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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 2014.12.01
  • 1302

경제와 경제학의 숨바꼭질 속에서 

한국 경제현실의 아킬레스건(腱)을 투시하던 한 일생을 되새기며

: 동촌 주종환 선생님을 추모하며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 참여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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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2일 오후 2시 조금 전, 참여사회연구소의 후배 학자들이 연구소의 간판 저널인 『시민과 세계』의 진로와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후원을 받은 독일-한국 평화복지국가체제의 비교연구를 주제로 한창 토론을 벌이던 중 연구소의 초대 이사장이시자 현재 명예 이사장이신 동촌 주종환 선생님의 부음을 접했습니다. 

 

후학 중 누구도 선생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또 고령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평소 정정하던 분이신지라, 갑작스러운 부음에 모두 말을 잊었습니다. 그래도 후학들이 낱낱이 흩어진 상태가 아니라, 선생님이 평소 바라던 모습대로 학문적-시민적 담론에 열중하던 중에서나마 부음을 듣게 되었고, 마치 애초에 선생님의 부음을 듣기 위해 모임을 연 듯한 모양새를 이루어 그나마 미안함을 덜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 모임이 끝나자마자 바로 빈소에 달려와 아직 조화도 장식되지 않은 채 이제 겨우 영정만 올려진 제단을 향해 예를 올리면서 그렇게 알렸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주무시듯 평안하게 이 땅을 떠나셔도 될 만큼, 이 땅의 후학들은 이렇게 선생님이 펼쳐놓으신 자리에서 여전히 우리의 학문과 우리의 현실을 고민하며 분투하고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는, 선생님이 이 땅을 떠나실 수도 있고 또 언젠가는 그런 날이 꼭 옴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에 신경 쓸 틈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여전히 선생님의 뒤를 따라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을 그렇게 고투하게 만들었던 이 땅의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 이렇게 모였더랬습니다. 모양도 갖추지 않은 제단에 예를 올리고 나와  길을 가던 중에 6․25 전쟁에서 최근에 이르는 선생님의 발자취를 떠올리면서 그제야 선생님이 얼마나 어려운 자리를 지켜오셨는지 세삼 가슴에 새겨지며 울먹임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농민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겪었던 선생님은 일제 치하에서 식민지 교육을 받고 해방 정국에서 서울대학교 문과개 예과를 다니다가 5․10선거 직후 일본으로 밀항하여 다시 동경대에 입학시험을 치고 들어갈 만큼 배움과 학문에 대한 열정이 컸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조국에 돌아와 송인상 장관이 주도하던 부흥부 산업개발위원회 농업 부문 보좌위원으로 일하면서 4․19 혁명을 거쳐 그 뒤의 군사정권 시절까지 이 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던 ‘경제개발3개년계획’ 중 농림수산 분야의 계획을 초안했습니다. 

 

그러나 5․16 쿠데타의 부당함에 깊이 절망하고 다시 복귀한 대학과 학계에서 선생님의 ‘한국적 경제학’은 신고전파 경제학이 정통을 자임하는 한국 경제학계에서 경제학이 놓치고 있는 한국 경제현실의 치명적 모순을 일깨우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경제학이 경제로써 응당 행복해져야 할 시민의 생활을 도외시할 때 시장에서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가를 선생님은 깊은 인간애와 세밀한 관찰력으로 부각시켰습니다. 그리고 시대마다 제기된 이 현실의 경제문제에 대해 경제학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비껴가서는 안되었을 여러 가지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은 저곡가․저노임으로 농민과 노동자의 수탈에 기초했던 경제발전에는 대단히 비판적인 거리를 취하였고, 1970년대에는 비록 박정희 정권 밑에서이기는 했지만 이중곡가제를 제창하여 농민들의 생활 수준 개선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대한민국 농촌은 여전히 존립의 기로에서 자유무역의 광풍 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탄식하였습니다. 

 

그 뒤에도 선생님은 1980년대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의 문제점을 예견하여 일찍이 토지공개념을 주창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제안은 거의 수용되지 않은 채 지금 부동산 문제는 각종 가계 부채의 가장 끈질긴 족쇄로 거꾸로 발전하여 우리 대한민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고질병으로 정착하고 있습니다.

 

우리 후학들은 경제와 경제학이 숨바꼭질을 하는 혼란의 와중에서 한국 경제현실의 아킬레스건을 투시하는 것으로 일관되었던 선생님 발자취에 깊은 존경을 갖고 모여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지적하였던 한국 근대 경제의 아킬레스건들은 이제 21세기 들어 후학들의 그 모든 지혜와 실천 역량을 모아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될, 우리 국가의 심장부를 찌르고 드는 가시가 되어 있습니다. 이 가시가 언제 우리의 심장을 파열시킬지 누구도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엄청난 우리나라의 국가적 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양극화를 확대시키는 재벌중심의 경제와 가혹한 경쟁체제가 압박해 오는 시민생활의 불안함을 극복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국가와 민족이 수세기 안에 소멸할지 모른다는 예언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부를 쌓는 동안 그 부의 허망함을 끊임없이 파헤치고 대안을 제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몸을 던지는 것도 마다 않으셨던 선생님의 일생은 이제 우리 후학들과 시민들이 우리의 운명을 생각할 때 반드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 귀중한 유언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그토록 살지우고자 했던 이 나라와 민족의 풍요와 화합을 우리가 기필코 이루어내겠습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다시 뵈올 때 그때는 우리의 일생을 적어 선생님께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편히 쉬시며 다사롭게 굽어살펴 주십시오. 다시 한 번 선생님의 일생에 경의를 표하며 다시 살아남은 자의 의무를 다지렵니다.

 

갑오년 2014년 11월 24일 

참여사회연구소의 회원을 대신하여 소장 홍윤기 삼가 올립니다.

 

※ 이 글은 주종환 선생님 추모식때 참여사회연구소 홍윤기 소장이 낭독한 글입니다.

[궂긴 소식]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y3oc4N)

[추모사] 시대를 앞서간 '큰 스승'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 (*더 보기 > http://bit.ly/1y8rA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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