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12-03   875

<통인동窓> 삼성: 파국으로 치닫는 태양마차

The Untouchables

필자는 이 글을 완전히 새로 쓰고 있다. 마감 독촉이 성화같지만 오늘(11월 26일) 또 다시 세상은 변했다. 지난 10월 29일 이래 사제단과 민변 그리고 참여연대가 번갈아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세상은 변했다. 특히 오늘 기자회견 내용은 가히 충격과 경악 그 자체다. 삼성이 드디어 백화점 사업에 진출한 것인가? 기자회견 내용이 사실이라면 삼성의 행동은 비리 백화점이고 삼성 수뇌부는 폭력조직에 다름 아니다.

수조원의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가 일상처럼 횡행하고 투자자를 위해 이를 감시해야 할 회계법인은 한통속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비자금 조성 서류를 가지고 미국으로 도망친 강모씨에 대한 처리방안이다. 어떻게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도 아닌데 “죽여 버릴까” 라는 것을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단 말인가? 국가권력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삼성 직원이 공정위 조사관을 때린 얘기는 들어 봤어도, 법원 사무관을 매수하여 재판 서류를 빼내 증거를 인멸할 정도까지 갔다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마치 미국 영화 “The Untouchables”에 나오는 알 카포네의 활약상(?)을 보는 듯하다.

경박단소(輕薄短小)에서 수렴청정(垂簾聽政)까지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상식에 의하면 삼성은 영리하지만 간이 작은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통 큰 일은 잘 못하고 주로 안전한 사업에서 작지만 꾸준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외환위기 이전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輕薄短小]’ 물건을 만드는 삼성은 ‘무겁고, 두껍고, 길고, 큰[重厚長大]’ 물건을 만드는 현대와 종종 대비를 이루곤 했다. 현대가 자동차를 만들 때, 삼성은 밀가루와 설탕을 만들었고, 현대가 생산재를 만들 때 삼성은 소비재를 만들었다.

삼성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정치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 정치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의숙(義塾)을 만들겠다고 하고, 현대의 정주영 회장과 그 아들인 정몽준 의원이 대통령에 출마할 때도 삼성은 그림자처럼 숨어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정주영 회장이라는 ‘업보’ 때문에 현대가 고초를 겪고, 상대적으로 삼성이 잘 나갈 때에도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다만 뒤에서 슬그머니 하고 싶은 일을 챙겼을 뿐이다. 승용차 시장에는 절대로 진출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찢고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 것도 이 때 일이고, 요즘 논란의 핵이 되고 있는 에버랜드 불법 전환사채 발행도 이 때의 일이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듯 했다. 어쩌면 외환위기라는 ‘불의의 사고’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은 그대로 넘어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뜻밖에 외환위기가 터지고 김대중이라는 예상 밖의 인물이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초창기 온갖 재벌개혁이 몰아쳤고, 이 와중에 대우는 유탄을 맞아 붕괴하고 말았다. 현대가 대북사업을 빌미로 한창 잘 나가던 이 때 삼성은 삼성자동차 부채처리 문제로 사선을 넘나들 수밖에 없었다. 이건희 회장은 본인이 고집했던 자동차 사업이 쫄딱 망한 것을 마무리하기 위해 삼성생명 주식을 내놓고, 이재용 상무는 경영수업 차 벌려 보았던 e삼성 비즈니스가 쫄딱 망해서 계열사에게 그 손실을 떠넘긴 것도 이 때였다.

정치에 대한 삼성의 태도가 변화한 것은 아마 이 무렵 부근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뒤에서 선거자금이나 대주던 것에 더해 상당히 본격적으로 각 대선후보에 접근했던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은인자중하던 삼성이 수렴청정에 나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다른 분야에서는 개혁적이었을 지 모르지만 경제 분야에 관한 한 철저하게 보수적이었다. 약간이라도 개혁성향을 보였던 역전의 ‘동지’들은 삼성과 일합도 제대로 겨누지 못하고 그대로 권부에서 쫓겨났다. 특히 삼성이 국가의 온갖 법질서와 충돌하면서 삼성을 보호해야 할 정치권력의 필요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던 것 같다. 이회장의 친인척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대통령 출마 가능성이 암암리에 떠돌던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왜 그리고 두 가지 가설

