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1999-12-16   773

[제37호 정책제안] 대우 구조조정은 지금부터

대통령님께,

이른바 11월 금융대란설은 큰 소동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대우사태라는 시한폭탄의 뇌관은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라 다만 시한이 연장되었을 뿐입니다. 엄청난 비용이 투입되었지만, 여전히 시한폭탄의 시계는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우의 구조조정은 지금부터입니다. 한국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참여연대의 의견, 아니 국민의 목소리를 대통령님께 전달하고자 합니다.

1. 김우중 회장 사법처리 및 경영진 완전 교체

최근 항간에는 김우중 회장의 사법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로비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금융감독당국이 대우의 부실 원인을 조사하여 김우중 회장을 비롯한 기존 경영진의 책임을 엄정하게 묻겠다는 의지를 거듭 표명하고는 있지만, 전방위로 전개되고 있는 김우중 회장 구명 로비의 강도에 비교해 본다면 그야말로 작은 외침에 지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제2의 최순영 사건이 우려됩니다.

김우중 회장의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것은 김우중 회장 개인에 대한 악감정 때문이 아닙니다.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며, 특히 그것이 회계장부조작·횡령·배임·탈세 등의 위법행위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시장경제질서를 회복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한편, 김우중 회장의 사법처리는 대우 계열사의 회생이라는 구체적·현실적 목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김우중 회장은 공식적으로는 사표를 제출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계열사 임원들을 원격조정하고 있습니다. 채권단이나 금융감독당국의 구조조정 지침이 현장에서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임원들 역시 부실경영 책임, 특히 위법행위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따라서 김우중 회장이 사법처리 되지 않고 건재(?)하는 한, 임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책임을 드러내고 이를 시정하는 조치를 취할 리가 없습니다. 김우중 회장과 임원들은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입니다.

김우중 회장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면서 임원들을 원격조정하는 한 대우 계열사는 회생하기는커녕 급속도로 고철덩어리로 변할 것입니다. 대우 계열사는 회계장부상의 숫자로만 존재하는 기업이 아닙니다. 그 대부분은 쇠덩어리로 만들어진 생산설비와 이를 조작관리하는 근로자로 구성된 제조업체입니다. 생산설비가 녹슬고 근로자의 조직기강이 해이해지면, 정말 회생시킬 가치가 없는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한 달이 지날 때마다 대우 계열사의 기업가치는 10%씩 떨어진다고 합니다. 김우중 회장의 노골적 저항과 임원들의 조직적 태업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대우 계열사의 구조조정은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채권단은 기존 임원을 내부승진시키는 형식으로 대우 계열사의 신임사장들을 추천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재벌개혁과 대우 계열사 회생이라는 국민적 열망을 저버린 무책임의 극치입니다. 채권단에서는 안전운행을 위한 신중한 선택이라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대우 계열사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조직혁신입니다. 김우중 회장의 전횡에 의해 경직화된 조직을 혁신하고, 최근의 부실심화 과정에서 흐트러진 조직을 혁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러한 혁신의 과제를 어찌 부실의 공범인 기존 임원들이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부실의 주범인 김우중 회장이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대우 계열사의 회생을 위해 가장 시급한 조치 중의 하나가 바로 김우중 회장을 사법처리하고 유능한 외부인사로 경영진을 완전 교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는 대우 계열사의 회생을 위한 진정한 구조조정 노력이 시작되었음을 시장에 확신시키는 신호로 작용할 것입니다.

