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8-02-01   1218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6] 우리 사회에서도 패자부활전을 보고 싶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시리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새 정부의 기조 및 정책의 골간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는 ‘MB에게 보내는 편지’ 제하의 공개편지를 통해 새 정부가 각 분야에서 역점을 둬야할 중점 사항 등을 정리해 10여차례에 걸쳐 내보낼 예정입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이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그 여섯 번째 글은 이헌욱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정책사업단장(변호사)이 썼습니다.

이명박 당선인께.

“금융소외계층은 금융대출, 자기명의의 사업, 취업 등에서 심각한 제한을 받아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렵고 빈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금융서비스 이용자 3,463만명 중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7~10등급에 해당하는 720만명 금융소외자의 재기를 위한 특별대책이 필요하다.”

“신용회복기금을 설치하여 금융소외자의 채무신고를 받고 신고된 채무는 신용회복기금에서 매입. 개인별 협의를 통해 상환계획을 새롭게 수립하여 그 계획에 따라 원금 상환, 이자는 상황에 따라 감면 조치한다. 기존의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와 신규로 파악된 신용회복 지원대상자들의 연체기록을 말소한다. 자활지원을 위한 교육 및 밀착형 컨설팅을 제공하는 한편, 연체금의 완전상환까지는 신용카드의 발금제한 등의 조치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한다.”

“소액서민대출은행 설립을 지원하여 신용회복자가 창업을 하거나 소액자금이 필요할 때 자금을 지원하고, 창업주치의 제도 등을 운영하여 이들의 자활 및 자립을 촉진. 신용회복기금을 신규로 설치하여 금융기관과 대부업체로부터의 금융소외자에 대한 채권매입과 채무상환 스케줄 재조정 및 소액서민대출은행에 대한 출연을 지원하고 금융소외자에 대한 자립촉진 프로그램 운영한다.”

“금융소외자를 대상으로 하는 악질 고리사채업자들에 의한 폐해를 근절. 사금융 폐해 실태의 일제신고 및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연체된 고금리 사채를 최대한 소액서민신용대출은행의 대출로 전환을 지원한다. 악성 추심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공정채권추심법을 제정하고 불법적 추심행위에 대한 형사적 제재와 함께 민사상 손해배상을 취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이것은 대통령 당선인께서 대선 과정에서 제시한 금융소외자 신용회복특별대책의 개요입니다.






▲ 2007년 9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한법률구조공단 강당에서 열린 신용불량자와의 '타운미팅'에서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신용불량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 2007년 9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한법률구조공단 강당에서 열린 신용불량자와의 ‘타운미팅’에서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신용불량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로마시대, 빚 갚지 않으면 노예로 삼았는데….
몇 주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공적자금 10조원을 투입하여 신용등급 9~10 등급인 금융채무불이행자의 대출원금 및 이자 모두를 탕감해 주는 방안, 500만원 이하 소액 연체자에 대하여 연체기록을 일괄 삭제하는 방안 등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따라 재정 투입을 최소화하고 연체기록은 삭제하지 않는다고도 알려졌습니다.

당선인께서 금융소외계층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필요하고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꼭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신 것은 다행입니다.
그러나 금융소외계층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필요한 제반 여건을 만드는 일은, 외환위기 이후 계속 반복된 신용불량자 대책의 추진 과정에서 명확히 드러난 바와 같이 기본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짚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당선인의 신용회복특별대책의 추진과정에서도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들이 그대로 노정되고 있어 심각히 우려스럽습니다.

