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2-03-21   1420

분식회계를 근절하려면 증권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해야합니다.

대통령님,

최근 대기업들이 포함된 분식회계 사건이 또 터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분식회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감독당국은 분식회계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우그룹 사태에 이어 동아건설 분식회계가 터진 2001년에도 금감원은 “분식회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기업들의 뿌리 깊은 분식회계 관행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당시 금감원은 분식회계 및 부실감사 책임자에 대한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고 상호감리제도를 실시하며 행정제재와 형사고발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2000회계연도까지의 분식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는 충격적인 처방까지 내놓았습니다.

이번에도 금감원은 분식회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다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하였습니다.

분식회계가 횡행해온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그동안 금감원의 제재가 솜방망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분식회계에 대한 행정적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금감원이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분식회계가 계속되는 것은 행정 제재만으로는 분식회계 관행을 근절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에 적발된 사건을 보면 분식회계 수법이 지능화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기업과 회계법인이 투명한 회계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규제를 피해 분식을 저지를 묘책만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이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정부의 채

찍도 소용이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지난 8일 금융감독위원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주가조작, 분식회계 등 증권시장의 불공정거래행위를 철저히 단속할 것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씀대로 선의의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가가 저평가되는 요인이 되고 있는 증권시장 불공정행위는 하루 속히 퇴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아무리 특단의 조치를 내놓더라도, 기업이 분식회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득이 실보다 많다고 생각한다면 분식회계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 감독당국이 교묘한 수법의 주가조작 행위를 적발해내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주가조작을 통한 일확천금의 유혹은 사그러들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민·형사적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한번 불법행위를 저지르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기업도 살 수 있고, 투자자의 권익도 보호될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엔론사 사건의 경우에도, 분식 회계에 연루되어 있는 세계 5위의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이 다수의 집단소송을 포함한 각종 민·형사소송으로 인해 파산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특히 집단소송제도가 증권시장 불공정행위를 막는데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2000년 말 참여연대와 일부 국회의원들이 각각 증권집단소송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고, 정부도 작년 말 증권집단소송법안을 상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국회 법사위원회는 아직까지 법안을 심의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국회에 상정한 법안에는 시행일이 4월 1일로 되어 있는데, 지난 2월말 법사위에서는 공청회를 개최하여 논의한다는 것만 결정해놓고 아직까지 공청회 일정조차 잡지 않고 있습니다. 증권집단소송제 도입의 시급성을 감안할 때 법사위가 이렇듯 늑장을 부리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증권집단소송제도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정부가 국회에 법안을 상정하기까지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국회에서도 증권집단소송법안은 여전히 난관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15대 국회에도 증권집단소송법안이 의원 발의로 상정되었지만 한번도 심의되지 않고 회기종료와 함께 자동폐기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우려가 더 커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며 결국 법안을 국회에 상정한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부가 증권집단소송법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발벗고 나설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지난 2월 국회 파행 상황에서도 은행민영화 일정 때문에 긴급하다는 이유로 은행법 개정안은 해당 상임위를 통과하였습니다. 증권집단소송제도 또한 그 시급성을 따진다면 은행법 개정 못지 않습니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투자자들의 불신이 증폭되어있는 현 상황에서는 시장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근본적이고 시급한 대책인데,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데 청신호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

주가조작, 분식회계 등 증권 시장 불공정행위를 근절해야한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하루 속히 증권집단소송법의 제정으로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이승희(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