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3-08-01   496

<경제포커스> 차명거래를 차단해야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제대로 된다

금융소득에도 누진세율 적용해야

후배의 기습

“누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기준에 의해 과세를 해야 한다는 건 알겠어요. 근데 왜 소득이 더 많다고 해서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아야 하는 거지?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나 능력을 키우거나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 돈을 버는 거잖아. 남 사기 쳐서 생긴 소득인지 감시하는 건 별도로 하면 되는 거고 말야. 능력 있고 노력 많이 한 사람이 돈 많이 벌어 재산을 늘리는 건 당연한 거 아냐? 그 사람들이 자기 재산을 금융기관에 예치하거나 주식에 투자해서 이자배당소득이 생기는 건데 거기다 또 누진세를 적용하다니 그럴 필요가 있어? 그 사람들이 예금한 돈과 주식에 투자한 돈이 설비투자 등에 사용되기도 하는 거잖아. 그런 긍정적인 면을 인정한다면 왜 누진세 제도를 고수하는 거지?”

“이야, 이거 주말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내려고 했는데 오랜만에 학교 놀러 와서도 후배한테 걸려서 세금 이야기를 하게 생겼네. …… 하지만 좋은 질문이야. 한 번 생각해 보자고. 예를 들어 모든 사람에게 20% 단일세율이 적용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한 달에 100만원 버는 사람은 20만원을 세금으로 내고 한 달에 2,000만원 버는 사람은 400만원을 내야겠지? 100만원 벌어서 20만원 내고 나면 80만원 갖고 살아야 하잖아? 그 사람이 20만원 더 쓸 수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굉장히 클 거야. 하지만 2,000만원 번 사람은 아마도 그 돈을 다 생활비로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닐 거야, 그렇지? 그러니 400만원을 세금으로 내느냐 안 내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 정도도 월 수입 100만원인 사람에게 20만원이 미치는 영향에 비해 훨씬 적을 거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세율이 적용되면 언뜻 공평할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세금으로 인해 받는 타격이 훨씬 커진다구.

세금을 걷어서 결국 어디에 사용하는가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국가예산의 상당부분이 조세수입을 기반으로 편성되잖아. 세금을 걷어서 경제정책 집행에 필요한 자금으로도 사용하고, 교육 예산으로도 사용하고, 국방비로도 쓰고, 공무원 월급도 주고 하잖아. 세금이란 국가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사회에 대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 되는 거야. 남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은 교육을 많이 받았다든가, 특별한 기술이 있다든가, 우량한 사업체를 가지고 있다든가 해서 사회가 주는 혜택을 더 많이 받아온 사람들이지. 누진세 제도는 상대적으로 사회체제의 혜택을 더 많이 받는 사람들이 사회체제의 유지에 드는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어.

그리고 그렇게 걷힌 세금은 교육 예산이나 복지 예산으로도 쓰이지? 교육이나 복지 예산은 특별히 물려 받은 게 없는 사람도 자기 능력을 키우고 안정적으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갖도록 도와주는 데 사용되는 거지? ‘기회균등의 원칙’이라는 말이 다 이거랑 관련된 거야. 세금은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기능도 일부 가지고 있는 거야.

세금을 돈 잘 버는 사람에 대한 벌칙으로 생각하면 곤란해. 세금은 소득 일부를 ‘몰수’하는 게 아니야. 일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으려고 존재하는 것도 아냐. 정당한 국가예산 집행과 공공서비스 제공을 위해, 일관된 기준에 의해, 소득의 일부를 거두어 가는 거지.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잘 벌어서 법에 따라 세금을 잘 내는 것도 어떻게 보면 사회에 대한 기여야. 탈세까지 해 가며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을 보고 돈 많다고 우러러 보는 건 웃기는 거야. 정해진 세금만큼이라도 자기가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이 존경받아야 해. 그런 사람이 시민 일반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니까.”

금융소득종합과세는 누진세 제도의 필수불가결한 일부

나른한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마주친 후배가 이렇게 진지한 질문을 해 올 줄이야. 나무 그늘 아래에서 커피를 한 잔 들고 앉아 있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주말엔 거의 쓰지 않던 머리를 다시 가동시켜서는 진땀을 빼며 답을 했지요. 하지만 답을 하는 과정에서 저도 누진세 제도와 조세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되었답니다.

모든 국민은 소득과 재산에 대해 법에 정한 바에 따라 납세 의무를 집니다. 그리고 소득세는 누진세율에 의해 산정되지요. 세금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이 더 크고 사회질서 유지의 혜택을 더 많이 받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됩니다.

그렇게 거두어 들인 세금으로 시민 일반에게 교육과 복지를 포함하는 각종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며, 그렇게 해서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도 교육이나 소득 창출의 기회가 어느 정도 주어집니다. 그걸 가리켜 ‘조세가 소득재분배를 통한 사회통합 기능을 가진다.’고 하는 것이죠.