고대 로마법에서는 채무를 변제하지 않는 경우, 채권자가 채무자를 노예로 삼거나 살해할 수 있었고, 중세 유럽에서는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보듯이 채무를 변제하지 않는 채무자에게 사사로운 형벌을 가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근대법은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을 엄격히 구분하고,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자본주의가 급격히 발전함에 따라 소비신용의 증대없이는 경제발전을 꾀하기 어려운 신용사회가 도래하게 되었고, 우리사회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소비신용이 급격히 증대하여 소비신용없이는 경제성장을 도모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였습니다. 2007년 2/4분기 개인부문 금융부채는 699.1조원에 달하여 국내총생산의 80% 수준에 일본의 70%보다 높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가계 부문의 저축 성향을 나타내는 국민 순저축률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3.2%였으나 2006년 3.5%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개인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998년 이후 꾸준히 상승하여 2005년 말 현재 139.6%로 2001년부터 미국보다 높아졌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과 비교할 때 소득에 비해 부채가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그만큼 가계의 상환능력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개인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빠르게 상승하다가 2004년까지는 정체하였으나 2005년에 다소 상승하여 52.9%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비율 또한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약 20%포인트 정도 높고 일본(2006. 6. 현재 26%), 영국(2003. 12. 현재 35%), 대만(2003. 12. 현재 17%)보다도 높아 우리나라 가계가 금융자산으로 금융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우리나라 서민금융 환경을 살펴볼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대부업 시장의 문제입니다. 사채업체를 양성화하기 위하여 대부업법을 제정한 이후 대부업체의 수는 외환위기 이전의 사채업체 3천 개와 비교하여 10배 이상 급증하여 예금은행과의 신용거래가 어려운 다수의 저신용자들을 대부업체가 흡수하고 있습니다.

대부업 시장은 시장규모가 약 18조원~40조원, 이용자 수가 약 328만~450만 명에 이르고, 등록대부업체수가 17,210개(2006.12. 현재), 무등록업체수가 25,000~30,000개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대부업 시장의 공급부분을 보면 외환위기 이전에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은행, 보험, 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이 전주로 등장하였고, 일본계를 비롯한 외국계 대부업체가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대부업 시장의 금리는 2006년 금융감독원 설문조사 결과, 연평균 197%(등록 181%, 무등록 217%)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빚 때문에 파산했다고 사람도 사라지나?

서민금융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금융소외자들에게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하여 필요한 것일 뿐 아니라, 이들의 경제적 새 출발이 인적 자본의 사장을 막고,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며 국가경제 전체의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기업은 파산하면 사라지지만, 개인은 파산하더라도 우리와 같이 살아야 할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이들의 경제적 재기를 막으면 그 부담은 같이 사는 국민 전체가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흔히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라고 쉽게 말하지만, 파산 상태에 처한 개인이 돈을 벌어서 빚을 갚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부실기업에 대한 워크아웃이나 도산절차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파산위기에 처한 개인에 대한 대책은 두 가지 중에 하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파산상태의 개인이 계속 갚지 못할 빚을 지고 살게 하면서 국민이 세금으로 그 사람을 먹여 살리거나, 파산상태의 개인에게 채무재조정을 통하여 경제적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중 후자의 방법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채무자, 채권자, 국민 모두에게 더 이익이 된다는 것은 이미 선진 각국의 경험이 명백히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채무자 우호적인 채무재조정 방안에 대하여는 ‘도덕적 해이’ 논란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단언하건대, 도덕적 해이 논란에 목이 메는 한 금융소외계층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필요한 제반 여건을 만드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경제적 새 출발을 위한 제도 설계에 있어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면 외환위기 당시 금융기관들은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자력갱생했어야 할 것입니다.

신용소비자 보호, 제도적 보완 시급

저는 서민금융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방안으로 ① 신용소비자보호법제의 정비, ② 과중채무자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도 정비, ③ 공적 금융의 역할 제고, ④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의 활성화, ⑤ 사회 안전망의 확충을 제시합니다.

