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2-07-09   2001

[인턴후기] 노동자를 위한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편집자주] 참여연대에서 7/3(화)부터 8/14(화)까지 약 7주간 활동하는 10기 인턴들의 교육 및 활동후기가 차례로 올라올 예정입니다.


노동자를 위한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10기 인턴 장현민 (복지노동팀) 

지난 2009년 우리는 쌍용차 파업이라는 노동자에 최소 생계보장권과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하는 사건을 만났고, 개인과 우리라는 모임안에서 우리는 그것들을 도외시하고, 외면했다.
 
마땅히 누려야할 행복할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
큰 대기업에 경영자나 국제적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이루고 싶은 개인이 품는 큰 꿈 안에서 설명되지 못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웃을 수 있는 권리, 내 자녀를 위해 물려줄 것들을 쌓아갈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노동자 라고 불리는 계층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겼고, 너무나 큰 무관심으로 이들을 나의 삶과 분리해 왔다.

2012 여름 10기인턴           △ 평택에 있는 와락센터 간판 
 
삶과 죽음이 인생에 양면이듯 우리네 삶도 노동자와 국민이라는 양면으로 나눌 수 있다.노동자인 그들이 곧 나의 삶에 방식이고, 국민이라는 나의 주권이 곧 그들과 우리가 함께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으로서에 존엄성이듯이 우리네 삶과 노동자에 삶은 떼어질 수 없고, 떼어져선 안되는 관계라고 생각하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우리가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할 권리는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누군가는 이렇게 마한다. 모든 사람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에 공정성과 실효성에 있어 맞는 길 이라고.  
또 누군가는 말한다. 시작점이 다르고 환경이 제각각 이기에 우린 서로에게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며 물러날줄 알아야 한다고….

무엇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재조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아버지, 우리네 오빠, 우리네 누나, 우리네 부모님,누군가는 때려야 하고, 누군가는 맞아야 했던 이 사건 속에서 이해 관계를 떠나 이 사회에 그리고 나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노동자를 위한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나는 어느 위치에 서있고, 어느 것을 판단기준으로 볼 것인가.
 
미국의 저명한 저술가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 는 말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이 말 안에서 소로우는 인간과 국민을 따로 떼어놓고 설명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다 아는 “국민”과 “인간”이라는 단어의 개념이 어떻게 따로 떼어 생각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나는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되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지난 5일(목) 10기 인턴들과 함께 평택에 있는 와락센터를 다녀오며 또 한번 나를 사로잡는 생각이 있었다. 이곳에 가슴속 깊게 패여 고인 핏물을 간직한채 딱정이 진 가슴을 안고 서로를 보듬으려 애쓰는 “인간”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숨이 넘어갈 것 같지만 아직은 살아있는 노동자와 그에 가족들을 보면서 사회속에서 나에 위치와 이들에 위치를 비교해 볼 수 있었고 답은 자명했다. 나는 여전히 국민일뿐이었고, 그들은 국민이자 인간으로서 아파하고 부둥켜 앉으며 나로부터 한발 짝 즈음 떨어져 있었다는 걸…

무엇이 이들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가. 그들은 자신의 아픔을 나눌 줄 알고, 기쁨 또한 함께 누릴 줄 아는 이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모임이나 집단 안에서에 자기 정화능력은 그 모임안에서에 감정이나 이해관계로 얽히며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 내부에 작용보다는 사회 밖으로 표출되는 외부 작용을 보면 그 능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들은 회사와 자본에 부당한 해고에 피해자가 되었고, 회사와 사회로부터 자신에 배를 불리기 위해 회사에 악영향을 끼치는 필요 악 쯤으로 인식되와 왔다.

무관심과 질타에 ‘대상’으로 왜곡된 그들은 아팠고, 결국 해고를 당한 당사자가 되어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때 그들은 더 아파했다. 하지만 아픔이 생겨났을때 그들은 그 아픔에 주저앉아 멈춰있기 보다는 다시 삶을 찾기위해 세상에 소리 질렀고, 그렇게 소리 지르는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세상 곳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또 다른 부당해고 노동자에 아픔 또한 함께 나누고자 했다. 해고 노동자들이 병적으로 앓는 외상후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충동은 노동자와 그가 책임져야 할 가족을 정신적으로 파괴하는 큰 상처를 가져왔다. 사측에 수많은 소송으로부터 경제적,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파괴된 그들이 서로를 품으며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소리친다.

나만 살기 보다는 “함께 살자”고….
이것이 인간과 국민을 구분짓는 하나의 평가기준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2012 여름 10기인턴          △ 와락센터 활동가들과 참여연대 10기 인턴들의 단체사진 

국민인 나에겐 없는 것…. 인간인 그들에겐 있는 것….
무엇이 우리사회와 나를, 당신을 그리고 노동자들을 여기까지 차이가 나는 다른 존재로 만들었는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함께 묻고 싶다.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찾았느냐고.

마지막으로 사회에 묻고 싶다. ‘노동자를 위한 정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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