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6-02   715

012세대와 345세대 ‘연금 갈등’

국민연금 개혁안이 우리 사회의 세대간 갈등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편의상 지금의 영유아와 10대, 20대를 ‘012세대’, 이미 노동시장에 진입하여 연금보험료를 납부하는 30~50대를 ‘345세대’, 그리고 은퇴했지만 연금을 못 받고 있는 60~80대를 ‘678세대’로 부르자.

연금액 축소를 주장하는 보건복지부의 개혁안은 345세대의 ‘높은’ 연금 수준을 보장하려면 012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것이 핵심 논리다. 실제로 오는 2070년까지 기금 고갈이 발생하지 않고 345세대에게 지금처럼 평생소득의 60%를 연금으로 주려면 012세대의 본인 부담 보험료는 단계적으로 올라 2030년부터 자기 소득의 10%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연금액을 50%로 내려도 약 8%를 부담해야 한다. 적게는 자기 소득의 1.5%(제도 시행 초기 기준), 많아도 6%(복지부 개혁안 기준)를 본인이 부담하고 50~60%의 연금을 받게 될 345세대에 비해 012세대의 부담은 큰 것이 사실이다.

한국 근대사 678세대의 불행한 삶

일부 학자들은 345세대에게 높은 연금을 주기 위해 012세대의 보험료를 막대하게 인상하는 것은 345세대의 ‘집단적 도둑질’ 혹은 갈취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리에 의하면 345세대는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012세대의 돈을 미리 ‘갈취’하여 연금을 타먹는 부도덕한 집단이다. 그럴 듯해 보이는 이 주장의 결론은 연금을 50%, 심지어는 40%로 낮추어 012세대가 갈취당하는 것을 막아야 하며 따라서 연금액을 축소하는 복지부의 개혁안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과연 국민연금이 012세대를 구조적으로 갈취하는 것인지, 국민연금의 세대간 ‘대차대조표’를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 근대사에서 678세대는 가장 불행하다. 1960~70년대에 ‘잘 살아보자’고 피땀을 흘렸건만 막상 노인이 된 이후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678세대는 그 이전 부모 세대의 부양을 책임졌고,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노후는 지금의 345세대들이 책임져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현재 대부분의 678세대는 안타깝게도 자식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

345세대는 678세대보다 불행하지는 않다. 하지만 345세대는 012세대에게 보험료 인상을 요구할 세 가지 정당한 이유가 있다.

첫째, 345세대에게는 역사적으로 독특한 ‘이중 부담’의 문제가 있다. 345세대는 노후를 준비하지 않은 678세대를 사적으로 부양해야 하고, 동시에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 등으로 자신의 노후도 준비해야 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평균 소득은 1백44만원인데 40대 남성이 4.5%의 연금 보험료를 내면 대략 6만5천원이다. 이 사람이 부모에게 매달 10만원을 보낸다면 이는 6.9%의 보험료에 해당한다. 결국 이 사람은 4.5%가 아닌 소득의 11.4%를 부담하는 것이다. 그러나 012세대는 자신들의 부모 세대인 345세대가 연금을 받게 되므로 이중 부담 없이 자신의 노후만 부담하면 된다. 따라서 345세대의 과중한 이중 부담을 012세대가 덜어줄 필요가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012세대의 보험료 인상은 정당한 것이다.

후세대 부담은 ‘역사적 부채’

둘째, 012세대는 345세대가 이룩한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기 때문에 보험료의 추가 부담이 정당하다. 345세대가 678세대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자동차를 굴리고, 때가 되면 휴가를 가고, 해외여행을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012세대는 345세대의 과실을 충분히 누릴 것이다. 지금의 10대, 20대는 345세대의 어린 시절에 비해 얼마나 풍족하게 살고 있는가!

셋째 이유는 현행 국민연금이 012세대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국민연금기금 1백조원 가운데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금이 무려 33조원에 달한다. 345세대의 보험료로 벌어들인 이 막대한 돈은 012세대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 수준을 상당히 낮춰준다.

앞으로 인상될 012세대의 보험료는 345세대의 갈취가 아니라 012세대가 노인 부양의 세대간 공평을 위해 짊어져야 할 ‘역사적 부채이자 의무’이다. 이미 1998년에 70%의 연금액을 60%로 낮춤으로써 012세대의 과도한 부담은 상당히 완화되었다. 연금액을 더 낮춰 012세대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복지부의 개혁안이 345세대의 부담을 가중시켜 오히려 세대간 불공평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 이 글은 경향신문 2003년 8월 20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김연명(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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