경박단소의 삼성이 국가 자체를 쥐락펴락 하는 통 큰 일을 추구하게 된 동기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리 외환위기 때 망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먹고 살 일이 걱정일 정도는 아니었다. 하이닉스가 함께 망해 주면서 삼성전자의 입지는 오히려 더 강화된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밤을 새워 연구한 연구진의 공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왜 삼성은 권력에의 길을 선택했을까? 어쩌면 대우와 현대가 그 길을 선택했던 것과 동일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업하는 사람이 딸이 많으면 의사 사위와 검사 사위를 들인다는 말이 있듯이 사업을 편하게 하기 위해 정치권력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 사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권력 정도야 매우 손쉽고 값싸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철마다 정치권에 적당히 돈을 대고, 인허가 담당 공무원과 감독관청 특히 세무서에 섭섭지 않게(?) 돈을 뿌리면 충분히 사업할 수 있다. 언론이 찌그락째그락 하면 적당히 광고 내주면 된다. 과거부터 많은 기업들이 그래왔었다.

그러나 삼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보다 본격적으로 국가권력의 핵심으로 진출하려고 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필자는 그 확실한 해답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만 두 가지 정도의 가설은 가지고 있다. 그 두 가설은 모두 외환위기와 관련이 크다. 첫째 가설은 경영권 승계 작업의 파탄이다. 어쩌면 당초 예상대로였다면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97년 말에 외환위기가 터지고, 전술한 바와 같이 예상에 없는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꼬이게 된 것은 아닐까? 2000년 6월에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의 고발은 삼성으로서는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그리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법무팀장이 된 경위도 이 사건 때문이다. 결국 이 때부터 삼성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외환위기는 또 다른 측면에서 삼성에게 권력에의 길을 부추겼을 수 있다. 분명 외환위기는 삼성에게 큰 시련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삼성 자동차라는 블랙홀 때문에 그룹 전체가 결딴나거나 적어도 이건희 회장이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삼성은 어찌어찌하여 이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고비를 넘기고 주위를 보니 대우는 무너지고, 현대는 골병이 들어 있었다. 삼성만이 유일하게 건재한 재벌이 된 것이다. LG가 있었지만 현대처럼 겁나는 경쟁상대는 아니었다. 유일한 경제 권력이 된 삼성이 국가 권력 그 자체를 추구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일 수도 있다.

파에톤과 태양마차

그리스 신화에 파에톤이라는 소년이 나온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사생아인 그는 마치 유리왕자가 동명왕 주몽을 찾아 가듯, 아버지 헬리오스를 찾아간다. 그리고 아들임을 확인 받고자 주제넘게도 태양마차를 몰 수 있게 해 달라고 떼를 쓴다. 그러나 거친 천마를 통제하기에는 파에톤은 너무도 조그맣고 소심한 소년에 불과했다. 그는 하늘과 땅을 헤집으며 온갖 분란을 일으키다가 결국 제우스가 던진 벼락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만다.

최근 삼성의 문제를 바라보는 필자의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영상이 바로 불이 훨훨 타오르는 태양마차에 탄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파에톤의 모습이다. 천마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에 따라 태양마차가 지나간 길은 그대로 초토화되고 만다.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파에톤이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서서히 벼락을 드는 제우스 ……

오늘 제4차 양심고백에 더 이상 성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상무의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 적기 거북한 온갖 친인척들의 이름이 무차별적으로 튀어 나왔다. 천마는 이미 고삐가 풀려 버린 것이다. 삼성그룹은 오늘 기자회견과 관련하여 모든 의혹을 부인했지만 그것으로 상황이 통제된다고 믿는 사람은 삼성의 임직원을 포함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제우스의 심판뿐이다. 그 어느 누구의 의지도 이것을 막을 수는 없다. 때때로 역사의 흐름은 잔인할 정도로 도도하다. 잔재주가 요술을 부릴 수 있는 때가 있지만 큰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이건희 회장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동안 삼성을 지탱해 온 이학수-김인주 체제는 벌써 붕괴했다. 세간의 시선은 이미 본인과 그 가족에게로 향하고 있다. 모든 사람을 다 살리는 길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제 중요한 것은 희생을 최소화하고 대한민국의 자랑인 기업을 보전하는 길이다. 무엇이 진정한 용기인지 이제 보여줄 때가 되었다.

* 이 칼럼은 월간 <참여사회>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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