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02-23   1750

<안국동窓> 미국산 쇠고기가 그렇게 먹고 싶습니까?

[공개편지] 송민순 장관, 김현종 본부장, 김종훈 대표, 김무성 의원에게

“미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 …

조선시대에는 계급과 신분에 따라 식사를 의미하는 용어가 달랐습니다. 왕이나 왕비의 식사는 ‘수라’라고 불렀고, 제사 때 올리는 밥은 ‘메’라 불렀습니다. 윗사람은 ‘진지’를 드셨고, 일반 백성은 ‘밥’을 먹었으며, 노비나 백정 같은 하층민은 ‘끼니’를 때웠습니다.

끼니를 겨우 때우며 질긴 목숨을 부지하던 무지렁이 백성들에게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는 “미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산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편견의 배경에는 우선 조선후기의 삼정문란, 일제의 식량공출, 한국전쟁 등 오랫동안 굶주림에 시달려온 때문입니다. 게다가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라는 미국에 대한 동경까지 겹쳤다고 생각합니다.

특권 권력층이야 늘상 쌀밥을 배불리 먹었기에 양잿물을 마실 일이 없었겠지요. 그러나 평민이나 노비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풀 뿌리나 나무 껍데기를 끓여 먹거나 그냥 굶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시기에 미군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염치 불구하고 “기브 미 초콜렛”을 연발하며 손을 벌렸는지도 모릅니다. 예의염치도 굶주림을 이겨낼 수 없었겠지요. 지금도 제3세계에는 외국인들에게 구걸을 하여 연명하는 엄청난 빈민들이 존재합니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거저 준대도 안 먹어…

그런데 “미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던 백성들이 이제는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거저 준대도 싫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습니다. 불과 반세기 만의 이러한 변화는 노동자, 농민의 피땀으로 경제를 일구어 먹고 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권세 있는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은 아직도 미제라면 사족을 못 쓰고 안달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지난 20일,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국회 통외통위 전체회의에 출석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와 관련해 정부내에서 관련 부처별로 고려할 사항들이 있는데, 이를 조화시켜 쇠고기 문제로 인한 한미 FTA 영향을 최소화시키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송 장관은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미국의 요구를 일부 들어주고,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 입장도 관철시키는 쪽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빅딜’을 통해 주고 받기를 하겠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 도대체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직결된 광우병과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이 자리에서 “국제 기준으로 보면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에는 척수, 눈만 포함됐지 뼛조각은 괜찮다”며 “미국과 협상할 때 우리는 뼛조각을 전혀 허용치 않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우리가 좀 강하게 했다고 본다”고 발언했습니다.

또한 “한미 양자간에는 국제기준보다는 더 엄격한 기준으로 했다”면서 “국제적인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Terrestrial Animal Health Code 2.3.13.1조)에는 “30개월령 이하의 뼈를 제거한 골격 근육살(deboned skeletal muscle meat)”의 자유로운 교역허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받아들인 협상안이 바로 국제기준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가 한미 FTA 4대 선결조건이었다는 사실을 애 어른 할 것 없이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국회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마 우리 정부가 국제기준보다 엄격하게 쇠고기 협상을 했다면, 미국은 이미 우리 정부를 WTO에 제소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를 윽박질러서 해결 못해…

같은 날, 김종훈 한미 FTA 협상 한국 측 수석대표는 “우리나라 검역기관의 능력을 믿고 있다”며 “책임있는 검역기관에서 안전성을 보장한다면 소비자 차원에서 충분히 미국산 쇠고기를 소비할 의사가 있다”는 엉뚱한 발언을 했습니다.

과연 검역 전문가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한미 FTA 협상의 타결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완화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과연 소비자 차원인지 궁금합니다.

통외통위 소속 김무성 의원(한나라당)은 “소고기 문제가 미국 국민들의 우리 한국에 대한 나쁜 감정 조성에 심각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현지에서 많이 느꼈다”면서, 미국산 쇠고기에 시비를 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김의원은 “미국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 살고 있는 200만 우리 교포들이 매일 미국 소를 먹고 있고, 1년 중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미국을 여행하면서 소고기를 먹고 하는데…”라면서, 왜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수입을 허용하지 않느냐고 우리 국민들에게 윽박지르는 것 같습니다.

그럼 영국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에 살고 있은 우리 교포들과 영국을 여행하는 우리 국민들이 소고기를 먹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는 영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지 않을까요?

또 왜 미국은 한국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먹고 있는 한국산 삼계탕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을까요?

그뿐입니까. 일본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들과 일본을 여행하는 우리 국민들이 쇠고기 덮밥(규동)을 먹고 있는데 왜 일본산 쇠고기의 수입은 허용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미국산 쇠고기가 먹고 싶으면…

지난 달 11일, 마쓰오카 토시가츠(松岡利勝) 일본 농림수산성장관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인 ‘30개월 미만’으로 수입조건을 완화하라는 마이크 조한스 미 농무장관의 요청에 대해 “지금은 현행 기준이 준수되어, 식품의 안전에 대해서 일본 국민의 납득을 얻는 것이 더 큰 일”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바로 몇 일 전인 16일, 타이슨푸드사의 렉싱턴 작업장(승인번호 245L)에서 수출한 쇠고기에서 서류에 기재되지 않은 갈비 2상자를 발견하고 해당 작업장에 대해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 한미 FTA 협상대표,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은 국민들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라고 강압성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아예 미국산 쇠고기에서 왜 뼛조각과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는지는 거론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이런 태도가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의 고위 공직자로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식품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분들에게 간곡히 권고합니다. 그렇게 미국산 쇠고기 먹고 싶으면 미국으로 이민을 가던지, 미국 여행을 가서 마음껏 배불리 드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광우병에 대한 진정한 선택의 자유도 무한대로 누리시길 바랍니다.

* 이 칼럼은 참세상에 실린 글입니다.

박상표 (수의사,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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