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창립 15주년 맞은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

“뜻이 맞아도 정권 눈치 보여 못 도와준다더라”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최형락 기자(사진)  기사입력 2009-09-11 


서울 종로구 통인동. 청와대와 가까운 이 동네에서는 높은 건물을 찾아볼 수 없다. 아직 남아있는 한옥과 골목길 등을 보면 서울 한복판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이런 주위 환경 때문에 5층짜리 참여연대 건물은 유난히 돋보인다. 특히 요즘 이곳에는 유독 사람이 몰린다. 자원 활동, 강의, 회의를 핑계로 하루에도 수십 명의 발길이 참여연대 문턱을 넘나든다.

지난 9일 찾은 참여연대는 더 분주해 보였다. 창립 15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몇몇 간사들이 모여 한 회원이 보내준 잣나무 열매를 부지런히 다듬고 있었다. 친구도 15년지기면 제법 각별한 사이가 되기 마련. 풍성한 보따리에서 회원의 정이 물씬 느껴졌다.

참여연대는 ‘잘 나가는’ 시민단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가 된 것을 운이 좋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참여’와 ‘연대’라는 단어에 활기를 불어 넣은 그들의 노력은 한국에서 시민사회의 힘을 기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오는 15일, 참여연대는 ‘날자, 민주주의야’라는 제목으로 후원의밤 행사를 연다. 정부 보조금 없이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재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1년에 한 차례씩 여는 행사다.

그런데 후원금이 ‘뚝’ 끊겼다. 그간 성의껏 도와주던 기업인들은 “미안하다”며 외면했다. 지난해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1년 사이에 무엇이 바뀐 것일까.







▲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 ⓒ프레시안
정황은 충분했다. 시민단체의 ‘대부’격인 박원순 변호사가 몇 달 전 국가정보원의 개입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자신도 “박멸 대상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고 했을 때, 참여연대 역시 같은 처지였다.

후원금이 줄어드는 현실에 참여연대는 놀라지 않았다. 그렇지만 안타깝고 초조한 마음은 커졌다. 할 일은 더 많아지는데 작정한 듯 조여오는 재정 압박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버겁다.

참여연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진보 시민단체의 어려운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다. 지난 9일,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을 만나 15주년을 맞는 소회를 물었다.


뚝 끊긴 ‘돈 많은 분’의 후원, 한국 시민사회의 ‘현재’

“어렵다. 우호적이었던 기업인, 기업의 후원이 다 끊겼다. 경제적 여건이 안 좋아진 영향도 있지만, 뜻 있는 분들마저 유·무형의 압력 때문에 더 이상 후원을 못 하겠다고 한다.”

15주년을 맞아 진행하기로 한 참여연대와의 인터뷰는 ‘돈’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현재였다. 사회 내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지속하고 있음에도 정권의 눈치에 따라 후원금이 좌우되는 현실.

참여연대가 1년간 보는 적자는 2억 원 정도다. 15년간 특별한 어려움 없이 후원의밤을 통해 충당해왔지만 이번엔 달랐다. 회원 수는 줄어들지 않았고, 전·현직 임원들이 모금에 참여했지만 영 어렵다. 기부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시민단체에 대한 후원을 ‘사회 환원’이 아닌 정권의 코드에 맞춰야 하는 ‘정치 활동’으로 간주했다. 또 그런 ‘관점’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강요하는 것이 이 정권의 특징이기도 했다.

참여연대가 한 달에 한 번씩 발행하는 월간 <참여사회>에 기업 광고가 끊긴 지도 오래다. 어느날 갑자기 광고 철회를 통보 받는 경우가 잦아지더니 이제는 회원들의 회비 등으로 겨우 발간하는 상황이다.

쌓여있는 빚 역시 만만찮다. 2년 전 참여연대가 야심차게 보금자리를 마련한 이후 아직 남아있는 빚은 11억 원. 국내 시민단체로서는 보기 드물게 번듯한 건물을 마련해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사무실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지만 아직도 ‘빚덩어리 건물’인 셈이다.

