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1999-02-24   732

[제20호 자료] 국민의 정부 1년-재벌개혁정책에 대한 평가

김대중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재벌정책이라 할 빅딜과 관련하여 최근 대우와 삼성, 현대와 LG간의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어 가고 있다. 재벌 측에서는 빅딜정책 등 김대중 정부 의 재벌정책이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함으로써 시장경제원리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부실계열사에 대한 자금지원, 시중자금의 독식 등을 통해 시장기능을 무력화시켜온 것이 재벌 자신이라는 점에서 이는 국가경제를 파탄의 위기로 몰아넣은 기존의 재벌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반개혁적 저항에 다름 아니다.

재벌, 특히 5대 재벌이 국민경제를 볼모 삼 아 개혁에 완강히 저항하는 상황에서 시장원리에만 맡겨서는 구조조정이 한없이 지연될 수 밖에 없고, 이는 국가경제의 공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시장개입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한편으로 빅딜 등 김대중정부의 재벌정책에 근본적인 몇가지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빅딜정책의 추진과정에서 정치적 판단은 배제되어야 한다.

이번 국회 청문회를 통해서도 삼성그룹의 자동차산업진출이 당시 김영삼 정부의 부산지역 에 대한 정치적 배려 차원에서 무리하게 추진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 중정부가 악화된 부산, 경남지역의 지역정서를 이유로 또다시 정치적 필요에 따라 SM5의 생산을 강요하는 것은 전정권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이며, 그 동안 추진해온 재벌정책의 원칙을 스스로 파기하는 것이다.

빅딜 정책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수조건과 인수이후의 생산여부에 대해서까지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인수기업을 동반부실화시키거나, 인수기업이 특혜조치를 요구하는 빌 미가 된다는 점에서 지양되어야 한다. 더욱이 우리는 대통령이 민간기업의 사업교환문제에 까지 직접 개입하는 것은 전혀 적절치 않으며, 이것이 새로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여 전 반적인 재벌정책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재벌정책추진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현재 빅딜 정책은 김대중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재벌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부처 중 그 추진주체가 불분명한 것이 현실이다. 산업구조조정정책의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도 행정적 인 업무처리만 하고 있을 뿐 의사결정 등 핵심적인 정책추진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투명성과 책임성은 정책추진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그런데 국가의 주요 경제정책이 주무부처마저 배제된 채 정치권과 재벌총수간의 비밀협상에 의해 추진되는 것은 이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합리성 면에서 오류를 범하기 쉽고 새 로운 정경유착을 낳을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부과와 손실부담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빅딜이 재벌총수의 잘못된 경영판단과 부실경영에 따른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시키 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부는 부실경영에 대해 재벌총 수등 경영진의 책임은 묻지 않은 채 빅딜 대상기업에 각종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특혜제공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재벌총수의 책임은 반드시 물어져야 한다. 부 실경영의 책임을 묻는 것은 주식회사제도하에서 당연한 조치이며 재벌총수라고 해서 그 예 외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총수의 도덕적 해이를 조 장하고 종업원들에게는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의식을 갖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이 "무능한 총수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언명하였음에도 이는 현실화되 고 있지 않다. 따라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부채-출자 전환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부실 경영에 책임이 있는 재벌총수를 경영일선에서 퇴진시켜야 하며, 최소한 빅딜 대상 기업의 부채는 총수 개인의 사재로 갚도록 함으로써 국민과 일반주주의 피해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역대 정권이 총수와 기업을 동일시하고 총수를 성역 시 함으로써 그들의 방 만한 경영을 조장하고 재벌체제의 문제를 심화시켜왔음을 깊이 인식하여야 한다.

지배구조의 개혁 없이 재벌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김대중정부의 재벌개혁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개혁의 핵심적 요체라고 할 수 있는 지배구 조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입에 의존한 과잉중복투자, 상호지급보증과 부당 내부거래를 통한 문어발 경영 등 재벌체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총수 1인에 의한 경영전횡 을 가능케 한 왜곡된 지배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벌총수가 불과 2%도 되지 않는 지분으 로 100%의 권한을 행사해온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다른 그 어떤 개혁 도 일시적인 미봉책이 불과하다. 총수일가에 의한 전일적 지배가 유지되는 한 재벌체제는 언제든 복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빅딜 정책은 비록 그 배경과 방식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실패 한 전두환 정권 초기 산업구조조정정책이나 노태우 정권의 업종전문화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띠라서 김대중정부가 과거 정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혁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사후적으로는 부실경영에 대해 재벌총수의 책임 을 묻는 조치가 필요하며, 사전적으로는 소액주주권의 강화, 이사회 기능의 정상화, 사외이 사, 사외감사제도의 실질화, 외부감사인의 독립성 보장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소액주주권이 일정정도 강화된 것을 제외하면 지배구조문제에 관한 한 실제로 아 무런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집중투표제(누적투표제)만 하더라도 총수의 전횡을 견제 하고 이사회의 구성을 실질화하기 위해 이를 채택해 놓고도, 정관개정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금지할 수 있도록 단서조항을 둠으로써 사실상 제도의 도입을 유명무실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상장회사들이 잇따라 집중투표제를 금지하는 식으로 정관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증권거래법상의 집단소송제 역시 재벌 측의 완강한 반대로 아직 법안조차 제출되 고 있지 않다.

