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1998-10-22   862

[제6호 쓴소리] 적반하장(賊反荷杖) – 재벌총수는 법 위에 존재합니까?

대통령께서는 언론의 기사들을 하나하나 챙기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기사뿐만 아니라 광고도 챙겨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보셨을지 모르지만 참여연대는 지난 10월 15일 최순영 신동아그룹회장을 국외재산도피혐의로 고발조치하고 한겨레신문에 이를 광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신동아 그룹은 신문광고를 통해 최순영회장이 이 사건과 무관하다며, 마치 이번 참여연대의 고발이 신동아그룹과 최순영 회장을 음해하려는 일부세력의 일방적 주장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것처럼 적반하장의 주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돈이 없어 한겨레신문에만, 그것도 독자들이 잘 보지 않는 속지에 겨우 광고를 할 수 있었는데 신동아그룹은 1면에 통광고로 대문짝만하게 했으니 저희들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었습니다. 저희들 회원조차 그 신문광고를 보고 정말 참여연대가 뭐 사실관계를 잘모르고 고발한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물론 돈없는 시민단체가 물쓰듯 돈 쓸 수 있는 재벌과 광고전에서 이길 수야 없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검찰과 정부입니다. 대통령께서 지금 당장이라도 법률비서관한 테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검찰은 이미 사실상 수사를 끝내 신동아그룹이 계열사 인 신아원을 통해 1억6천만 달러의 자금을 국외에 도피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 중 일부가 최순영회장 소유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 입금한 자필서명 문건등 그에 합당한 증거들을 확보한 상태임을 금방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지검 검사장, 이 사건을 담당한 문영호 부장검사등이 모두 이미 사법처리할 수 있는 단계라는 사실을 여러 기자 앞에서까지 확인한 바 있었습니다. 법조출입기자들 사이에는 이 와같은 신동아그룹의 외화도피혐의가 진실이라는 점은 공지의 사실입니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신동아그룹만 이를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 일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바로 이 정부와 대통령의 명예와 개혁의지가 걸린 일대사 건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실업자가 2백만명에 육박하고 있고 수많은 근로자들이 기업의 퇴출로 지금 이순간에도 직장을 잃고 있으며 수십, 수백만명이 투자한 주 식이 종이조각이 됨으로써 분노와 억울함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상황에서 한 재벌 회장이 2천1백억원을 해외에 빼돌리고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것은 이 정 부의 도덕적 타락이며 개혁의 종말입니다. 외화도피범에게 외자유치를 이유로 수 사와 구속을 연기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슨 기이한 논리란 말입니까. 이렇게 수 사를 연기함으로써 시간을 벌어주는 검찰은 직무유기에 다름아닙니다. 구속에 직 면한 최회장이나 신동아그룹측에서야 필사적으로 로비를 하고 증거를 인멸하고 있 을 것임은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대통령님의 발아래 청와대의 여러 사람 들에게도 그런 로비의 발이 뻗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대통령께서는 이런 상태에서 도대체 무슨 수로 실직과 실의에 빠진 국민들을 설득하시렵니까.

언젠가부터 재벌은 법위의 존재였습니다. 대통령님께서도 잘 아시지만 실제로 90년대 들어서만도 대형 부정비리 사건에 재벌총수가 연루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법원과 검찰은 국가경제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고 려하여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에 미온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재벌총수의 부실경영 과 정경유착, 부정비리는 관행화되어왔고 이는 재벌그룹과 국가경제의 총체적 부 실화를 초래하여 나라를 오늘의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은 근본적 원인이 되었습니 다.

더 이상 기업주와 기업이 동일시되어서는 안됩니다. 부정비리를 저지른 부실 기업주를 엄정히 사법처리함으로서 경영일선에서 도태시키는 것이 해당기업을 살 리는 길이며, 동시에 전반적인 기업경영풍토를 쇄신시켜 국가경제의 기초를 튼튼 히 하는 길임을 경제부처장관과 사정책임자들에게 명심 또 명심시키셔야 합니다. 이와같이 최순영회장의 국외재산도피사건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는 일개 한 기업인의 불법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잘못된 기업경영풍토를 쇄신하고 기업차원의 각종 부정비리를 척결하는 데 있어 중대한 시금석이 될 것입 니다. 만일 최순영회장의 혐의사실이 명백히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이유로 사법처리하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재벌총수도 처벌할 수 없 을 것입니다. 최순영회장의 구속은 이제 이 검찰, 이 정부, 대통령님의 도덕성과 정의감, 개혁의지를 가늠하는 최대의 잣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희들은 지켜볼 것 입니다.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에서 일하는 임미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