2. 기업가치 회복을 위한 한시적 공기업화

구조조정 과정에서 천문학적 액수의 공적자금 즉 국민세금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적자금의 투입량을 최소화하거나 또는 투입된 공적자금의 회수가액을 극대화하는 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재정적 목적의 노력만으로 국민에 대한 책임이 완수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부실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구조조정 비용을 공적자금이라는 형태로 국민이 부담하였다면, 그 구조조정의 성과 역시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구조조정의 성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천민적 기업모델을 극복한 새로운 기업구조, 즉 건전한 소유지배구조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님.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건전한 소유지배구조를 창출하기 위한 정책당국과 채권단의 체계적인 노력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외형적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판단한다면, 조속한 해외매각, 특히 P&A방식의 우량자산 매각 이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 운운하는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구조조정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정책당국과 채권단의 관료주의적 성향이 보다 직접적인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해외매각 이후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정책당국과 채권단은 잘 알고 있습니다.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외자유치가 필수적이며 자본자유화는 세계기준(Global Standard)에 따른 구조개혁의 핵심이라는 주장은 바로 위기관리와 구조개혁 주체로서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물론 선진 경영기법을 갖춘 외국투자가의 진입은 한국의 독과점적 시장구조와 천민적 기업구조를 혁신하는 데 긍정적 기여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적자금이 투입된 모든 부실금융기관과 워크아웃 기업을 해외매각 방식으로 처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우량자산만을 해외매각함으로써 미매각 부분과 관련 하도급업체의 고용불안을 심화시키고 산업기반을 붕괴시키는 것은 구조조정 성과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과는 완전히 상치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워크아웃 기업도 그 특성은 천차만별입니다. 특히 대우의 핵심계열사인 (주)대우,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대우전자는 재무적·기술적으로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조조정 방안도 해외매각이라는 한가지 방식으로 획일화될 수 없습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우 계열사를 계속기업(going concern)의 상태로 조속히 회복시킴으로써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작업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언제 어떤 조건으로 성사될 지 모르는 해외매각에 대우 계열사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됩니다. 정책당국과 채권단이 무작정 해외매각 성사를 목놓아 기다리는 동안 대우 계열사는 쓰레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대우 계열사의 회생을 위해서는 일정 시한(최소한 2년)을 전제조건으로 해서 은행관리기업, 즉 사실상의 공기업으로 유지하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여야 합니다. 즉 무조건적 해외매각이라는 무책임한 자세를 버리고, 일정 시한 내에 기업가치를 제고시키는 책임을 채권단이 부담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각 기업의 특성에 따라

ⅰ) 경영권 이전을 수반한 해외매각,

ⅱ) 다양한 수준의 전략적 제휴,

ⅲ) 독자생존 등의 구체적인 구조조정 대안을 모색·실천하여야 합니다. 특히 대우중공업 조선부문과 같이 독자생존이 가능한 기업의 경우에는 기관투자가, 국민주, 종업원지주제 등을 이용한 분산된 소유구조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경영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지배구조를 창출하는 목적의식적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구조조정 방안의 선택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대우자동차의 처리문제일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등이 적극적인 인수 의사를 표시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워크아웃에 대한 해외채권단의 비협조로 인해 (주)대우와 함께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 등 좀처럼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대우자동차의 기업가치는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신차 설계 및 시작차 제작 등 자동차기업의 핵심역량을 이루는 연구개발부문은 이미 기능을 정지하였습니다. 중장기적 경영전략을 갖고 이들 부문을 지원할 주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로 마냥 시간을 보내다가, 예컨대, 1년쯤 후에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다고 하더라도(12월 14일 GM이 투자의향서를 금감위에 제출하였지만, 인수방식·인수대상·인수가격이 최종 확정되기까지는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입니다.) 그 때는 이미 대우자동차는 자동차기업으로서의 핵심역량을 모두 상실한 채 껍데기만 남은 기업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결국 GM이 제공한 설계도대로 조립만 하는 하청생산기지로 전락하겠지요.

