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3-08-08   594

<경제포커스> 양길승 실장과 접대문화

과다한 접대비는 부정부패의 온상이며 기업경쟁력 저하요인

청와대 제1부속실장 양길승씨의 사표가 수리되었습니다. 청주 어느 나이트클럽의 주인이 불러다가 비싼 술을 대접하고 선물을 안겼다지요. 자기가 탈세ㆍ윤락행위방지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고 있으니 처벌을 받지 않도록 도와달라 부탁을 했다지요.

신문을 뒤적이고 있노라면 아직도 한편에선 ‘몰카’를 누가 찍었을까 궁금증을 부추기고, 양길승씨가 호텔방에 찾아온 여자를 돌려보냈느니 어쩌니 수근거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양씨가 받은 베개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가르쳐 주는 글도 나돌고 있습니다. 그런 글을 읽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납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런 게 아니지요. 300만원 상당의 향응과 선물을 받은 것은 공직자 행동 강령의 위반이고, 양실장은 강령에 따라 파면과 같은 중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양실장의 사표를 수리하고는 수사 무마 청탁에 대한 검찰의 추가 수사에 대해서는 어중간한 입장을 취한 채 사건이 마무리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 합니다.

청와대가 아직도 공무원 행동강령이 ‘비현실적’이니 어쩌니 하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저는 일단은 짜증이 납니다. 그러다가는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청와대에서 어떻게 저런 식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인가 하고요. 혹 청와대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질펀한 접대문화’가 만연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저러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제가 다니는 회사 앞에도 점심 시간이면 “XX 마마” 등의 룸살롱 판촉사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커피나 라이터를 나누어주곤 합니다. 그 앞을 지나칠 때면 다시 한 번 그 ‘질펀한 접대문화’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요. 양길승 실장의 문제는 일차적으로는 공직자 윤리와 고위층 부정부패의 문제입니다만, 크게 보면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비윤리적인 고비용 접대문화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접대문화는 정치권과 공직사회 뿐 아니라 우리의 기업들을 좀먹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과다한 업무무관 접대비는 기업경쟁력 저하요인

이용섭 국세청장이 KBS1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해 국내 기업의 접대비용은 총 4조 7천억원이라고 합니다. 이는 지난 99년의 2조 7천억원보다 74.1% 증가한 것으로 이 중 룸살롱과 골프장에 쓰인 접대비만 1조 8천 330억원이랍니다. 참으로 엄청난 액수이지요.

경영자들은 법인세 부담이 높아서 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들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실제로 룸살롱과 골프장 접대비만 지출하지 않더라도 평균적으로 2% 가량의 법인세가 절감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합니다.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접대문화가, 그리고 그러한 접대로 인한 비용부담이, 그만큼 기업경영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6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대상기업 181개사 중 절반 이상의 업체가 골프장과 룸살롱에서의 접대행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취지에 동의했습니다. 그만큼 접대로 인한 비용부담이 기업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나라 기업의 84%가 접대를 하지 않으면 매출이 위축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접대는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과도 아무 상관이 없고,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관공서나 유관기관, 혹은 수요처의 구매담당자에게 접대를 잘 하면 당장은 매출이 늘어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품질이나 제품 이미지 개선, 또는 경영합리화에 지출되었어야 할 비용이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기업경쟁력은 저하되는 것입니다.

접대를 덜 하고 제품 품질 개선과 경영합리화에 힘쓴 업체가 경쟁에서 불이익을 보게 되니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도 손실입니다. 이러한 경쟁력 저하는 비슷한 접대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국내기업간의 경쟁에서보다 국제무대에서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겠지요.

과도한 접대비는 부정부패의 온상

자기 회사만 접대를 줄이고 불경기를 넘길 수 있을까 경영자들은 한편으로는 걱정하고 있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영자들도 사회 전체가 접대 없이도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바뀌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기업의 53%가 접대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부정부패방지 등 사회전반의 윤리의식이 제고되어야 한다고 응답했거든요. 기업들도 룸살롱에서의 음주가무와 업체가 부담하는 골프 접대가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예요.

세법상 접대비는 사회통념상 업무와 직접 관계있는 자에게 금전 또는 물품을 기증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거래처 관계자와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판촉활동을 하거나 판매와 관련해서 거래처에 사은품을 제공한다면 그 정도는 사회통념상 접대비로 인정되겠지요.

