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5-12-12   632

<경제프리즘> GE와 삼성

이익단체 발간 보고서를 읽을때 주의해야할 몇가지 사항 2

8일 서울여대 이종욱 교수가 『GE 사례로 본 산업과 금융 결합의 새로운 추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전경련이 의뢰한 용역보고서이다. 그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산업자본인 GE가 헝거리 등 동구국가에서 Citi그룹에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은행업에 진출하고 있는데,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을 보유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많은 점에서 현실을 왜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GE는 90년대 이후 잭 웰치 회장의 리더십 아래 적극적인 사업구조 재편을 단행하였고, 그 결과 발전설비, 우주항공 등 전통적인 제조업부문에 비해 금융부문이 급속히 성장하였다. GE의 연결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할 때, 금융부문의 자산 비중은 전체의 80%, 수익기여도는 거의 50%에 육박하고 있다. 이것만 보면, 이종욱 교수가 지적했듯이, GE는 산업자본이라기보다는 금융자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놀라운 사실은, 삼성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2005년 4월 현재 삼성그룹 9개 금융계열사의 총자산은 117.6조원으로 그룹 전체의 총자산 209.1조원의 56.2%를 차지하고 있다. 55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금융부문의 비중이 삼성보다 더 높은 그룹은 3개(태광산업, 한화, 동양)뿐이다. 물론 이들 3개 그룹의 규모는 삼성과 비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GE가 금융자본이라면, 삼성도 금융자본이다. 삼성그룹 하면 삼성전자만 떠올리는 분들이 많겠지만….

<표> GE 및 삼성그룹의 출자구조 (2003년 말 기준) (주 : 숫자는 출자회사의 지분율 )

자료: 한국은행(2004.7.20), ‘GE의 금융업 현황과 시사점’, 보도참고자료

유감스럽게도, GE와 삼성의 유사점은 여기까지 뿐이다. 무엇보다, 소유구조가 너무나 다르다(<표> 참조). 총수가 있고 없고의 차원이 아니다. GE그룹은 지주회사인 GE만이 상장되어 있을 뿐, 나머지 계열회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100% 지분의 완전자회사로 되어 있다. GE그룹의 금융부문을 총괄하는 중간지주회사인 GECS(General Electric Capital Service)는 GE가 100% 출자한 자회사이며, 그 산하에 있는 GE Capital 등의 금융회사들 역시 모두 100% 지분의 자회사 형태로 존재한다. 제조업부문 자회사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GE그룹 내에 제조업부문과 금융부문이 공존한다고 하더라도, 금융자회사가 제조업부문 계열회사의 지분을 보유하는 일은 없다. 나아가 금융자회사가 대출이나 회사채 인수 등의 형태로 제조업부문 계열회사에 자금지원을 하지도 않는다. 이런 행태는 그 이해충돌의 위험 때문에 그룹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그룹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의 금산법 24조 위반 문제, 그리고 삼성에버랜드의 CB 발행 및 금융지주회사 문제 등은 모두 GE와 삼성이 얼마나 다른가를 웅변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 이종욱 교수와 전경련은 ‘GE 사례를 들어’ 삼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가? 삼성이 본사를 미국으로 옮긴다면, 지금과 같은 소유구조는 단 한순간도 유지될 수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종욱 교수의 보고서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을 실현하는 대표적인 수단은 소유규제와 업무영역규제이다. ‘소유규제’는 산업자본이 금융기관, 특히 은행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동일인의 주식 소유한도나 대주주 자격요건을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상 모든 나라는 법률적으로나 관행적으로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금지하고 있다. 이종욱 교수의 보고서에 언급되어 있는 헝거리 등 동구권의 사례는 정말 예외적인 일로서, 체제전환국가의 특수한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한화그룹도 한화은행(Hanwha Bank Hungary Ltd.)이라는 이름으로 헝거리에서 1994년부터 은행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극히 예외적인 사례를 근거로 은행에 대한 소유규제를 철폐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편, ‘업무영역규제’는 소유규제와는 또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업무영역규제는 금융기관이 직접

또는 다른 계열회사를 통해 비금융업을 수행할 수 있느냐, 또는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업 내의 세부업종을 겸업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미국의 Gramm-Leach-Bliley Act는 지주회사 형태로 금융업 내의 은행⋅증권⋅보험간 겸업을 허용하고 있을 뿐,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 금지나 금융을 통한 산업 지배 금지 원칙을 훼손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명백한 사실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주장은 의도된 왜곡일 뿐이다.

물론 소유규제나 업무영역규제의 구체적인 형태나 강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런 규제는 미국의 은행업에서 가장 강력한 형태로 작동하고 있는 반면, 유럽대륙국가에서는 상대적으로 완화되어 있다.

