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12-07   2343

<통인동窓> 썩은 ‘돈 사회’의 질주

붓꽃이 타오르는 빈 들녘에 서면

무엇인가 자꾸만 무너지는 소리

무엇인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소리.

김지하, ‘들녘’에서, 1970년대 초

문득 김지하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무엇인가 자꾸만 무너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더니 결국 와장창 전부 무너지고 마는 것 같다. 6월항쟁 이래 20년, 아니 건국 이래 6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으로 쌓은 민주화의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무너지는 소리를 무시하고 배짱을 부리다가 완전히 무너져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도 마음 한 켠에서 떠오른다. 오기로 충만해서 역사의 기대를 저버리고 갈짓자 행보를 계속한 무리의 책임은 너무나 크다.

1970년대 초의 어느날, 김지하 시인은 한탄강가에서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던 모양이다. 그의 ‘들녘’은 아름다운 서정시이자 정확한 정치시이다. 천상병만 ‘천상 시인’이 아니라, 김지하도 ‘천상 시인’이다. 그러나 서슬퍼런 독재의 몰락을 예감했던 시가 이제 민주화의 몰락을 예감하는 시로 읽히는 것은 대단히 서글픈, 아니 정말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민주화는 결코 몰락하지 않는다. 일부 제도정치 민주세력은 몰락하겠지만 민주화는 더욱 튼튼하게 추진될 것이다. 민주화는 희망을 벼리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화가 큰 시련을 맞은 것은 틀림없다. 일부 제도정치 민주세력의 몰락과 함께 어렵게 겨우 기반을 다지게 된 민주사회가 크게 망가질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렇다고 박정희와 전두환처럼 총칼로 민주주의를 짓밟는 폭력세력이 다시 나타난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썩어 문드러진 ‘돈 사회’이다. 민주사회가 무너지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와 함께 썩은 ‘돈 사회’가 질주하는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바야흐로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아귀들의 준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돈 사회’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자 인생의 목표가 되는 사회가 바로 ‘돈 사회’이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돈’이란 ‘돌다’의 활용형이기도 하며, 또한 ‘돌다’는 ‘정신이 돌다’ 즉 ‘미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돈 사회’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와 ‘미친 사회’를 함께 뜻한다. 그렇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는 ‘미친 사회’일 수밖에 없다. ‘돈 사회’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무한경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개발과 투기, 그리고 부패는 그 3대 수단이다.

‘돈 사회’를 실제로 지배하는 것은 물론 돈이 아니라 ‘돈이 많은 사람’이다. ‘돈 사회’에서는 소수의 부자가 다수의 빈자를 지배하고 이용하고 있지만 다수의 빈자가 소수의 부자에게 맞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의 부자를 모범으로 삼으며 적극적으로 따른다. 이렇게 해서 ‘돈 사회’는 민주적으로 완성된다. 사실 다수의 빈자 중에서 소수의 부자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확률은 원숭이가 타자기 위에서 춤을 춰서 훌륭한 시를 쓸 수 있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더욱이 중산층도 하향화의 길로 계속 내몰린다. 이러한 반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돈 사회’에서 소수의 부자는 그 지배력을 계속 강화한다.

경제 자체가 잘못일 수 없는 것처럼 부자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어떤 경제이며, 어떤 부자인가 하는 것이다. 예컨대 재벌은 ‘죄벌’이거니와 불법승계, 정경유착, 공금횡령, 담합, 부패, 토지투기, 가격조작, 주가조작, 노조탄압, 불법감시, 폭력, 문화재 밀구입, 독점력의 부당한 행사 등의 숱한 범죄를 저지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제의 왜곡과 위기마저 초래한다. 온갖 자료가 보여주듯이 재벌은 아주 나쁜 부자이며, 시대착오적 총수체제에서 비롯되는 재벌경제는 아주 나쁜 경제이다. 그러나 ‘돈 사회’에서는 재벌이 ‘구원자’ 행세를 하며, 재벌과 연관이 깊은 부자일수록 더 높은 지위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썩은 ‘돈 사회’가 질주하고 있다. 돈 많은 못 사는 나라 한국의 안타까운 실상이다. 복지의 증진과 자연의 회생이 한국이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진정한 선진화’의 과제이며, 이를 위해 나쁜 경제, 나쁜 부자의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돈 사회’에서는 이러한 당연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썩은 ‘돈 사회’가 질주하면서 사회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정녕 이 사회의 정상화는 꿈에 머물고 말 것인가?

홍성태 (상지대 교수,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