하지만 한 팀당 백여만원을 들여서 주말에 골프를 치도록 하고, 하룻밤에 수백만원씩 들여서 여자들이 술시중에 잠자리 시중까지 드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각종 허가를 받아내기 위해, 혹은 경쟁자를 부당하게 따돌리기 위해 관공서나 거래처 담당자에게 현찰이나 선물을 안기는 건 접대가 아니죠. 뇌물이죠. 그리고 그런 식의 접대는 정상적인 거래나 계약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 때 종종 사용됩니다.

접대를 직접 담당하는 임직원들이야 접대하는 김에 자기도 술 마시고 골프 치니까 좋을 수도 있어요. 회사 돈이니까 아끼지 않아도 되고요. 접대라는 그럴듯한 명목도 있으니 좀 낭비하더라도 문책도 안 당할 것이고 자기 월급이 줄어들지도 않잖아요? 또 거래처에 선물 갖다 주면 때로는 저쪽에서도 밥이라도 살 지도 모르잖아요?

과도한 접대비 부담은 분식회계를 불러일으켜

인터넷 신문인 조세일보가 국세청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가장 세무조사에서 적출된 비율이 높은 항목이 접대비라고 합니다. 법인세 분야의 세무조사에서 세액의 16%가 ‘접대비’ 항목에서 나왔다는군요. 접대비를 판매장려금이나 계약비, 또는 복리후생비 등 일반관리비로 계상하기도 했다는군요. 접대비는 한도가 있어서 그 이상 지출하면 법인세 계산시에는 비용으로 보지 않거든요. 한도를 넘어서는 접대비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야 하거든요. 그러니 그걸 피하려고 접대비를 다른 비용 계정에 “숨겨놓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접대비 한도액과 지출액의 차이가 커지다 보면 나중에는 분식회계까지 하게 되기도 합니다. 가상의 인건비를 계상해서 그 금액을 비자금으로 모아 두었다가 쓰기도 하고 가상의 자산을 장부에다 기록해 놓고 그만큼의 자금을 빼돌리기도 합니다. 이런 거액 “접대자금”이 때로는 불법 정치자금이 되고 각종 인허가며 거래를 따 내기 위한 불법 로비자금으로 사용되기도 하지요.

국세청ㆍ세정혁신위원회의 접대비 제도 개선방안을 환영한다

접대문화는 바뀌지 않는데 우리 회사만 접대비 지출액을 줄여서 어떻게 살아남겠느냐는 말도 들립니다. 접대비 지출규모 축소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접대 문화가 바뀌고 전반적인 윤리의식이 제고되어야 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하지만 사회는 저절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세법은 접대비가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지출되는 비용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내용에 부합하는 비용만 접대비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비용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도 사회를 바꾸는 한 단초가 될 수 있겠지요.

국세청에서는 향락 유흥업소 등의 접대비, 골프장, 스포츠 클럽 등의 고액 접대비, 기업주ㆍ임원의 사적 경비(고급승용차ㆍ회원권 등)를 세금 계산상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세정혁신추진위원회는 건당 일정 금액 이상의 접대비를 지출할 경우 법인카드 사용내역서에 * 직원과 접대를 받은 사람의 이름과 직위, * 접대목적과 업무내용 * 접대장소를 기재해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많은 선진국이 접대비를 세무상 비용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판단할 때 요구하는 서류이기도 합니다.

사실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접대비를 세무상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 비용을 많이 지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해당 기업에도 이익이 되지 않고 국민 경제 전체에도 손실을 가져 옵니다. 그런 비용 지출에 대해 세금을 깎아 주는 것은 세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고 납세자 일반에게도 손해가 되는 일입니다.

저는 국세청과 세정혁신위원회가 내놓은 제도 개선안이 현재의 기업 접대문화를 개선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쌀집,” “꽃집,”으로 등록되어 있는 수많은 향락업소들에 대한 단속이며, 분식회계로 조성된 접대비(뇌물?)용 자금에 대해서도 단속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 업종과 상관없이 접대를 잘 해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는 사회는 정말 싫어요. 국세청이 자신들이 내놓은 방안을 끝까지 잘 고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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