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1998-12-17   970

[제13호 개혁정론] 5대재벌 개혁에 관한 12.7 합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난 12월 7일 대통령과 5대 재벌총수 간의 구조조정에 관한 합의를 보면서 다양한 평가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먼저 대통령께서 직접 5대 재벌의 구조조정을 챙기겠다고 다짐하신 점, 또한 무능한 총수는 퇴진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언명한 점, 사외이사 및 감사제도의 실질적 운영에 합의한 점. 5대 재벌의 과잉투자 해소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점 등은 재벌개혁을 위한 상당히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오히려 이날 합의됐던 내용이라기 보다는 향후 이것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하는 점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엄밀한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오늘은 개략적인 측면에서 몇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과잉투자 해소에 관한 사항입니다.

5대재벌측은 계열사의 수를 대폭 축소하겠다고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는 영세사업체를 정리하거나 사업은 존속시킨 채 합병에 의해 계열사 숫자 를 줄이는 숫자놀음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 다. 더불어 빅딜은 과다경쟁을 해소하는 역할은 수행하겠지만 빅딜 그 자 체가 과잉투자를 해소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있습니다. 특히 빅딜 대상 중엔 삼성자동차처럼 그냥 퇴출시켜야 할 기업 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선단경영체제를 해소하는 과제입니다.

정부의 조치에 의해 선단경영은 당분간 완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총수의 소유-지배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선단경영을 해소한다는 것은 원천 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현재보다 더 교묘한 방법 으로 선단경영은 계속될 것입니다. 계열사 숫자가 일부 줄어든다고 하더라 도 현대, 삼성 등은 여전히 30-40개나 되는 계열사를 유지한다고 발표했습 니다. 게다가 유보하기로 했던 지주회사허용을 정부가 다시 추진하기로 함 으로써 선단경영 해소와는 역행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지주회사는 경제력 집중 강화와 선단경영을 위한 장치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 가 없을 것입니다..

셋째는 책임과 고통의 공평한 분담에 관한 문제입니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주된 책임자인 5대 재벌총수에 대해서 이번 합의문에 는 사실상 아무런 책임추궁도 없습니다. 정부는 이미 6대 이하 그룹에 대 해선 경영권 박탈이나 조건부 유지라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5대 재 벌 총수에 대해선 6대 이하보다 특혜적인 조치를 취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기껏 사외이사나 사외감사의 파견·지명에 의해 경영을 감독한 다는 형식적인 조치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자본주의가 이제까지 경 험한 몇 차례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책임자에 대한 추궁이 불철저했기 때문 에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고 현 사태에까지 이른 것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총수의 사재 출연이라고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재출연은 자기기업에 대한 주식투자 형 태를 취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는 조치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출연케 하려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부채를 총수의 개인 재산으로 갚도록 해야 합니다. 예컨대 이천전기나 삼성자동차의 무담보 부채는 이건희 회장 개인 재산으로 갚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노동자 배제적인 구조조정이라는 점입니다.

현재에도 그렇고 이번 합의에 의해서 추진될 구조조정 역시 그 피해는 별다른 과오나 책임도 없는 노동자들에게만 과중하게 부과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구조조정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노동자는 거의 배제되 고 있다는 점입니다.

12월 7일의 합의는 이같은 점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 니다. 따라서 이번 합의가 의미있는 진전이라 평가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 고 5대재벌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 이 남아있습니다.

가장 크게는 무능한 재벌총수의 지배권 이양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통령님의 말씀대로 무능 총수들이 물러나게 하려면 이것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즉 재벌총수의 부패·무능 이 드러날 때엔 기업이 도산하기 전이라도 교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 를 위해선 부채-출자 전환 기업에 대해선 기존 대주주의 감자는 물론, 지 배권을 확실히 채권단이 장악하고 언제라도 경영권을 교체할 수 있도록 해 야 합니다.

둘째, 독립경영보다는 책임전문경영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독립경영이라는 것은 총수의 소유지배구조를 그대로 두고선 달성하기 힘 든 이야기이며 총수의 소유 지배 구조 자체를 개혁하여 책임전문경영시스 템을 지향해야 합니다. 또한 완전한 독립경영의 무조건적인 추구는 바람직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소액주주를 희생시키지 않고 불공정경쟁이 아니라 면 기업간의 제휴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선단경영의 문제를 해 소하려면 책임전문경영체제를 확립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기업간의 유연한 네트워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합의 상황의 이행 점검의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 직속의 자문기구로서 "재벌개혁위원회"를 설치하 고 거기에 시민단체 대표와 재벌에 오염되지 않은 전문가를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합의사항에 포함된 '사외이사와 감사제'의 실질화를 위해 선 기관투자가, 노조대표, 소액주주대표가 반드시 사외이사와 사외감사에 포함되도록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넷째, 밀실에서의 구조조정이 아닌 국민적 구조조정을 추구해야 합니다.

구조조정을 구체적으로 추진해나갈때는 노동계의 참여가 반드시 보장되 어야 합니다. 노사정위뿐만 아니라 그룹차원의 노동조합이 구조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과잉 인력 정도에 대한 공정한 판단을 위 해서 전문가의 의견수렴을 노사정위 차원에서 진행해야하며 이같은 과잉인 력의 해소방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이번의 합의사항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히셨지만, 여전히 5대재벌의 개혁이 순탄할 수 없음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 다. 국민을 개혁의 광장으로 이끌어 내서 국민의 힘으로 근본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따라서 재벌개혁운동에 나선 국민들에 게 개혁의 무기를 쥐어주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앞서 제기한 재벌개혁위원회의 구성과 국민의 참여보장, 지배주주에 대한 책임추궁, 노 사정위원회의 실질화, 기업내부에서의 개혁장치 등 국민에 의한 개혁이 가 능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 시급히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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