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1-04-12   1031

[제100호 특집] 개혁통신 100호 발간에 부쳐

포기할 수 없는 개혁의 메신저 이 되고자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삼천리 방방곡곡이 온통 꽃소식입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는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이 한창임을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청와대 정원에도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겠지요. 그러나 이 봄꽃의 제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님의 마음은 밝고 즐겁지만은 않으실 듯 합니다.

대우자동차와 현대건설 문제를 비롯해서 어려워지는 나라경제와 높아지는 실업율, 노동자들의 반발로 머리가 아프시겠지요. 그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야당의 정치공세는 그칠 줄을 모르며, 부시정권 출범 이후에 햇볕정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미국의 태도가 심상치 않을 뿐만아니라 심지어 일본의 역사왜곡사건까지 겹쳐 국민의 정부의 성과로 간주되었던 외교정책의 성과까지 잠식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정부도 국민적 불만과 언론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겠지요. 오늘날 우리사회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이 과거정권에서 없었거나 또는 앞으로 탄생될 정권하에서라고 전혀 없을 것 같은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 정부의 제반 정책이 난조이고,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회 어느 곳에서도 도대체 희망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이 정부에 대해 기대를 버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은 단지 무너진 공교육에 대한 실망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에 더 이상 살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겠지요.

대통령님, 저희들은 이 정부가 썩고 병든 이 나라를 온전히 개혁해 주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지난 1998년 9월 17일 <개혁통신>을 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과 시민을 연결하는 핫라인"이라고 저희들 스스로 불렀습니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흔히 주변인사들에 의해 포위당해 국민들의 의견과 생각이 전달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그러한 '인의 장막'을 헤치고 국민들의 생각과 시민단체의 정책제안을 대통령께 직접 전해드린다는 역할을 자임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2년이 넘고 마침내 100호에 이르기까지 저희들은 국정 전반에 걸쳐 나름대로 여과없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저희들이 생각하는 정책적 대안들을 꾸준하게 대통령께 전달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황당한 일이기도 하지요. 대통령께서 그런 것을 요구한 적도 없고 그것을 반드시 본다는 약속을 한 적도 없는데 저희들이 일방적으로 이런 종류의 서한을 계속 보낸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 자체가 열린 언로이자 새로운 형태의 언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제도언론에서는 이런 소리가 제대로 실리고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대통령께서 보든 안 보든, 제도언론이 실어주든 안 실어주든 저희들은 꾸준히 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개혁통신>에 실렸던 많은 의견들과 대안들 가운데 받아들여진 것이 적지는 않습니다. 국가배상심의회제도 개선요구, 약가의 합리적 인하요구, 국민기초생활법 제정 요구, 자동차 면허세 폐지 요구,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구속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이것이 가진 의미는 크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저희들이 대통령께 드린 대부분의 제안과 권고는 거부되고 무시되었습니다. 물론 저희들의 요구 가운데는 당장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대부분은 우리 사회 개혁과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하고 절박한 사항들이었다고 저희들은 감히 생각하던 것들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대부분의 사안들에 대해서 청와대에서는 "소관부처인 ***에 이송하여 처리토록 하였다"는 메아리 없는 대답만이 저희들에게 전달되었을 뿐입니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개혁이 좌초되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정치가 혼란스러운 것은 결국 저희들의 주장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취임 후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시민사회단체의 지도자들을 청와대 오찬모임에 초청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이크가 저에게 왔을 때 저는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김대통령께서 IMF 경제위기 직후에 대통령이 되신 것은 특별한 하느님의 뜻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썩고 병든 이 나라의 사회,경제,정치체제를 완전히 뜯어고치라는 소명이다. 바로 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지금 개혁은 너무나 더디고 미온적이다". 대충 이런 발언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대통령께서는 "섣달그믐에 시집온 며느리가 그 다음날인 정월 초하룻날 시집온 지 2년째가 되었는데도 애기를 못낳는다고 소박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히려 개혁이 너무 빠르다고 주장하는 말도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대통령의 주변에 온전히 보좌하는 사람이 없구나 하는 걱정과 우려를 하였습니다.

개혁이 저항세력을 낳고 인기를 잃게 한다는 말이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이 땅의 대다수 민중들에게 이득이 되고 나라의 먼 장래에 희망을 주게 마련입니다. 아니 멀리 갈 것까지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극소수 부도덕한 재벌을 뜯어고치고 관치금융의 폐해를 근절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향상하고 균형잡힌 경제를 건설하는 재벌,금융,경제개혁, 국가예산을 축내는 공공부문의 온전한 개혁, 대다수 서민들의 삶의 안정과 사회복지의 보장을 확대하는 사회복지개혁, 성역을 없애고 법 앞의 만인의 평등을 실현하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부패를 예방하고 방지하는 부패방지법의 제정, 내부고발자보호제도의 도입 등 그 모든 개혁은 절대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국민들에게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제안들은 거부되고 무시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이 <개혁통신>이 과연 대통령님께까지 제대로 보고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성의를 모아 매주 보내드리는 이런 제안까지 대통령께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더 큰 절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언로가 막힌 정부라면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이 무망한 개혁에의 요구와 기대를 접어야 하지 않을지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개혁은 결코 접을 수 없는 날개짓이요, 내릴 수 없는 깃발이기에 저희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이 <개혁통신>을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개혁통신>을 중단시키는 길은 개혁을 온전히 시행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줄기차게 우리의 요구를 할 것이며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온전히 뿌리내릴 때까지 지속할 것임을 분명히 해 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원순(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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