그나마 버티는 것은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일을 하는 간사들이다. 신입 간사의 월급은 100만 원이 채 안 되고, 전체 간사의 평균 급여라고 해봤자 120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재정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이마저도 버거울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아직은 ‘현상 유지 중’이다. 김민영 처장은 “얼마 전 간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이상하게도 월급에 대한 불만은 적더라”며 “퇴직금도 없는데, 여기서 더 깎을 순 없다”고 말했다.

“공존의 개념이 없다. 비판의 역할도 모르고…”







▲ “공존의 개념은 없고, 약화나 박멸 대상이 된 거다. 어떻게든 진보적 시민단체의 힘을 약화시키고, 사회적으로 네트워크를 차단하려는 노력이 집요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정권이 바뀌었지만 이렇게 상황이 급변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지난해 촛불 집회 이후 정부는 시민단체를 파트너가 아닌 견제 대상, 더 나아가 아예 박멸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당시 참여연대는 18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사무 공간을 제공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연대했다. 그리고 정부는 유례없이 참여연대 사무실 압수 수색을 단행하는가 싶더니, 1800개 단체를 모조리 ‘불법 시위 단체’, 좀 더 솔직한 말로는 ‘반정부 단체’로 낙인찍어 버렸다. 그것은 구시대적인 공포와 배제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보수의 역사 인식 수준이기도 했다.

김민영 처장은 “시민단체가 정부와 정책이 다르고 실정을 비판한다고는 하지만 민주적으로 뽑힌 정부를 중간에 끌어내자는 주장까지는 하지 못한다”며 “시민단체는 일관되게 권력을 비판하고 정책 대안을 추구하는 역할을 맡는 것인데, 이 정부는 이것을 모른다”고 지적했다.

“공존의 개념은 없고, 약화나 박멸 대상이 된 거다. 어떻게든 진보적 시민단체의 힘을 약화시키고, 사회적으로 네트워크를 차단하려는 노력이 집요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북미, 유럽 등지에서 이른바 ‘선진국’이라 부르는 국가 중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무현 정부 당시 진보, 보수의 기계적 균형을 맞추고 대화하려 했던 노력마저 단번에 끊겼다.

김민영 처장은 “지난해 촛불 집회 당시 정부가 경악하면서 ‘참여연대마저도 이명박 퇴진 투쟁에 올인했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며 “우리는 그런 생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전하면 놀란다더라. 대화 통로가 전혀 없으니 서로 생각을 알 리가 있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민사회 영역마저도 보수의 진지 구축에만 올인하는 듯 하다”며 “미국의 네오콘을 벤치마킹하는 것 같은데, 과연 성공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은 도로묵…운동할 거리가 쌓여간다”







▲ “상황은 도로묵이 됐다. 행정 감시도 마찬가지다. 검찰, 국정원 등이 공안적 행태를 보이니까 다른 운동으로 옮겨갈 수가 없다.” ⓒ프레시안
참여연대가 느끼고 있는 ‘압박’은 재정뿐만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은 최근 걷잡을 수 없이 증가했다. 김민영 처장은 “다뤄야 할 이슈와 현안이 너무 많아졌고, 상근 인력이 열 명 정도는 더 있어야 겨우 따라잡을만 할 텐데 도저히 그럴 여건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참여연대가 해왔던 일이 있다. 민주주의 확장, 참여 확대가 그것이다. 사법 감시 영역에서 보면, 검찰 감시를 지속하다가 이제는 국민참여재판도 만들어지고, 법원 쪽으로 활동 영역을 옮기려 했는데, 상황은 도로묵이 됐다. 행정 감시도 마찬가지다. 검찰, 국정원 등이 공안적 행태를 보이니까 다른 운동으로 옮겨갈 수가 없다.”