일반 국민들은 금융기관에 대하여 신용소비자로서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지므로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신용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ㆍ제도적 정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이는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여야 하는 국가의 의무에 관한 문제이므로 신용사회의 도래에 따라 당연히 신용소비자보호법제를 정비하였어야 할 것이나 정부는 지금까지 이에 대한 별다른 고민이 없었습니다. 신용소비자보호법제의 정비를 위해서는 신용소비자보호법, 공정채권추심법 등 신용소비자의 권리를 종합적, 체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소비자법적 관점에서의 입법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서민금융에 대한 정책적 대응방안으로 3분법을 제안합니다. 3분법이란 ① 자신의 소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계층, ② 부채가 과다하여 자신의 소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계층, ③ 소득이 없거나 매우 부족한 계층으로 구분하여 각 계층에 따라 대응책을 달리하는 방법입니다.

자신의 소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계층에 대한 서민금융대책은 적절한 금리로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충분합니다. 이들을 위해서는 공적금융의 역할을 높이고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을 육성하며 대안금융을 활성화 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적극 장려하여 추진한 환승론도 이러한 대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빚을 없애주어도 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다음으로 부채가 과다하여 자신의 소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계층, 즉, 적절한 금리로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계층에 대해서는 채무재조정을 통하여 경제적 새 출발의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정책으로는 채무자 우호적인 개인파산과 개인회생 제도의 확립, 채무자 우호적인 사적 채무조정 제도의 활성화, 법률지원상담 시스템 구축을 들 수 있습니다.

과중채무자의 채무재조정은 기업도산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제도적 장치가 기업파산/기업회생 제도인 것처럼 개인도산을 대응하기 위한 기본적인 제도적 장치는 개인파산/개인회생 제도라는 것에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신용회복특별정책이 개인파산/개인회생 제도의 정비와 활성화를 위한 방안 없이 바로 사적채무조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는 개인워크아웃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채무자 우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기존의 신용회복위원회나 배드뱅크처럼 변형된 채권추심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채무자 우호적인 개인파산/개인회생제도를 확립하고 법원의 개인회생제도와 비슷한 정도의 채무 조정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사적 채무조정프로그램이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가계부분의 채무 규모가 국내총생산의 80%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이고 국민순저축률이 3.5%에 불과하다는 것은 개인의 도산이 일상적인 문제가 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고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사회에서 개인도산시스템은 상시적으로 작동하여야 하는 경제 시스템의 일부라고 할 것이므로 일회적인 해결책의 제시보다는 상시적인 개인도산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소득이 없거나 매우 부족하여 채무재조정을 하더라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계층에 대하여는 서민금융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필수적인 금융적 수요에는 재정으로 대응하여야 합니다. 이 계층은 채무재조정을 받더라도 자신의 소득으로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없는 계층이므로 이 계층은 대출을 받더라도 상환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하여 신용을 제공하는 방식의 대응책은 별 의미가 없고, 필수적인 자금에 대하여는 사회복지 차원의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 외에 서민금융정책을 담당할 단일한 정책기관과 상시적인 단속 체계의 구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대부업 감독체계의 문제를 살펴보면 소관부처는 재정경제부이고 감독권한은 지방자치단체에 있습니다.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경험을 가진 기관은 금융감독원인데, 금감원은 대부업체에 대한 직접적인 감독권은 없고 지자체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 검사권을 가질 뿐입니다.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는 대부업 시장의 문제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됩니다.

가계의 위기가 국가 신용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이자제한에 관하여 선진각국의 제한금리 수준을 고려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연리 20% 정도로 이자제한법시행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고, 일본의 사례를 참조하여 대부업법상 특혜금리를 폐지하기 위한 일정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세계 각국의 금융당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응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기본적으로 가계신용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담보대출이 과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보다 안전한 것인지 저는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계는 미국 가계보다 유동자산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가계 신용의 위기는 국가 신용의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다시 금융위기를 겪게 된다면 이번에는 가계신용위기로부터 발생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가계신용위기에 미리 대비하지 않는다면 10년 전의 악몽이 다시 현실이 될 것입니다. 당선인께서 다시 한번 서민금융환경의 개선에 관심을 기울여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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