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9-10-30   2272

[칼럼] 진보정당은 재보선 전략 있었나?

[칼럼] 진보정당은 재보선 전략 있었나?
– 민주당, 환호작약할 때 아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재보궐 선거가 끝났다. 드러난 결과만을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한나라당의 참패, 민주당의 선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선거의 전초전 성격을 가진 선거였던 만큼, 성적표를 받아든 정치세력의 계산과 발걸음이 분주해질 것이다. 언론보도나 정치평론에
등장할 선거평가, 정국예측과 같은 내용들을 모두 차치하고, 이번 선거가 한국의 진보 정치세력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과제는
무엇인지를 따져보자.

이변 없는 선거

우선 이번 선거는 이변이 없었다. 굳이 이변이라고 부르자면,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불모지나 다름없는 경남양산에서 민주당
후보가 선전한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흥미로운 선거구도, 즉 거대여당의 대표를 지낸 상징적 인물과 이른바
‘노풍’을 등에 업은 친노 정치신인의 대결이라는 특성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지역의 바닥 민심이 바뀌었다고 볼 근거는 없으며,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이 구도가 다시 위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양산에서 야권의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결과적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인 아쉬움일
뿐이다. 한나라당의 절대우세 지역이라는 점, 선거 막판 여론조사에서 까지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후보의 지지율 합계가 박희태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보단일화의 적극적 추진동력이 생기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친노세력 등 일부에서는
민주노동당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정당한 비난이 아니다. 선거에서 공당이 독자후보 노선을 유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비난할
일이 못되며, 앞서 언급했듯, 후보단일화의 현실적 승리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었던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변이 없는 선거라는 평가와 관련해 더 주목해 볼 점은 선거결과가 아닌 선거과정이다. 특히 ‘후보 단일화’라는 이변을 기대했던
안산 선거에서의 후보단일화 실패는 아픈 대목이다. 민주당은 이 지역에서 애초 예상과 달리 낙승함으로써 후보단일화 무산의 책임과
비난으로부터 일견 빗겨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의석 하나를 추가한 단기적 성과는 있을지 몰라도, 내년 지방선거나 2012년의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긴 정치과정에서 본다면 스스로 내세웠던 ‘민주대연합’이라는 명분과 정치슬로건을 형해화 시킨 책임과
후과는 두고두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환호작약(歡呼雀躍) 할 때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여당 견제론이 강하게 작용하는 보궐선거의 특성을 감안할 때, 민주당의 승리는 거대여당에 대한 견제의 의미, 즉 정치적
반사이익에 힘입은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견제론과 반사이익에 의존해 선거를 치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총선,
대선과 같은 큰 선거로 갈수록 대안세력으로서의 비전과 정책의 여부는 정치적 선택의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지난 대통령 선거 그리고 이어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원인에는 ‘이명박’으로 왜곡되어 집약된 욕망을 넘어서는 가치나 비전,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민주당이 과연 그와 같은 대안세력으로 변모할 수 있을까? 부정적이다.

첫째로 민주당은 자신들의 집권기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평가가 없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비정규 입법, 한미 FTA, 이라크
파병 등 참여정부 5년간 쟁점이 되었던 민생현안, 정치 현안에서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반성, 혁신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촛불운동으로 표현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한층
성숙된 열망이 지나간 이후 민주당의 내놓은 해답이란 한나라당의 가치나 정책과 다를 바 없는 ‘뉴 민주당 플랜’이었다. 집권기간에
대한 성찰과 단절, 전환 없이 ‘반 MB 정서’라는 정치적 기회구조에 때때로 편승해 정치적 지분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차별성에 입각한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두 번째 이유는 민주당의 정치 전략이 여전히 ‘민주-반민주’라는 낡은 정치구도에 입각해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과
독선으로 인해 ‘민주-반민주’라는 한국 민주주의의 전통적인 구도가 부분적으로 복원된 것은 맞다. 그러나 MB 정부의 통치방식이
과거 군사독재 정권과 같은 물리력을 동원해 기본권을 억압하는 파쇼적 통치방식과는 거리가 있으며, 위기관리 능력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최근 MB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높아진 것도 역대 정부의 집권 2년차 지지율로 봤을 때 특이하다 볼 수 없는 일반적
기대감의 표현이라는 점도 있지만, 올해 초만 하더라도 바닥을 헤매던 지지율에서 탈피한 것은 ‘중도실용, 친서민’으로 대표되는
정무적 기획력과 대응력이 그만큼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대안적인 비전 없이 전통적인 민주-반민주 구도에 입각해
MB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그 반사이익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가 뚜렷해 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문제로 민주당은 민주-반민주 세력구도를 전제한 자신의 기득권으로부터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있다. 안산 선거의
후보단일화 논의에 지지율을 내세워 시종일관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이 대표적이다. 다시 말해 민주당의 ‘후보단일화’ 속내는
‘민주당으로의 후보단일화’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스탠스는 지역정당으로서의 정치적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것이다. 민주당이 이번 재보선의 선전에 환호작약(歡呼雀躍) 하고만 있을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정당, 재보선 전략 있었나?

