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06-20   876

<안국동窓>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감춰져 있던 여러 ‘고급 정보’들이 공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정치인들의 인간성마저 드러나고 있다. 시민들로서는 크게 반길 일이 아닐 수 없다. 꼭꼭 감춰져 있던 고급정보들이 조금 드러나고, 쉽게 알 수 없는 정치인들의 인간성마저 약간 알 수 있게 되니, 이제야 비로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조건들이 어느 정도 마련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한나라당 자체가 자신의 문제를 크게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이 김선일씨의 처참한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2007년 6월 19일 대전에서 열린 ‘제3차 정책토론회’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김선일씨가 “노무현 대통령, 나는 살고 싶습니다”며 절규하는 동영상을 대형 스크린으로 내보냈다. 결국 김선일씨는 2004년 6월 22일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한나라당의 나경원 대변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영상의 취지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한 외교, 안보정책을 비판하자는 것이다. 고 김선일 씨 부분은 당시 정부가 그런 점에 대해 충분하게 챙기지 못했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한 외교, 안보정책’에 한나라당은 책임이 없는가? 김선일씨의 처참한 죽음은 미국의 위세에 눌린 무모한 이라크 파병 때문이 아니었는가? 그리고 그것은 한나라당이 가장 강력히 요구했던 정책이 아니었는가?

나경원 대변인의 말은 한나라당이 대통령 당선을 바라보는 제1 야당답지 않게 궁색한 ‘오리발 정치’, ‘덮어씌우기 정치’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나경원 대변인은 김선일씨가 죽음을 앞두고 “한나라당, 나는 살고 싶습니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나라당은 아무런 책임이 없고 오직 노무현 대통령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나라당이 정말 이런 수준이라면, 참으로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한나라당이 당연한 발전을 좀처럼 이루지 못하는 데에는 이른바 ‘수구성’이라는 문제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기억’의 문제가 있다. 자기가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시민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으니 몇 년 지난 일에 대해 사람들은 벌써 다 잊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는 ‘인터넷’이라는 ‘지구적 기억장치’가 있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김선일씨의 불행한 죽음을 전후한 시기에 한나라당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사실 김선일씨가 죽기 전에 이라크에서 한국인 목사 7명이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시민사회에서 강력히 주장했듯이, 이 사건은 명백한 ‘불행의 전조’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2004년 4월 9일 한나라당은 “이라크 현지에서 한국인 목사 7명이 납치됐다가 풀려나는 등 급박한 이라크 사태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이라크 파병문제의 선거 쟁점화를 경계”하는 태도를 취했다.

얼마 뒤 김선일씨가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건을 둘러싸고 치열한 정치공방이 벌어졌다. 똑같은 책임을 지고 있는 한나라당이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여당을 강력히 공격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 선봉에 송영선 의원이 있었다. 당시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바로 3년 전 이맘 때 송영선 의원이 했던 말을 되풀이한 것일 뿐이다.

한나라, 盧에게 모든 책임 떠넘기며 “파병은 강행해야”

프레시안 | 기사입력 2004-06-23 16:56

지난해 파병문제가 제기됐을 때부터 ‘무조건 파병론자’로 유명한 송영선 의원은 23일 의원총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자는 대통령”이라며 “파병을 결정한 대통령은 자신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송 의원은 “한나라당이 파병을 찬성한 것이 원죄가 아니다”라고 덧붙여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송영선 의원은 한나라당에서도 유별난 사례였을까? 그렇지 않다. 권오을 의원과 같은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나라당은 분명히 ‘무조건 파병당’의 모습을 보였다. 김선일 납치사건이 일어나자 ‘모든 외교적 노력’이니 ‘초당적 대처’니 외치면서도 한나라당은 ‘파병 강행’을 촉구했다. ‘파병 철회’를 요구한 납치범들에게 ‘파병 강행’을 주장했던 것이다. 한나라당은 세계 최강의 미국조차 쩔쩔매는 이라크에서 한국은 아무 해도 입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이 무슨 ‘용가리 통뼈’인가?

결국 예견된 피해를 입자 한나라당은 이번에는 전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핏대를 올리고 나섰다.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 많다고 해도 이런 식의 ‘덮어씌우기’는 자기의 정치적 책임을 부인하는 것으로서 더욱 나쁜 정치적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잠시 2004년 7월 22일로 돌아가 보자. 김선일씨가 살해되고 국회는 ‘김선일 국정조사 특위’를 꾸려서 이라크를 방문했다. 2004년 7월 22일 귀국한 ‘김선일 특위’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제2, 제3의 김선일씨 사건 발생할 수 있다”

프레시안 | 기사입력 2004-07-22 18:20

열린우리당 김성곤 단장은 “김선일씨 살해사건을 계기로 이라크 국민들 사이에 과격 무장단체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상당히 높아져 있다”며 “많은 이라크 국민들을 접촉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최우선으로 원하는 것은 치안의 안정”이라고 말했다. 김 단장은 “만나본 이라크 주민들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긍정적”이라며 “내가 보기엔 치안의 안정을 위해 임시정부가 안정될 때까지 다국적군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도 “이라크 주민들이 미국에 대한 반감은 가지고 있고 이라크가 하루빨리 주권을 정착시켜 안정과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깊게 가지고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다국적군이 치안과 평화,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 주민들은 한국에 대해서도 긍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고 덧붙였다.

당시 김 단장은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제2, 제3의 김선일씨 사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렇듯 이라크의 상황을 크게 우려하면서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무조건 파병’을 계속 주장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모든 면에서 싸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노한동맹’, 즉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사실상 굳건한 동맹을 맺은 사안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두가지 예가 바로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 체결’이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론’은 이라크 파병으로 형성된 ‘노한동맹’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라크 파병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과도 정책적 연대가 얼마든지 가능하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라크 파병과 김선일씨 죽음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과 똑같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있다. 정치적 책임의 면에서만 보더라도 한나라당이 김선일씨의 처참한 죽음을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정치적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으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한나라당이 김선일씨 살해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또 하나의 정치적 사건을 접하고 다시금 ‘인간에 대한 예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사회적 수단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 ‘시궁창 정치’는 이미 정치로서 가치를 완전히 잃은 것이다. ‘시궁창 정치’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시궁창으로 몰아넣는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기 위해 한나라당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그 결과 처참한 죽음을 맞은 김선일씨를 다시금 괴롭히고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을 새삼 키우게 되었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거대 정당의 ‘정책토론회’가 정치적 책임은 물론이고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다니, 참으로 유감스럽다. 곧 김선일씨의 3주기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라도 열어야 하지 않을까?

홍성태 (상지대 교수,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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