼마는 내야 한다든가 하고 일종의 협상을 하곤 했다는 거예요. 법에는 정직하게 신고하고 그에 따라 세금을 내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상은 일종의 부과과세 비슷한 것을 해 온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 신고서는 세무서에 내기로 약속한 세액에 맞추어서 대강 작성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식의 세금 부과가 법에 의해 보호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세무서와 “이야기가 된 만큼” 냈다고 해서 세무조사시에 세금을 안 내도 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세무조사 때에도 국세청이나 지방청에서 일선세무서에 걷어야 할 세금을 대략 정해주기 때문에 세무서에서는 탈세한 사람들이 탈세한 만큼 세금을 걷어가겠다는 생각으로 임한다기보다는 지방청이나 국세청에서 부과된 액수만큼 적발이 될 때까지 세무조사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다 보니 법인이나 개인사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세금은 신고시에도 내라는 만큼 내고 세무조사 시에도 조사관과 “협의한 만큼” 내게 되는 것이므로 법에 따라 세금을 잘 낼 필요가 없어지지요. 이렇게 해서 많은 수의 법인과 개인사업자가 탈세자가 되어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법에 따라 신고하도록 하고 탈세한 사람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세금을 걷으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누적된 것이지요.

국세청 입장에서는 과거 수십년간 그렇게 하지 않고 제대로 세금을 걷을 수가 있었겠느냐든가,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다든가 항변을 할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국세청이 사람들로 하여금 탈세자가 되도록 부추긴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식의 행정이 과거에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시민들도 국세청의 행정, 특히 세무조사를 못 미더워 하는 것이고요. 조사대상자 선정기준과 세무조사의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 한 시민들의 불신은 해소되기 힘들 거예요.

세무조사의 법제화

범칙조사를 강화하되 일반 세무조사 대상자의 권익을 보호하라!

세법에서는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포탈”한 자를 조세포탈범으로 규정하여 이에 대해서는 조세범칙조사를 실시하고 형사처벌하도록 되어 있답니다. 그러나 조세당국의 입장에서는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도 어렵고 사법당국과 공조를 하려면 번거롭기도 하니까 범칙조사는 거의 실시하지 않고 특별조사라는 것을 실시하죠. 고의적이고 지능적인 조세포탈범과 일반납세자를 제대로 구별하지 않고 그냥 양쪽 다에 대해 특별조사를 실시해서 장기에 걸쳐 광범위한 자료조사를 실시하는 거예요.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2000년의 경우 6,507명의 음성ㆍ탈루 소득자에 대해 무려 3조 4,730억원이 추징되었는데 실제 형사처벌된 사례는 극히 미미합니다. 하지만 고의적이고 지능적인 조세포탈범에 대해서는 선진국에서처럼 형사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그 대신 일반적인 납세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할 때는 선정기준을 밝히고 미리 조사범위를 알려주어 탈세가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조사를 실시하고 조사결과에 대해 납세자에게 항변권을 주어 국세청이 입증책임을 지도록 세무조사에 대해 법에 자세히 명시가 되어 있어야지요. 지금처럼 법에는 “직무상 필요할 때”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간략히 규정해 놓고, 국세청 내규로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세무조사만으로 탈세를 억제할 수는 없어

과세인프라 확대 계속되어야

세무조사가 탈세를 막는 만능 도구는 아니죠. 조사원을 현장에 파견해서 조사를 실시하는 일은 시간과 인력, 예산이 많이 드는 일이기도 하고요. 세무조사 이전에 소득을 성실하게 신고하도록 유도하는 과세인프라가 확충된다면 세무조사 건수를 줄이고도 보다 효율적으로 탈세를 막을 수 있을 거예요.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로 음식료업과 숙박업 등은 실제로 벌어들이는 소득의 대부분을 국세청에 신고하게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병ㆍ의원(한의원 포함), 학원 또는 변호사ㆍ회계사 사무실에선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곳이 허다하고, 또 이름난 병원, 학원, 변호사ㆍ회계사의 경우 고객이 아쉬워서 찾아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용카드 사용을 고집하기도 어렵지요. 그만큼 이들 업종에서 소득이 제대로 신고되지 않을 가능성은 늘어나는 것이고요. 영수증 제도를 보완해서 이런 업종에 대해 세무상 인정되는 영수증 양식을 보급한다면 일일이 세무조사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세수를 확보하고, 조세형평성을 향상시키며, 세무조사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겠지요.

저도 주변에서 세금을 제대로 신고하는 것은 바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다들 탈세에 대해 무감각한 사회에선, 월급을 받는 만큼 고스란히 근로소득세가 공제되는 봉급생활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각할 수 밖에 없죠. 그런 사회에서 정치자금 모금 액수에 따라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든가, 경기부양을 위해 세무조사를 연기한다든가, 특정 시기에 세수가 부족하다고 세무조사 강도를 높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자의적으로 세무조사제도를 운용한다면 세무조사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하락할 것입니다. 저는 세무조사가 탈세를 억제하고 납세의식을 제고하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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