김민영 처장은 “대변형 운동이 수명을 다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할 일이 많다”며 “다만 과거에는 별다른 준비 없이 피켓만 들고도 목소리를 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정교한 정책 대안을 끊임없이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 힘들게 하는 점은 참여연대와 시민·사회단체의 이런 노력에도 정책 담당자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처장은 “이슈 파이팅을 하려 해도 통로가 거의 막혀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 관계자나 다수 정당이 참여연대가 낸 정책 자료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남은 방법은 우리가 주장하는 바가 다수 국민이 지지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조건이 달라지니 운동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교육, 의료, 주거…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

지난 15년간 참여연대는 낙선 운동, 소액 주주 운동 등 굵직한 일뿐만 아니라 쉴새없이 움직이며 우리 사회의 권력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는데 앞장섰다. ‘참여연대가 없었다면’ 우리 사회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을 따져봤을 때, 참여연대가 한국 사회를 바꿔온 공로는 무시할 수 없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일을 해나갈까? 김민영 처장은 “전체 시민·사회단체의 아젠다 선도 능력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15주년을 맞으며 내부에서 논의하는 화두 중 하나는 운동이 일정 정도 성공하면서, 애초 우리가 선도했던 아젠다가 수명을 다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정경유착은 15년 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였지만 이제 표면 상으로는 그 의미를 많이 잃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권력을 어떻게 볼지 고민하고 그에 따라 아젠다 세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어 김민영 처장은 현재 권력을 ‘대리인’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이명박 정부는 이익 집단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는데 최선을 다 하는 정부”라며 “권력의 성격이 그렇게 변했을 때, 우리의 권력 감시와 기본권 확장 운동 역시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시민들이 자기 권리를 주창하도록 하는 운동이 주를 이뤘다. 이제 좀 더 구조적으로 파고들 때다. 참여연대는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 문제의 핵심은 교육, 의료, 주거라는 세 가지 불안으로 요약된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개선할지, 국가 재정이 어떻게 적절히 투입되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김 처장은 참여연대가 최근 ‘잡다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해오던 권력 감시 분야 뿐만 아니라 등록금, 의료 민영화, 비정규직 등 다양한 이슈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고 적절한지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15살 참여연대에 필요한 것은…

그런데 한 가지 의문. 참여연대가 너무 무거운 짐을 혼자 지려는 것은 아닐까? 사실 참여연대를 두고 흔히 ‘진보 진영’이라 일컫는 시민사회에서도 “너무 많은 일을 벌인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김민영 처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책임을 강조했다.

“참여연대가 자기 운동을 잘 하면 되는거지 전체 시민사회의 책임을 너무 많이 느끼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책임은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혹자는 ‘6월항쟁 사회운동의 적자는 참여연대’라는 과분한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우리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형성되어온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분야가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지만 시민운동이라는 하나의 진영이 1990년대에 만들어져서 존재하고 있고, 이 자산이 유실되게 만들어선 안 된다.”

김 처장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운동 방식을 두고서도 “운동의 통합성을 높이고 사회 전반의 개혁이 필요한게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점차 커지고 있다”며 “민주주의나 사회 경제, 한반도 문제 등은 각각 영역이 있기도 하지만 따로 뗄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분분하다”며 “대중적인 캠페인 대신 정책 비판에 중심을 두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의견도 있다.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못 내린다”고 덧붙였다.

15살. 사람으로 치면 가장 고민이 많은 사춘기이자 질풍노도의 시기다. 지금의 참여연대 역시 마찬가지로 보였다. 더군다나 외부의 압력이 줄기차게 계속되는 시기에, ‘청소년 참여연대’가, 아니 한국의 진보 시민단체가 길을 잃지 않으려면 애정을 가진 이들의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그들에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아닐까.







▲ ‘청소년 참여연대’가, 아니 한국의 진보 시민단체가 길을 잃지 않으려면 애정을 가진 이들의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그들에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아닐까. ⓒ프레시안



9.15 참여연대 후원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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