대우자동차가 독자회생 가능성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해외매각이 유일한 대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그 어떠한 선택도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대우자동차의 핵심역량을 보전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시적(예컨대 2년) 공기업화의 목표입니다. 팔 때 팔더라도 일단은 팔릴만한 물건으로 만들어놓고 살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내외를 불문하고 한사람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팔 필요가 없다면 더더욱 좋겠지요. 해외매각이든 전략적 제휴든 독자회생이든 선택은 그 때 가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3. 공적자금의 투명성 제고 및 금융기관·회계법인에 대한 책임부과

지난 7월 19일 대우그룹이 사실상 부도를 선언하자 투신사 수익증권에 대한 환매요구가 급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금융감독당국은 수익증권 환매를 제한하면서, 대신 개인·법인에 대해서는 90일 간격으로 대우 무보증채권 원본의 50% → 80% → 95%를 보장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내년 7월로 예정된 채권 시가평가제 실시를 유보하고, 30조원에 이르는 채권안정기금을 조성하고, 투기등급의 채권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펀드를 새로 도입하는 등 금융시장안정을 위한 각종 대책이 양산되었습니다.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 원칙적인 방법은 채권 시가평가제를 조기에 도입하면서 수익증권 보유자 판매사 운용사 그리고 국민(공적자금) 간의 손실분담 비율을 확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금융시장의 위기관리를 위해서, 아니 보다 솔직히 말한다면 정권의 위기관리를 위해서 수익증권 보유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가장 먼저 포기했고, 그리고 곧이어 채권 시가평가제라는 감독책임 원칙을 포기하였습니다.

이제 대안은 두가지뿐입니다. 그 하나는 예컨대 대통령 긴급명령 발동 등의 혁신적 조치에 의해 훼손된 원칙을 복원하고 즉각 투신사 구조조정에 착수하거나, 다른 하나는 훼손된 원칙이나마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정부가 사후관리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선택은 그 어느 쪽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즉각적인 투신사 구조조정 방안은 분명히 포기하였지만, 정부가 일관성 있는 사후관리 책임을 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사 공적자금의 팽창입니다. 첫째, 투신사가 매물로 내놓는 채권을 인수하기 위해 은행들이 30조원에 이르는 채권안정기금을 조성하였습니다. 채권안정기금은 투신사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비용을 은행에 전가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로 인해 결국 은행들이 부실해지면 진짜 공적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한국투신 및 대한투신의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가 직접 또는 국책은행을 통해 간접적으로 투입되는 이른바 공공자금이나 성업공사가 무보증 대우채권 및 해외채권을 인수하는 자금은, 공적자금은 아니나, 국민부담으로 귀착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금융시장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한국은행이 무제한의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금리상승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금리 기조를 지속하는 것은 국회의 승인 없는 inflation tax의 부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금융시장 안정은 위기관리를 위한 최우선의 과제이지만, 현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투신사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면서 유사 공적자금을 팽창시키는 현재의 정부정책이 올바른 선택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80%, 95%의 대우채권 원본보장 약속을 정부가 번복할 수 없다면, 공적자금의 투입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다만 그 공적자금은 은폐되어서는 안되며, 국회와 국민의 감시대상으로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이미 설정된 64조원을 넘어 공적자금 규모를 증액하는데 따른 정치적 책임, 즉 국회의 승인 및 국민의 동의 절차를 정부가 우회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천문학적 액수의 공적자금 투입을 초래한 금융기관 및 회계법인의 책임을 엄정하게 따지는 작업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됩니다. 대우채권을 한도 이상으로 편입시키고 펀드간 자전거래를 통해 수익률을 조작한 투신사, 대우채권이 과다하게 편입된 수익증권을 정확한 정보제공 없이 투자자에게 판매한 증권사, 엄격한 신용평가 없이 대우채권에 대한 지급보증을 남발한 서울보증보험 등에 대해서는 금융기관 자체뿐만 아니라 관련 대주주 및 임직원에 대해 엄중한 민형사상의 책임부과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대우 계열사의 회계장부 분식에 공모한 회계법인 및 관련 회계사에 대해서도 일벌백계의 차원에서 엄중한 책임부과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계열 종금사의 부실로 인해 공적자금 투입을 초래한 재벌총수가 민형사상 책임을 지기는커녕 구조조정 잘한 기업인으로 청와대에 초청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1999년 12월 16일

김상조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 단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