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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이야기    종로구 통인동 희망1번지

  • 칼럼/기고
  • 2008.02.11
  • 1316
  • 첨부 1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새 정부의 기조 및 정책의 골간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는 'MB에게 보내는 편지' 제하의 공개편지를 통해 새 정부가 각 분야에서 역점을 둬야할 중점 사항 등을 정리해 10여차례에 걸쳐 내보낼 예정입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이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그 열 번째 글은 김진방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위원장(인하대 경제학 교수)이 썼습니다.


많은 국민의 눈과 귀가 당선인에게 쏠려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당선인께서는 거듭 ‘친기업’을 내세우고 계십니다. 인수위원회에서도 ‘친기업’ 발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항간에서는 말이 많습니다. 기대도 많으나 염려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인수위는 ‘친기업’을 ‘기업친화’로 바꿔 쓰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설명도 덧붙입니다. 저로서는 두 어휘 중 어떤 게 더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는 알 듯합니다.



당선인께서는 어떤 이익단체보다 먼저 전경련을 방문하여 재벌그룹 회장들을 만났습니다. 여러 말씀이 있었고, 노사관계에 관한 것도 있었습니다. “강력한 노사분규로 인해 기업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하면서 “새 정부에서는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 것이며, 근본은 준법정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거기서 그렇게 발언함으로써 ‘친기업’은 친자본이고 반노동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당선인께서 민노총 대표와의 만남을 취소했습니다. 민노총 대표가 경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삼성그룹의 임원들이 특별검사의 출석 요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조직적으로 증인을 빼돌리고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는 제보와 보도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당선인 측의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당선인의 공약에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가 들어 있습니다. ‘친기업’은 규제완화이고, 완화할 규제 중의 하나가 출총제라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출총제를 폐지하려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출총제는 대기업집단 소속회사가 국내회사의 주식을 취득하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이고, 주식 취득은 투자가 아닙니다. 주식 취득이 투자로 연결된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출총제를 폐지하려는 것은 출총제가 재벌총수의 지배력 강화 혹은 승계를 방해하기 때문입니까? 만약 그러하다면, 출총제 폐지로 구체화된 ‘친기업’은 친재벌, 반투자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수위원회는 국세청의 보고를 받으면서 “세무조사를 대폭 감축해 기업이 위축되지 않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법무부와 검찰에게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수사로 기업에 장애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품격있는 기업 수사”라는 아리송한 주문도 있었습니다. ‘친기업’의 이름으로 내려진 이러한 지시와 요구가 재벌의 비자금 조성과 로비, 불법상속, 부당내부거래 등과 관련하여 해석될 수 있음을 인수위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재벌의 그러한 행위가 회사와 투자자에 손해를 끼친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인수위원회는 공정거래원회에도 ‘친기업’의 이름으로 지침을 내렸습니다. “기업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공정위가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면서 “구체적인 개선방안 마련을 주문”한 것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들의 담합을 조사하고 처벌하여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합니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서 중소기업에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감시합니다. 대기업집단이 부당내부거래로 공정경쟁을 해치지는 않는지 조사합니다. 그렇지만 공정위에게는 봉인조사권 등 강제조사권이 없기에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인수위는 공정위의 자세만을 문제 삼았습니다. ‘친기업’을 친생산자, 반소비자로 해석하거나 친대기업, 반중소기업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친기업’의 의미는 설명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행동은 ‘친기업’이 편들기로 보이게 합니다.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자본을 편들고, 지배주주와 투자자 사이에서 지배주주를 편들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생산자를 편들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대기업을 편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본이고, 지배주주이고, 생산자이고, 대기업인 존재는 재벌입니다. ‘친기업’에서 친재벌을 보는 것이 오해일 뿐일까요?

편들기가 나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질서가 공정하지 않다면 정부가 나서서 고쳐야 합니다. 약자에게 불리한 규칙을 바꿔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재벌이 약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경제의 규칙이 재벌에게 불리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정부가 편을 든다면 노동자, 투자자, 소비자, 중소기업의 편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정성을 희생시켜서라도 효율성을 높이려 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늘리기 위해 규칙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벌이 회사 돈으로 더 많은 주식을 사서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기업들이 담합해서 공급을 줄이고 가격을 높여도 못 본 척하는 것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압박해서 모든 이윤을 독차지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친기업’이 아니라 ‘친시장’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시장’의 의미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질서를 세우고 지키는 것이라면 저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질서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질서의 내용에 대한 저의 생각을 밝힐 수는 없겠습니다. 단지 승자독식이나 20 대 80의 사회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것만을 말씀 드립니다. 당선인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국민들의 생각은 무엇이라고 당선인께서는 생각하십니까?

편지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금산분리, 대기업집단지정제도, 경영권 방어 수단 등에 대해서는 말씀 드리지 못한 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당선인과 인수위의 ‘친기업’을 제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근거 없는 오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당부 드립니다. ‘친기업’이 친재벌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반투자자, 반소비자, 반중소기업이어서는 더욱 아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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