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5-08-03   661

견제받지 않는 권력, 삼성을 누가 어떻게 감시할 것인가

참여연대 ‘삼성보고서’ 발간… 왜 ‘삼성보고서’인가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1987년 이후 역전된 국가와 기업의 관계를 대단히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그중에서도 삼성의 독주는 우뚝하다. 보수적으로 이름이 높은 한 신문마저 ‘삼성의 나라’라는 칼럼을 싣고 문제를 제기할 정도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중앙일보 여론 조사에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신뢰할 만한 집단으로 삼성이 선정되더니만, 급기야 서울신문이 선정한 ‘한국을 움직이는 101인’에 이건희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 황우석 서울대 교수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 1위, 이건희

이처럼 특정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문제와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는 삼성과 관련된 법 집행(검찰, 법원, 금감위)의 영역에서 도드라진다. 삼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되지 않고 지체되는 ‘법 집행의 자의적 유예와 왜곡된 집행’이 만연하고 하는 것이다.

2000년 5월 법학교수 43인이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삼성에버랜드의 이사 등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였다. 에버랜드의 이사들이 1996년 10월 이 회장의 아들 이재용 씨에게 7,700원이라는 저가에 전환사채를 발행해주는 방법으로 에버랜드 지배주주의 권한을 이재용 씨에게 넘기면서 주주들과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 이유이다. 일반인에게는 놀이기구와 야외 수영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삼성에버랜드는 실제로 삼성 그룹 안에서는 지주회사 노릇을 한다.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 대표적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불과 1년 뒤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이 중앙일보로부터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인수한 가격이 10만 원 대였다라는 점만 보아도 이사들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사실은 명료해 보인다.

그러나 이 간단한 ‘1차 방정식’이 검찰에게는 ‘고차원 방정식’쯤 되었나보다. 검찰은 법학교수들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다가 2003년 12월 공소시효 직전에 이건희 회장 등을 제외하고 2명의 임원 만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기소했다. 법원 역시 선고를 위한 결심공판을 앞두고 대단히 이례적으로 재판을 재개하는 등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종결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만약 이 사건에 재벌이 관련되어 있지 않았더라도, 또 만약 그 재벌이 삼성이 아니었더라도 이렇게 긴 시간이 걸렸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장악한 권력, 삼성공화국

이런 현상들은 삼성이 자신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작년 세계에서 9개 뿐이라는 당기순이익 10억 달러(10조 원)클럽에 가입하였고, 삼성그룹의 14개 상장 계열사의 시가총액은 107조 원으로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 475조 원의 22.5%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 외환위기 이전의 습관대로 ‘5대 재벌’이란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삼성과 기타 군소 재벌이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러한 삼성그룹의 거대한 경제력이 삼성공화국 권력의 원천인 것이다. 정치인이 투표라는 정당성의 기제에 의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삼성은 민주적 정당성없이 그가 갖고 있는 자금과 이를 바탕으로 끌어모은 사람들에 근거를 두고 권력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부쩍 능력 있는 법조인과 관료들이 삼성으로 몰려드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직접 고용된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내로라 하는 인물들이 삼성이 운영하는 재단의 이사로, 사외이사로 삼성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이 필요하면 수시로 의사를 교환하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비공식적인 관계가 지연, 학연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할 의회와 정부, 사법부의 결정이 특정기업의 이익에 밀려 왜곡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과 관련된 민·형사 사건이나 행정사건 어느 것 하나 법과 원칙에 따라 제대로 해결되는 것이 없다. 설사 운이 나빠 위법 행위가 적발되더라도 이들은 조사 단계부터 불구속 수사나 무혐의 처분의 특혜를 받고, 진짜 억세게 운이 나빠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실형을 받지 않고, 결국에는 사면을 받아 나온다. 최근 불법 대선 자금을 준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삼성그룹 임원의 예를 보라.

이처럼 한 기업의 입김대로 국가가 좌지우지 되는 것은 국민 경제 전체의 입장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본주의의 생명력은 시장에서의 공정경쟁이 영속적으로 보장될 때 유지된다. 그러나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몰락을 가져올 무한경쟁을 반길 이유가 없다. 따라서 기업은 성패 여부가 불확실한 혁신이나 위험 관리(예컨대 지배구조개선) 대신 로비와 같은 지대추구행위(경영권의 불법세습)를 좇게 된다. 그 결과 그 기업과 사회 전체의 경쟁력은 약화된다. 지금 삼성이 그런 징조를 보이고 있다. 삼성이 지난 10여년동안 영입한 공직자 10명중 8명이 기업의 직접적인 부가가치 생산과는 무관한 감독기구와 사법기구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거대 경제 권력에 위협받는 민주주의

상대방의 의중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바를 달성할 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면에서 삼성그룹은 현재 아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통령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에 의해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대신 삼성은 이들로부터 어떠한 권력도 위임받은 바 없다는 것이다.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생겨난 권력은 선출단계에서는 국민들의 투표행위에 의해, 그리고 집행단계에서는 의회, 검찰 등 여러 권력 감시장치의 감사와 견제를 받는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그 어떠한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다. 이제 묻는다. 이와같이 견제받지 않은 권력, 삼성을 누가 어떻게 감시할 것인가.

참여연대가 오늘 내놓은 삼성보고서에는 이러한 답을 마련하기 위한 실증적 근거자료들이 들어있다. 삼성의 힘의 금원은 어디이고, 이러한 거대한 힘이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가하에 대한 답변이 있다. 오늘 제시된 자료들은 비록 자료와 능력의 한계상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이러한 서투른 노력과 작업이라도 의미가 있을 정도로 우리사회의 삼성그룹에 대한 이해는 일천하다. 결국 ‘삼성공화국’ 논란에는 결국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권력이 87년 이후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에 기대어 성취한 민주주의의 성과들을 훼손할 지도 모른다는 본증적인 두려움이 녹아져 있는 것이다. 오늘 발간되는 삼성보고서가 삼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내고 이후 삼성공화국 현상에 대한 차분한 성찰과 대안제시를 위한 기초 자료로 사용되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8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최한수 경제개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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