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9-04-14   2387

자유여! 누가 너를 격렬히 뜯어먹고 있구나

“자유여! 누가 너를 격렬히 뜯어먹고 있구나”

[홍성태의 ‘세상 읽기’] 신경민, 김미화, 윤도현…



결국 신경민 앵커가 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아마도 신경민 앵커는 최고의 뉴스 진행자로서 우리의 방송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는 외모, 음성, 내용까지 뉴스 진행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모두 충실히 갖춘 참으로 보기 드문 뉴스 진행자였다.


그가 시민들의 열렬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퇴출’되는 상황을 접하면서 나는 <굿 나잇, 앤 굿 럭>(2005)이라는 미국 영화를 떠올렸다. 이 영화는 매카시즘의 광기에 맞서서 미국 언론의 양심을 지킨 미국 CBS 방송국의 뉴스 진행자 에드워드 머로와 프로듀서 프레드 프렌들리의 이야기이다. 아마도 신경민이라는 이름은 에드워드 머로와 함께 기억될 것이다.


캐나다의 경제사학자였던 해럴드 이니스(Harold Innis)는 일찍이 매체기술의 힘을 강조한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는 사람의 생각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매체기술의 발달에 따라 사회가 변화한다는 ‘매체 결정론’을 주장했다. 사람들이 생각을 주고받는 것을 뜻하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어원은 ‘공유’나 ‘공통’을 뜻하는 라틴어 ‘코무니스(communis)’이다. 공동체를 뜻하는 ‘코뮨(commune)’도 당연히 이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을 주고받는 데서 사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매체기술의 발달과 함께 사회는 크게 변화하였다. 각종 생산기술이나 운송기술만이 아니라 매체기술도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핵심 기술이다. 이니스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니스는 사회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매체기술의 힘을 강조했다. 예컨대 그는 영토의 크기는 매체기술에 의해 규정된다는 식의 명제를 제시했다. 이것도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우리는 이에 앞서서 더욱 근원적인 매체기술의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라틴어 어원이 잘 보여주듯이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기술인 매체기술은 결국 사회를 형성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탈산업사회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에 따르면, “괴테(Goethe)는 인간 공동체의 기초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였다.” 글을 잘 지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박식했던 괴테는 매체기술의 중요성을 정확히 이해했던 모양이다. 언론매체를 장악하는 것은 공동체를 장악하는 것이다. 언론매체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공동체가 존재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집권에 따라 이 나라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갈수록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공동체와 직결된 언론매체와 관련해서 더욱 그렇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를 크게 완화해서 투기의 달인인 ‘강부자’를 기쁘게 하는 반면에 빈민층과 서민층은 물론이고 중산층조차 크게 괴롭게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 사회의 공동체성을 계속 약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모든 언론매체를 완전히 장악해서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말하는 것조차 강력히 통제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공동체성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강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알고 말할 자유조차 강력히 억압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기술은 방송, 인터넷 휴대전화의 세 가지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세 가지 모두에 대해 강력한 억압책을 강행하고 있다. 방송법 개악, 정보통신망법 개악, 그리고 통신비밀보호법 개악의 시도는 명명백백한 증거이다. 방송법 개악의 핵심은 방송을 이미 ‘보수 언론’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재벌과 족벌이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정보통신망법 개악의 핵심은 시민들이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소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며, 통신비밀보호법 개악의 핵심은 국가정보원에 시민들의 휴대전화 이용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시도하는 대로 세 가지 법의 개악이 이루어진다면, 2008년에 세계 47위로 추락한 이 나라의 언론자유 지수는 아예 세계 100위 밖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언론매체를 장악하기 위해 강행하고 있는 것은 매체기술과 관련된 세 가지 법의 개악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모든 언론매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싶어 하고, 그렇게 해서 자기들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정연주 사장을 쫓아낸 뒤에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그 좋은 예이다.


KBS에서는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계속 강제로 내쫓으려 하고, 또한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프로그램들을 계속 없애려 하고 있다. 김현석 기자를 비롯한 기자들을 터무니없게 쫓아내려고 했다가 안팎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자 취소했고, <시사투나잇>처럼 훌륭한 시사프로그램을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없애 버렸다. 지금의 KBS를 과연 정상적인 방송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좋은 기자들을 쫓아내고 좋은 프로그램들을 없애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KBS는 계속 이상한 프로그램들을 방영해서 큰 논란을 빚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서 방영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 프로그램은 그 좋은 예이다. 조사 대상을 갑자기 대선 패널로 바꿔서 이루어진 이 조사 결과를 두고 KBS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상승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KBS를 두고 <대한뉴스>가 돌아왔다거나 ‘방관자 저널리즘’이 횡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좀 더 최근에는 <추적 60분>의 교육 개혁 시리즈가 사실상 ‘사교육 홍보물’과 다름없었다는 비판마저 받고 있다. KBS의 간판 시사프로그램마저 커다란 불신과 의혹의 대상으로 전락한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KBS는 윤도현의 출연마저 봉쇄했다. 윤도현은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이다. 그와 그의 밴드는 음악의 면에서 ‘한류’를 대표하는 스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를 이 나라의 공영방송에서는 이제 볼 수가 없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그의 ‘잘못’은 작년에 광우병 반대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는 것과 최근에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멋진 노래를 발표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 KBS는 최근 가수 윤도현 씨의 출연을 봉쇄했다. 그가 촛불 집회에 참여하고, 최근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노래를 발표했다는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뉴시스


이렇듯 황당한 일이 이제는 마침내 문화방송에서도 일어나게 되었다. 신경민 앵커의 ‘퇴출’이 그것이며, 개그우먼 김미화의 ‘퇴출’ 시도가 그것이다. 신경민, 김미화, 윤도현의 앞에는 이미 정연주와 ‘미네르바’가 있었다. 신경민, 김미화, 윤도현이 끝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또 누가 쫓겨날 것이며, 누가 출연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어떤 프로그램들이 없어질 것인가?


‘미네르바’가 유언비어를 유포해서 구속되고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살아야 할 아주 나쁜 ‘죄인’이라면, 이른바 ‘747’의 성공을 확신에 차서 공언하고 ‘대운하’를 대박 사업으로 선전한 자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미네르바’는 구속되고, 신경민, 김미화, 윤도현은 ‘퇴출’되고,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강력한 규제권을 휘두르고 있다.


이 나라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갈수록 크게 어려워지고 있다. 2009년 3월 현재, 미국의 <포린폴리시>는 이 나라를 ‘소리 없는 인터넷 검열 국가’로 선정했고, 세계적인 NGO인 ‘국경없는 기자회’는 이 나라를 인터넷의 자유와 관련해서 ‘감시 대상 국가’로 선정했다.


이 나라는 이미 히틀러나 전두환을 떠올리는 게 당연한 상태에 이르러 있는 것 같다. 그리워라, 자유여.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자유여
누가 너를 격렬히 뜯어먹고 있구나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이며
언론의 자유는 사회의 기본이다
누가 이 자유를 억압하는가


무지한 자들이 지혜를 구속하고
한심한 자들이 인재를 탄압하네


지금 이곳은 맹렬히 후진화하는 중
그래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아
촛불을 들어 어둠을 밝혀 나아간다



홍성태 / 상지대 교수·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 이 글은 2009. 4. 14. 프레시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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