그러나, 유럽대륙국가의 금융구조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배,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배를 정당화시켜주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 지점이 이종욱 교수 보고서 류의 주장에서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의도된?) 왜곡이다. 사실 이 부분은 소유규제나 업무영역규제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산운용규제의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미국의 보험산업에는 사전적 금지(outright prohibition) 방식에 의한 소유규제나 업무영역규제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MetLife나 Prudential과 같은 보험회사들이, 삼성생명처럼, 산업자본을 계열회사로 지배하지는 않는다. 미국 각주의 보험지주회사법(미국은 특이하게도 보험법만은 연방법이 아니라 주법으로 운용하고 있다)은 연방 은행법보다 훨씬 더 엄격한 공시 기준 및 감독당국에의 사전보고⋅승인 기준에 따라 관계회사와의 거래를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직간접적으로 10% 이상의 출자관계가 존재하면 모두 관계회사(affiliate)로 정의되며, 보험회사 자산의 0.5%를 넘는 관계회사와의 거래는 30일전에 감독당국에 보고되어야 하고 감독당국이 불승인조치를 하지 않는 조건 하에서만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즉 미국의 보험산업에는 소유규제와 업무영역규제는 없지만, 엄격한 자산운용규제를 통해 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 GE Capital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여신전문금융기관이라고 할지라도 관계회사에 출자하지 않는다. 금융법상의 자산운용규제는 물론 일반 회사법상의 충실의무가 금융을 통한 산업 지배에 따른 이해충돌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생명이나 삼성카드가 미국으로 본사를 옮긴다면, 소유규제나 업무영역규제를 따질 것도 없이, 자산운용규제 위반이나 충실의무 위반으로 무더기 행정제재와 소송에 직면할 것이다. 삼성의 금융계열사는 한국에서 영업하는 것을 엄청난 특혜로 생각해야 한다. 이걸 역차별이라고 하는 것을 언어도단이다.

한편, 유럽대륙국가, 특히 독일의 은행들은 경제발전의 역사적 특성으로 인해 비금융기업의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예컨대, Deutsche Bank가 Daimler-Chrysler의 최대주주이면서 감독이사회의 의장직을 맡아 왔다. 그러나 삼성생명-삼성전자의 경우와는 달리, 그 누구도 Deutsche Bank가 Daimler-Chrysler를 계열회사로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경영의 독립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에 들어서는 독일 은행들도 비금융기업들과의 관계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과거 보유주식의 매각에 최대 장애물이었던 과도한 양도차익 과세가 2002년 조세개혁법을 통해 크게 완화됨으로써 은행들이 보유주식을 점차 매각하고 있다. 또한 최근 Deutsche Bank는 앞으로 감독이사회의 의장직을 맡지 않을 것을 공포함으로써 산업과 금융의 분리 원칙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경제의 대안적 모델로서 스웨덴 등의 북구3개국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그 중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경우 제조기업과 금융기관을 동시에 지배하고 있으나, 이들이 상호간에 교차출자하지는 않는다. 즉 금융을 통해 산업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또한 노르웨이의 경우 금융기관 소유에 대해 아주 간명한 원칙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100% 소유(완전자회사) 아니면 10% 미만 소유(독립적 관계)만 가능할 뿐, 그 중간형태는 없다. 삼성이 유럽에 가면 지금의 소유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겠는가? 천만의 말씀.

요즘 금산법과 관련해서 삼성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의 노력이 눈물겹다. 왜 다른 재벌들조차 전경련을 ‘삼경련’이라고 빈정거리는지 가히 그 이유를 알만 하다. 얼마 전 열린우리당이 금산법과 관련한 당론을 결정하기 위해 정책의원총회를 여는 날 ‘삼성전자가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M&A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보고서를 내더니, 오늘 국회 재경위의 공청회가 열리는 날(코메디 같은 과정을 거쳐 공청회가 무산되기는 했지만)에는 ‘GE 사례를 보면, 삼성의 금융 지배 및 금융을 통한 산업 지배는 문제될 것이 없으며, 오히려 금융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권장되어야 할 새로운 국제적 추세다’라는 보고서를 냈다.

좋다. 뭐가 바람직하냐 라는 가치판단의 문제에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은폐하거나 왜곡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건 기본이다. 그런데 적대적 M&A 위협의 증거라고 하면서 ‘적대적(hostile) 대 우호적(friendly)’의 구분도, ‘공개매수(tender offer) 대 위임장 경쟁(proxy contest)’의 구분도, ‘현금매수 대 주식교환’의 구분도 없는 자료를 제시하는 것은 정말 심하다. 산업과 금융이 결합되는 것이 새로운 국제적 추세라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GE의 사례를 드는 것은, 이건 정말 아니다. GE의 사례는, 삼성처럼 금융을 통해 산업을 지배하는 것은 심각한 이해충돌의 위험 때문에 절대 유지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보여주는 반대 증거일 뿐이다.

전경련은 변해야 한다. 아니 삼성은 변해야 한다. 거부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을 곡학아세로 막으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위협하는 무의미한 행동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 한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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