이런 측면에서 누진세 제도는 특히나 이자나 배당 같은 금융소득에 대해 더욱 철저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근로소득이 땀 흘려 번 돈이라면 이자나 배당소득은 이미 가진 돈을 어딘가에 투자했기 때문에 생기는 돈이 아닌가요? 가지고 있는 재산에 저절로 붙는 소득이니까요.

현재 소득세법은 이자와 배당을 합산해서 1인 당 연간 4,000만원이 넘지 않는 사람의 경우 금융소득에 대해 16.5%의 소득세(소득할 주민세 포함)만을 부담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자배당소득이 연간 4,000만원이 넘는 경우에만 다른 소득과 합산해서 누진세율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어요.

예금 이자율이 4%라고 가정하면 1년에 이자만 4,000만원 버는 사람은 예금액이 10억원이 되는 사람입니다. 예금만 10억원이 될 정도면 당연히 집을 한 채 이상 가지고 있을 것이고 주택 외에 부동산 등 다른 자산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죠. 그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물려 받은 것이 많거나 사업소득ㆍ근로소득 등이 상당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벌어놓은 걸 가지고 지금은 그냥 이자나 배당만으로도 먹고 살 만한 사람이죠. 근로소득의 경우 연봉이 3,000만원만 넘어도 한계세율이 19.8%(주민세 포함)로 올라가는데 금융소득은 1년에 4,000만원이 넘어야 다른 자산과 합산해서 누진세율을 적용하다니 이상한 일이지요.

예전에는 부부합산과세라고 해서 부부 두 사람이 1년간 벌어들인 이자배당이 4,000만원이 넘으면 다른 소득과 합해서 누진세율을 적용했답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부부의 경우에도 각자에 대해 따로 과세를 해야 한다고 판결이 나온 후에는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적용받는 사람이 엄청나게 줄어들었어요.

예전에는 부부 둘이 합해서 금융소득이 연 4,000만원이 넘으면 종합과세가 되었는데 이제는 한 사람당 연 4,000만원이 넘어야 종합과세가 됩니다. 말하자면 둘이 합해서 8,000만원 이상의 이자 배당을 벌어들여야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거지요. 이자율이 4%일 경우 부부 두 사람이 이자 8,000만원 벌려면 원금이 20억이나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근로소득 등 다른 소득과 비교하면 정말 형평에 안 맞죠?

지난 7월 1일 재경부에서는 현 대통령의 임기 내에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기준금액을 다시 낮추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예요. 모든 금융소득을 다 종합과세 대상으로 삼아 거기에 누진세율을 다른 적용하지는 못하더라도 1인 당 금융소득이 2,000만원 이상인 경우에는 당연히 적용해야지요. 그래야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예전수준으로 이루어지지 않겠어요?

차명거래는 누진세 제도를 무력화시키고 조세정의를 훼손하는 것

그런데… 답답한 것은, 금융소득종합과세의 기준금액을 2,000만원으로 고쳐서 예전과 같은 수준으로 누진세율을 적용한다고 해서 금융소득에 대한 조세정의가 온전히 실현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난 5월 12일에 예금보험공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실경영으로 영업 정지된 김천상호저축은행에는 차명으로 예치된 예금이 80억원이나 되었답니다. 김천상호저축은행에 예치된 예금 총액 775억원의 10%가 넘는 액수입니다. 이게 어디 그 금고만의 문제겠어요? 금고마다 남의 이름으로 예치된 예금이 엄청 많을 거예요.

남의 이름을 빌려서 예금을 해서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피해 나가는 경우가 그만큼 많은 거지요. 차명거래는 종합과세 회피목적 외에도 상속ㆍ증여세 회피, 돈세탁이나 주가조작 등 범죄행위의 증거 은폐 등에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금융실명제법은 모든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금융거래를 하도록 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작정을 하고 이름을 빌려주고 빌려받는 사람들을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한답니다. 하지만 다들 남의 이름을 빌려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제대로 세금을 안 낸다면 금융소득종합과세나 누진세 제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현재 정부에서는 기준을 정해서 고액현금거래의 경우 그 내용을 국세청에 통보하도록 하고 국세청이 금융기관에 특정인의 금융정보를 일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 중입니다. 이런 조치가 적절하게 입법화되어서 일반인들의 금융정보는 제대로 보호되도록 하는 한편 탈세나 여타 범죄와 관련된 자금에 대해 차명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세무조사도 차명거래 방지에 활용되었으면 좋겠어요. 차명거래 혐의가 짙은 법인이나 개인에 대해서는 그 사유와 범위, 그 소득원천을 적극적으로 따져야지요. 그리고 차명거래는 ‘사기ㆍ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한 것이므로 적발시에는 조세범처벌법을 적용해야지요.

저는 법에 명시된 누진세 제도가 세액 신고와 납부의 전 과정에 걸쳐서 일관성 있게 적용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자나 배당을 실제로 벌어들이는 사람이 벌어들이는 만큼 누진세율을 적용 받았으면 좋겠어요. 누진세 제도의 취지가 진정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토요일 오후 갑자기 제게 질문을 던졌던 후배도 조세형평성의 의의를 논리 뿐 아니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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