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2-03-21   1117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대통령님,

F-X선정을 앞두고 외압의혹과 형평성 시비가 일고 있습니다. 미국정부가 미는 F-15를 최종적으로 선정하기 위한 시나리오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군 조대령의 “외압” 폭로로 이러한 의혹은 더욱 커져만가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정말 외압은 없습니까? 특정기종의 선정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는 없습니까?

현장에 있는 공군들은 F-15와 그 밖의 유럽기종은 성능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나로그전투기”와 “디지털전투기”의 생존력과 공격능력의 차이로서 전투기로서는 기량이 “한세대” 가량 터울이 진다는 것입니다. F-15가 다른 유럽기종과 함께 시험평가 대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성능이 대등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군요구성능(이른바 ROC)이 “변별력 없는 수능시험” 처럼 낮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근 언론에 공개된 공군의 시험평가 결과보고서 역시 이러한 내용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성능만이 문제가 아니라 가격도 비싸고 기술이전도 더 적다고 합니다. 이웃 싱가포르는 한국의 시험평가 과정을 참고로 하여 차세대 기종선정에 들어갔는데 F-15는 아예 평가대상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미 단종상태인 F-15를 구매하면 15년∼20년 안에 코브라헬기나 F-4 처럼 부품구매가 힘들어지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15년 후면 주변국의 모든 전투기가 통합전자전 기능을 갖는 4세대 전투기로 될 터인데 부품도 구하기 힘든 F-15를 운영할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해진다’는 것입니다.

대통령님,

한미연합방위도 중요하지만 미군조차 추가도입을 거부한 기종을 5조의 세금을 들여 도입해야 유지되는 한미군사동맹이라면 이것은 주권국간의 동맹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 이러한 주장을 계속 펼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합리성 없는 협박성 주장을 펼침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의 건전하고 판단을 막는 “외압용” 발언을 일삼는다고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대통령께서 지난해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2015년까지 한국형 전투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후 국방부는 절충교역과 기술이전을 최우선적 요소로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1차 평가기준에서 절충교역이나 핵심기술이전문제는 매우 적은 가중치만이 부여되어 최우선적 고려라는 언급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각 평가요소별 가중치 산정의 근거나 세부배점방식도 핵심기술이전이나 절충교역에 적극적인 업체에 대한 배

점에 인색하는 등 편파적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이런 외압의혹과 평가기준 형평성 시비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F-X사업은 국민들에게 율곡비리 사건의 악몽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방부 장관의 평가강행 방침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외압시비 평가기준 시비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를 통해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 연후에 보다 투명한 절차와 모두가 동의할만한 새로운 기준을 통해서 F-X 선정작업에 임해 주십시오.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쪽에 실린 글은 어제(20일) 8개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채택한 F-X 의혹 진상규명 기자회견문입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F-X 외압 및 평가기준 조작의혹 진상규명

국정조사권 발동을 촉구한다

우리 국민들은 불과 수년전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율곡비리 사건을 기억한다. 온갖 외압과 협잡 속에 막대한 예산만 낭비한 한국형전투기(KFP)사업이 그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예산낭비를 직접 경험한 국민들은 그 후속사업에 해당하는 F-X사업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이것이 과연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주시해왔다. 그러나 F-X사업 역시 외압시비과 평가기준조작시비 금품수수 파문 등 각종 의혹으로 얼룩지고 있다. 지

금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의 F-X 사업 추진을 짙은 의혹과 불신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은 F-X사업추진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자 한다.

F-X 기종선정 외압의혹 진상부터 규명해야 한다.

최근 F-X사업의 시험평가를 책임진 한 공군장교 조주형 대령은 TV 인터뷰를 통해 ‘국방부 핵심인사가 미국정부가 지원하는 특정기종의 선택을 기정사실화하거나 객관적인 평가결과의 보고와 관련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비단 조대령 개인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부당한 외압에 대한 문제제기는 광범위하게 존재해 왔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러한 외압 실체를 부인하고 최소한의 조사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다. 국방부의 이러한 태

도야말로 오히려 국민들로하여금 외압의 실체에 대해 확신하도록 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국방부는 F-X 추진 일정을 강행하기 전에 외압의혹부터 수사해야 마땅하다.

평가기준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평가기준이 특정기종에 유리하도록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우선 기준작성과정부터 불투명했다. 국방부는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소정의 공청회와 설문조사를 거쳤다고 밝히고 있지만 사실상 군내부 인사로만 채워져 있고 군내부의 반론조차 제대로 수렴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이미 널리 알려진 각 기종간의 성능상의 변별력을 최소화시킬 목적으로 평가가중치를 조작한다는 의혹도 군내외에서 제기되고 있

다. 국방부는 이러한 의혹에 대해 국민 앞에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방부는 평가기준 작성과정과 이와 관련된 군 내부의 반론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평가기준을 원점에서 재구성해야 마땅하다.

국방부장관은 F-X일정추진 강행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그러나 국방부는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의혹의 진상을 가리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기종선정의 일정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국방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F-X 사업에 대한 국민의 의혹을 눈덩이처럼 커지게 하고 있다. 국방부장관은 즉시 예정된 사업일정을 중단하고 자진해서 외압 및 평가기준조작 의혹에 대한 외부의 감사를 요청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F-X사업에 대한 민군합동 공청회 개최 등 국민의혹해소와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의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방부 장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제2의 율곡비리 방지를 위해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야 한다.

최근 제기된 외압의혹, 평가기준 조작 의혹에 대해 국회는 즉각 국정조사권을 즉각 발동해야 한다. 국회는 우선 외압 및 평가기준 조작 의혹이 제기된 관련자들을 국회에 출석시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또한 국회는 차제에 군에서의 소요제기와 군요구성능 설정이 현재 상황에 부합하는 것이었는지, 국무회의 국가안전보장회의 등 국가 주요회의에서의 사업추진 결정은 시기적으로 전략적으로 타당했는지, 시험평가 및 가격협상 등 입찰과정 전체가 과연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었는지를 철저히 조사함으로써 국민세금 5조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F-X사업 추진은 연기되어야 한다.

제2의 율곡비리의 악몽을 걱정한다면 “수요군의 요구”라든가 “적기(適期)도입”만을 강조할 때가 아니다. 이미 미군도 추가도입을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단종상태에 접어 든 F-15나, 아직 실전능력이 검증되지 않았고 후속군수지원도 확실치 않은 다른 기종들 중 하나를 지금 당장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은 국민적 설득력이 없다. 게다가 F-X 사업 등 최근의 첨단무기도입 사업이 향후 남북관계 및 주변국과의 군사동맹관계에 가져올 변화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부족하며 F-X를 발판으로 2015년 한국형전투기를 생산하겠다는 구호의 경제적 타당성도 전혀 검증된 바 없다. 이러한 상황들은 적어도 외압과 비리의 의혹이 완전히 제거되고 최소한의 국민적 합의가 성숙되기까지 F-X사업 추진에 신중을 기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국방부장관 및 각 당대표자 면담을 제안한다.

우리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이러한 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국방부 장관 및 각 당 대표 면담을 추진하는 한편, 납세자 권리 차원에서 F-X 관련 의혹에 대한 민간조사활동과 문제제기를 계속해나갈 것이다. 5조나 되는 국민세금이 외압의혹과 공정성 시비 속에 명분없이 낭비되는 것을 국민들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금 분명히 밝혀둔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막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정부와 정치권에 호소한다.

2002. 3. 20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녹색연합, 참여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여성단체연합, 환경운동연합

이태호(참여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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