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5-12-12   1272

<안국동窓> 사학법 개정을 넘어서

2005년 정기국회의 마지막 날이었던 2005년 12월 9일, 마침내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이 힘을 모은 결과였다. 한 주 전부터 민교협과 교수노조를 중심으로 한 교수단체의 교수들이 여의도에서 밤샘천막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물론 사립학교법의 개정을 바란 것은 교수들만은 아니었다.

2000년 9월 21일에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사학국본)가 발족했다. 여기에는 교육단체들은 물론이고 주요한 시민단체들도 모두 참여했다. 사립학교법의 개정은 그야말로 국민적 여망이었던 것이다. ‘사학국본’의 발족은 이런 여망의 조직적 발현이었지만, 그 뒤에는 몇 년에 걸친 사립학교법 개정운동이 자리잡고 있었다. 정치권이 국민적 여망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사학국본’과 같은 광범위한 연대조직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사립학교법의 개정이 국민적 여망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한국의 교육은 아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학교의 문제이다. 한국의 학교는 사립학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고등교육기관일 사립학교의 비중은 더 크다. 사립학교는 학생의 등록금과 재단의 전입금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사립학교는 대체로 학생의 등록금과 정부의 지원금으로 운영된다. 많은 사립학교에서 재단의 전입금은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아니, 대부분의 사립학교에서 사실상 재단의 전입금은 전혀 없다. 대신에 아주 많은 사립학교에서 재단이 학교의 돈을 빼돌리는 ‘횡령’의 문제가 흔히 발생하고 있다.

사립학교는 재단 이사회를 통해 운영된다. 재단 이사회는 학교를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사회의 공적 자산으로 여기고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사립학교는 대체로 그런 식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이른바 설립자나 그 가족의 사유물로 다루어지는 것이 바로 한국의 사립학교이다. 대부분의 사립학교가 학생의 등록금과 정부의 지원금만으로 운영되고 있는 데도 그렇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비참한 한국 교육의 실태를 대변하는 용어가 바로 ‘부패사학’이며, 기존의 사립학교법은 바로 이러한 ‘부패사학’을 지키는 법이었다.

‘부패사학’의 설립자가 학교를 세운 표면적 이유는 ‘교육입국’의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립학교에서 설립자가 학교를 세운 실제적 이유는 ‘학교장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학교장사’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일년에 두번씩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돈을 등록금으로 받는다. 그것도 ‘현금’으로! 둘째, 교사나 교수를 상대로 상당한 금액의 사례비를 챙긴다. 임용을 댓가로 이런 사례비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 범죄이다. 세째, 각종 교자재나 시설 등과 관련해서 역시 불법거래를 다반사로 저지른다. 그 결과 학생들은 엉터리 악기나 장비를 쓰거나 무너져 가는 건물에서 공부해야 한다. 네째, 학교 재단에 대해서는 부동산 취득이나 금융에서 커다란 혜택이 주어진다. 재테크라는 면에서 학교 재단은 대단히 효과적인 수단이다. 다섯째, 이런 수많은 악행과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교육자’로 위장해서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 얼마나 좋은가?

물론 이렇게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재단 이사장이 ‘독식’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사들과 이익을 나눠야 하고, 관련된 많은 공무원들에게도 뒷돈을 챙겨줘야 하며, 교육부 관료들과는 당연히 깊은 친분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무엇보다 국회에 든든한 연줄을 만들거나 직접 국회로 진출해야 한다. 이러한 이익보호활동은 가족들만이 아니라 여러 조직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부패사학’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갖추고 강력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국민적 여망에도 불구하고 ‘부패사학’의 문제를 바로잡기 어려운 데에는 이런 이유들이 있다.

사립학교법의 개정에 반대하는 자들은 ‘사유재산’ 운운하며 사립학교의 투명경영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저버리고자 한다. 그렇다면 우선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학생의 등록금도 ‘실비’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사립학교는 결코 ‘소도’가 될 수 없다. 교육기관은 이를테면 ‘사교집단’이 아니다. 교육은 이 사회를 문화적으로 재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활동이며, 따라서 모든 교육기관은 그 목표와 운영이 사회적으로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나라당의 행태는 극히 유감스러운 것이다. 8ㆍ311부동산대책의 후속조치에 대한 반발에 이어서 한나라당은 또 다시 그 존재이유를 곱씹게 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당인가? ‘부패사학’의 개혁을 갈망하는 대다수 국민인가, ‘부패사학’을 지키기 위해 발악하는 한줌의 천민자본가들인가?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법의 개정과정에서 얻은 중대한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 표방하고 있는 것처럼 ‘개혁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에게 추파를 던지는 짓부터 그만두어야 한다.

17대 국회도 16대 국회에 못지 않게 엉망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학법의 개정이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학법의 개정은 참된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한걸음일 뿐이다.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바로잡고, 국가보안법과 같은 반민주법을 폐지하는 정상화의 과제도 여전히 쌓여 있고,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 사회구조와 생활방식의 생태적 전환 등 민주화의 심화를 위한 과제도 잔뜩 쌓여 있다. 희망은 꿈꾸고 애쓰는 사람들의 것일런가?

홍성태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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