이변 없는 선거로 인해 진보정당들의 입지는 어려워졌다. 야3당의 단일후보를 내세웠던 안산 선거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무너짐으로써 소수야당의 무기인 ‘캐스팅 보트’로서의 파괴력에 일단의 의문이 제기되었다. 진보정당들이 분투하고 있음에도 한국정치의
독립변수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진보와 보수의 균형이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는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 정치지형을 고려하면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 자위할 수도 있겠으나, 원내 10석의 의석을 가졌던 시기의 약진에 비교하면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여러 문제들을 차치하고 나는 이번 재보선과 관련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전략이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구체적으로는 민주당과의 차별성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인색한 평가인 듯하나, 나는 별다른 차별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MB 심판’이라는 구호로는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확보할 수 없다. 안산 후보단일화 논의에서 진보정당들이 내세웠던 ‘누가 MB
심판의 자격이 있는가’라는 식의 접근은 현실정치의 사활이 걸린 선거판에서 순진하기까지 하다. 그런 논리는 ‘지지율 높은
후보’라는 현실 논리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그럴 바에야 ‘원칙 없는 나눠먹기’라는 내부 논란과 비판이 따르겠지만, 차라리
강기갑 대표가 선거막판 제안했던 안산과 나머지 지역의 후보단일화를 맞바꾸는 ‘빅딜’이 오히려 솔직하며 현실적이다.

재보궐 선거에서의 선거연합을 내년 지방선거 및 이후 정치일정까지 고려한 전략적인 방침 하에 배치한 흔적도 별반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면 현재의 조건에서 결과가 불 보듯 뻔한 후보단일화 논의로 성급히 건너 뛸 것이 아니라, 정치연합의 가치와 원칙, 조건,
경로 등에 대한 전략적 논의가 앞서 활성화 되었어야 마땅할 것이다.

‘가치연합’으로 딜레마 벗어야

진보정당들의 딜레마, 즉 민주당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반민주 구도에서 진보정당의 입지가 지극히 협소한 문제는 비단 이번
재보선만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에서 유권자는 현실적 선택을 하며, 민주-반민주 선거구도에서
MB와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의 현실적인 선택이 민주당으로 경도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 딜레마를 돌파하는 하나의 방안은 당장의 정치적 성과를 고려하지 않고 독자노선을 고수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정치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고 다소 자족적이기까지 한 이 노선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의 방안은 진보정당들이 다가오는
정치일정에서 정치연합, 선거연합 논의의 이니셔티브를 선점하는 강하고도 유연한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정치연합을 ‘후보단일화’라는 전술의 문제로 협소화 시키는 것이 아닌, ‘가치연합’의 차원으로 전환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선거공학’에 기초한 ‘반MB 후보단일화’가 아닌,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한 ‘가치연합’ 혹은 ‘의제연합’으로 정치연합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 정당성과 설득력을 높여야한다. 나는 이것을 민주-반민주 구도의 재구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와 같은 ‘정치연합’을 논의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만들어내지 않고서 도덕적 명분에 기초해 민주당에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것은
한마디로 ‘쇠귀에 경 읽기’가 될 뿐이다. 정치연합의 이니셔티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진보정당의 오랜 체질과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진보정당들의 정치적 좌표가 보다 분명해 질 필요가 있다. 현대화된 대중정당, 정책정당, 제도정당으로서의 확고한 변화가
필요하다. ‘운동권 정당’ 또는 ‘이념정당’의 경계에 머물러서는 넓은 지지를 획득하기 어렵다. 이념적 유연성을 제고하고
정치언어를 혁신할 필요가 있으며, 차별성을 가지면서도 실현가능성이 있는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유연성의 제고에 기초해 각계각층, 예를 들어 진보적 지식인사회, 시민사회와의 네트워크를 훨씬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나 대중조직의 지지만으로 정치를 하려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안주(安住)’에 다름 아니다.

셋째로는 쉽지 않은 과제이겠지만, 진보정당의 재통합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해묵은 노선과 패권의 갈등, 분당 과정에서의 상처와
불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진보정당들 간의 통합도 이루지 못하면서 민주대연합이든 진보대연합이든 정치연합을 거론하는 것은
무망한 논의일 수 있다. 진보정당들의 통합을 긴 호흡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재결합만이 아닌 민주당까지 포함한 정치권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블록, 시민사회의 정치적인 움직임까지를 포함하는 보다 넓은 구도에서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역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정치는 현실인 동시에 상상력이다. 그 점에서 나는 오늘 한국 진보정당들의 정치적 상상력은 충분한지 묻고 싶다.

* 이 글은 <민중의 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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