보다 강력하고 일관된 재벌개혁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김대중정부는 재벌개혁을 금융산업구조조정과 함께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 제로 추진하여왔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재벌개혁이 대단히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단지 국민의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시장원리를 강조하면서도 재벌의 한계부실기업은 여전히 퇴출되고 있지 않다. 오히 려 삼성자동차와 같이 퇴출되어야 할 기업이 빅딜이라는 이름 하에 멀쩡한 기업과 맞교환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부담은 국민에게 전가되고 무리한 투자와 부실경영에 대 해 책임을 져야할 재벌총수는 손실을 부담하지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지도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어발식 경영행태가 시정되기는커녕 부당내부거래를 통한 우량계열사의 부실계열사에 대 한 자금지원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부는 출자총액제한규정을 폐지함으로써 계열사 에 대한 자금지원을 합법화시켜주었다. 나아가 정부는 순수지주회사를 허용하고, 다행히 최 근 시기를 재검토하기로 하였으나 동일인 지분소유한도를 대폭 확대하여 재벌의 은행 소유 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재벌체제를 더욱 공고화시켜주고 있다.

계열사를 축소하고 주력업종중심으로 그룹을 재편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재벌은 4-5개의 업종과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릴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더욱이 계열사의 축소가 청산, 매 각의 방식이 아니라 계열사간 흡수, 합병의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이는 계열사의 부실을 우 량계열사가 직접적으로 떠안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개혁에 역행하는 것이다. 부채비율 200% 이하로의 축소도 자산재평가를 통한 장부상의 자산증식, 총액출자제한규정 폐지를 악용한 계열사간 유상증자를 통해 단순한 숫자노름이 되고 있다. 부채는 줄지 않았 는 데 부채비율만 줄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빅딜등 재벌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5대재벌에 대해서는 부채를 출 자전환하면서 6대재벌이하 기업에 대한 워크아웃작업과는 달리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등 특 혜를 베풀고 있다. 정부는 이런 특혜가 5대재벌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정부의 그런 태도야말로 재벌이 개혁에 저항하며 끊임없이 대가를 요구하 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5대재벌에 대한 특혜는 이것만이 아니다. 정부는 작년 하반기 5대그 룹의 시중자금독점을 막기 위해 금융기관의 CP·회사채의 보유한도규제조치를 취한 바 있 다. 그러나 얼마전 대우의 CP연장을 허용함으로써 또다시 재벌에 대해 특혜조치를 취하고 말았다. 빅딜에 협조해 준 대가이기도 하고 대우 부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초대마 불사의 신화를 강화시켜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재벌이 개혁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보다 강력하고 일관된 재벌개혁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현대그룹의 무한팽창을 경계한다.

특별히 우리는 현대그룹의 거듭된 사업확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바이다. 기아자 동차, 한화정유, 한남투신, LG반도체의 인수, 합병 등 계속된 현대그룹의 사업규모확장은 IMF경제위기상황을 무색케 하는 것이며 가히 현대왕국이 건설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 에 충분하다. 더욱이 조흥은행과 강원은행, 현대종금의 합병을 통해 현대는 은행마저 소유하 려하고 있으며 정부도 이를 허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다른 재벌에 대해 서는 과잉투자의 해소, 계열사 정리 등을 통해 사업구조를 조정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토록 강제하면서 유독 현대의 사업확장을 묵인, 방조, 지원하는 것은 명백한 특혜이다. 우리는 자 체의 자금으로는 기존 부채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현대가 어떻게 막대한 기업인수자 금을 조달할 수 있을 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결국 부채비율 축소나 인수 및 운영자 금 확보과정에서 또 다른 특혜조치를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현대는 비등한 비판여론을 의식해서 그룹을 업종별 소그룹체제로 분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룹분리계획은 과거에도 수 차례 발표되었으나 지켜지지 않았고, 설혹 형식 적 분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는 형제간 재산분할을 치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한라 그룹에 대한 현대그룹의 자금지원에서 드러나듯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총수 1인의 지 배에서 자식들간의 일가 지배로 바뀌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부에서는 지난 대선과 정에서의 현대의 자금지원의 대가라는 의혹마저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의 사실여부를 떠 나 이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극히 우려할 만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런 점 에서 정부는 현대에 대해 특혜의 제공은 물론 어떠한 예외도 인정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부 당내부거래의 완벽한 차단, 자금조달의 투명성 보장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최근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마치 IMF 경제위기를 벗어난듯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그러 나 이는 섣부른 낙관이며 여전히 우리 경제는 뼈를 깍는 구조개혁의 노력을 일관되게 추진 하지 않고는 회생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 특히 재벌을 개혁하지 않고는 경제위기를 극복 할 수 없다는 것은 국내외의 일치된 견해이다. 비록 일시적으로 경제상황이 호전된다 하여 개혁의 강도와 속도를 늦추다면 국가를 부도위기로 몰아넣은 구조적 문제들이 확대, 심화되 어 보다 심각한 경제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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